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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호찌민] 베트남에서 머리 어디까지 깎아봤니

습한 기후와 오토바이 헬멧 생활화로 옆·뒷머리 삭발 수준…한국 스타일대로 깎기 쉽지 않아

2021.06.07(Mon) 15:11:01

[비즈한국] “오 마이 갓! 잇츠 투 쇼트.” 

 

아들과 나의 머리 자르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아내가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와 외쳤다. 하지만 물은 엎질러진 후. 이미 깎은 머리를 다시 붙여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도대체 어느 정도기에…. 궁금해진 나는 안경을 쓰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순간, 거울 속 내 얼굴은 ‘나 홀로 집에’에서 스킨을 바르고 난 직후의 케빈으로 변했다. 윗머리만 남긴 채 옆머리와 뒷머리를 홀라당 깎아버린 것이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 속 로버트 드니로의 헤어스타일을 떠올리면 되겠다. 

 

“아빠 머리 완전 파인애플 같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뒤에서 걸어오던 아내와 아들은 나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바라보며 킥킥대고 있었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 속 로버트 드니로의 헤어스타일을 떠올리면 되겠다. 사진=김면중 제공


아내는 나의 망한 헤어스타일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날 밤, 페이스북에 업로드 해 동네방네 알렸다. 그 포스팅에는 애도의 댓글로 가득했다. 

 

‘제 마음이 다 아프네요.’

 

‘남편 분, 잘 위로해 주세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일은 나만 당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 아줌마들은 나를 위로한답시고 남편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희 남편도 베트남 와서 처음 머리 깎았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머리 잘 자르는 미용실 소개해드릴 테니 너무 우울해하지 마세요.” 

 

아내의 전임자로 일하던 부장도 내 머리 만행 사건을 접하고는 아내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도 부군의 머리에서 윗머리만 길게 해서 깎인 적이 있어요. 옆머리를 스님처럼 완전히 밀렸던 경험이…. 우리나라는 그래도 3~6mm 정도는 남기는데…”

 

전임자의 말에 위로가 되었는지 아내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모두 한 번씩 당하는 일이긴 하군요ㅋㅋㅋㅋㅋㅋㅋ”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웃어넘길 일이 아니에요. 가발 얹은 느낌이라 얼마나 괴로웠다고요. 부군 잘 위로해주세요.” 

 

그러면서 해결책을 제시해줬다. 

 

“아줌마들끼리 정보 공유해서 부군께 괜찮은 곳 추천해드려요.” 

 

베트남 이발소 모습. 아들과 함께 머리를 깍고 있다. 사진=김면중 제공


아내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수소문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한 군데 알려줬다. 그날의 트라우마 이후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이발기로 혼자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옆머리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는데 뒷머리는 영 아니었나 보다. 어느 날 내 뒷모습을 본 아내는 언성을 높였다. 

 

“이게 뭐야? 쥐가 파먹은 모습이잖아?” 

 

그 꼴을 보고 바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 연락처를 알려줬다. 

 

마침 새로 등록한 베트남어 수업도 시작할 때라 잘 됐다 싶었다. 아들과 함께 그 미용실을 찾았다.

 

“한국인 원장님한테 자르고 싶어요.” 

 

난 당연히 한국인 원장을 찾았다. 

 

“원장님은 미리 예약하고 오셔야 자르실 수 있어요.” 

 

베트남 직원 한 명이 베트남 억양의 영어로 내게 말했다. 

 

“오늘은 못 자르는 거예요?”

 

“베트남 직원에게는 자르실 수 있어요.” 

 

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내 머리를 깎아줄 미용사를 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단정한 헤어스타일의 훈남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저 헤어스타일의 소유자라면 아주 이상한 스타일로 깎지는 않겠군.’ 

 

난 정말 그를 믿었다. 그랬는데….

 

30분 후 안경을 쓰고 확인한 거울 속 내 모습은 ‘오 마이 갓’ 지난번보다 심각했다. 아예 옆머리와 뒷머리가 민둥산이 돼 있었다. 살색 두피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내가 머리를 깎는 동안 자고 있던 아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내 머리를 확인하고는 킥킥대고 웃어댔다. 

 

“아빠 머리, 정말 웃기다. 버섯 같아.”

 

저번에는 파인애플이라더니 이번에는 버섯이란다.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행여 누가 볼세라 빨리 택시를 불러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슬픈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뒤에서 “찰칵” 소리가 났다. 또 아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깔깔깔깔” 사악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웃지 마! 나 심각해!” 

 

“그 머리가 어때서? 그래도 머리숱 없어서 얹히는 것보다는 낫구먼. 숱 많은 게 어디야.” 

 

아내는 나를 위로해준답시고 이런 말을 해줬다.  

 

그러고는 또 테러 당한 나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만방에 알렸다. 이번에도 수많은 애도의 댓글이 달렸고….

 

이 도시에 처음 온 외국인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테러를 경험하는 것일까. 그냥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일까? 호기심 넘치는 아내가 해답을 알아내 왔다. 

 

“우리 베트남 직원들한테 물어봤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짧게 깎는 게 표준이래. 날씨도 더운 데다 대부분 사람들이 헬멧을 써야 하는데 머리가 길면 눌리니까. 그래서 그렇게 짧게 깎는 거래.”

 

아내 회사의 또 다른 베트남 직원은 언젠가 이런 말도 해줬다. 

 

“저는 헤어스타일만 보고도 누가 한국 남자인지 알 수 있어요.” 

 

“어떻게요?” 

 

“긴 머리에 파마까지 했으면 100% 한국 사람이에요. 베트남 사람은 헬멧도 자주 쓰는 데다 머리에 땀 차는 거 싫어해서 절대 긴 머리에 파마머리는 하지 않거든요.” 

 

기후나 환경은 수많은 것을 결정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베트남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극단적인 투 블록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이발 테러 경험은 이 도시를 처음 찾은 이방인들에게 흔한 듯했다. 페이스북에 ‘호찌민에 사는 외국인들’ 그룹이 있는데, 어느 유럽 남자가 포스팅을 올렸다. 

 

“호찌민에서 머리 잘 자르는 데 추천 좀 해줘요.” 

 

대놓고 사연을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이 한 줄의 질문에서 이 남자가 경험했을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도 끔찍한 경험을 했나 보군.’ 

 

난 그렇게 확신했다.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이 포스팅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중 가장 많이 추천된 곳은 타오디엔(Thảo Điền)이라는 동네에 있는 시리아노 살롱(Siryano Salon)이란 곳이다. 이곳 이발사가 시리아 사람이라는데, 그래서 ‘시리아노’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다. 구글맵을 검색해 리뷰를 확인해봤더니 대부분의 평이 좋다. 이곳에서 머리를 자른 고객들이 올린 사진까지 확인하고는 확신을 얻었다. 

그래, 다음 머리 깎을 곳은 여기다! 

 

시간이 흘러 머리가 어느 정도 자랐다. ‘이제 머리 좀 잘라야겠는 걸’ 하고 생각할 즈음, 몇 개월 동안 평화롭던 이 도시에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며칠 후, 카카오톡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떴다. 

 

‘5월 27일부로 호찌민 시는 종교시설에서 10명 이상의 활동, 미용·이발 서비스의 영업 중지 및 레스토랑의 홀 영업도 20명 이하에서 테이크아웃만으로 변경하고 호텔 레스토랑도 투숙객만 접대하도록 변경했습니다.’

 

요즘 나는 머리를 묶고 다닌다. 이발 영업 중지가 해제될 날만 기다리면서.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미용실이 셧다운 되었지만 짧게 자른 머리로 버틸 수 있게 됐다. 사진=김면중 제공


생각해보니 한 달 전의 ‘어색해진 짧은 머리’ 덕에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덕분에 이 시국에 조금이라도 더 깔끔한 상태로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됐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내 이야기만 듣고 ‘베트남 로컬 미용실에서는 머리를 자르면 안 되겠군’ 하고 생각하지 말기를! 베트남 사람은 자수나 재봉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자랑할 정도로 손재주가 좋다. 미용 실력도 준수하다. 내 머리를 망친 것은 ‘어련히 잘 잘라주겠지’ 생각했던 나의 나이브함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오래 산 동포들을 만나보면 다들 멋진 헤어스타일을 자랑한다. 그들은 미용실에 가기 전,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했다. 자신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의 사진을 미리 스마트폰에 저장해 보여줄 뿐 아니라,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한다고 했다. 

 

결국, 이국땅에서 멋쟁이가 되는 것도 본인 하기 나름인 것이다.

 

김면중은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에 입문, 남성패션지, 여행매거진 등 잡지기자로 일한 뒤 최근까지 아시아나항공 기내지 편집장으로 근무했다. 올해 초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도시인 베트남 호찌민에 머물고 있다.

김면중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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