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Story↑Up > 엔터

[정수진의 계정공유] K-고딩 좀비들이 세계를 점령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

어른이 부재한 곳에서 생존해야 하는 아이들…세계 1위 기뻐하기엔 뒷맛이 '씁쓸'

2022.02.08(Tue) 16:33:06

[비즈한국] “또 좀비야?” 그렇다. 또 좀비다. 영화 ‘부산행’으로 시작된 이른바 ‘K-좀비’는 영화 ‘서울역’ ‘반도’ ‘살아있다’와 드라마 ‘킹덤’ 시리즈 등을 거치며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오징어 게임’ ‘지옥’에 이어 또 다시 전 세계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좀비(부산행)와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는 좀비(살아있다)에 이어 학교를 점령한 좀비 사태를 그려내는 ‘지금 우리 학교는’. 보호 받아야 할 학생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자력으로 생존하고자 하는 모습이 몰입력을 돋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지금 우리 학교는’은 ‘요나스 바이러스’라 이름 붙어진 좀비 바이러스가 경기도의 가상 도시 효산시의 효산고등학교에서 퍼져 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인 남온조(박지후)와 이청산(윤찬영) 등 2학년 5반 그룹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학교를 점령한 좀비 바이러스에서 생존하려는 모습이 주 내용이다. 이 바이러스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인위적인 것인데, 효산고 과학 교사인 이병찬(김병철)이 왕따가 되어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던 아들을 위해 테스토스테론을 정제해 만든 바이러스를 아들에게 주입시킨 것이 시작이다. 궁지에 물린 쥐가 고양이를 물 수 있듯, 아들이 폭력에 분노하여 반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는 것.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이기심 또한 ‘지금 우리 학교는’에 등장한다. ‘부산행’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던 것처럼, 효산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웃 도시들은 배척하고 받아주지 않는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문제는 이 바이러스가 이병찬 선생의 뜻대로 되어주지 않는다는 거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심정지가 일어나고 감염자의 뇌를 지배한 채 다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좀비가 되어 버리기 때문. 폭력을 막기 위한 최후의 자구책으로 만든 바이러스가 도리어 세상을 망하게 하는 바이러스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바이러스는 효산고를 넘어 효산시 전체로 퍼져 나간다.

 

학교가 배경인 덕분에 ‘지금 우리 학교는’은 그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급식실에서 벌어지는 격투, 도서관에서 좀비떼를 피해 도망치는 신들은 학원물이기에 가능했던 장면들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지금 우리 학교는’은 10대 학생들의 효산고를 중심으로 비추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어른들을 중심으로 한 효산시의 상황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이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된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어른들이 구해주러 올 것이라는 아이들의 믿음은 배신당하고, 다수를 살리기 위한다는 공리주의 목적으로 효산시의 통신이 차단되고 급기야 효산시 곳곳에 폭격을 가하게 되기 때문. 물론 바이러스를 막을 방안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병찬 선생의 노트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 송재익(이규형)이나 남온조의 아버지이자 효산소방서 구급팀장 남소주(전배수), 정치적 실리를 따지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는 국회의원 박은희(배해선) 등 학생들을 구하기 위한 어른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영향력이 미비하다는 점에서 속수무책으로 많은 아이들을 잃은 바 있는 세월호 참사를 오버랩시키게 되는 것이다(미국에서 이 드라마를 보고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떠올리는 식으로). 책임감 있는 어른이 부재한 공간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학생들의 분투는 분명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기에 10, 20대 젊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며 신선함을 안겼다. ‘벌새’로 이름을 알린 박지후부터 윤찬영, 로몬, 유인수 등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들이 여럿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물론 ‘지금 우리 학교는’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 드라마는 2009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주동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데, 좀비 바이러스의 발생과 전파 과정에서 실종된 개연성, 낭비되는 몇몇 캐릭터의 활용, 반복되며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느린 전개 등 비판의 여지는 충분히 많다. 그럼에도 하룻밤을 꼬박 새며 무려 12부작을 ‘정주행’하게 하는 원동력은 분명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인 만큼, 누구나 한 번 거치는 10대 특유의 불완전하고도 사랑스러운 감성에 십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숨길 수 없고, 내가 위험에 처할 것이 뻔히 보이면서도 친구의 손을 놓을 수 없는 순수한 감정이 ‘지금 우리 학교는’의 많은 문제점에 눈감게 한다.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하는 학교 폭력 문제와 디지털 성폭력, 노골적으로 ‘기생수(기초 생활 수급자)’라 부르며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는 빈부격차 문제, 등수로 모든 것이 재단되는 입시 경쟁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을 짚으며 의식을 촉구하는 메시지도, 다소 촌스럽긴 하지만 강렬하게 다가온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영화 ‘부산행’은 거론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해 거론하진 않는다. 그러나 어른들을 믿고 기다렸다 참변을 당했던 세월호의 아픔은 이 작품에 진하게 담겨 있다. 어른들의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지금 우리 학교는’은 반갑다. 영화 ‘벌새’로 독립영화계의 스타로 떠오른 남온조 역의 박지후, 면역자가 되어 ‘절비(절반만 좀비)’의 극강 전투력을 보여주는 최남라 역의 조이현, 달려드는 좀비떼를 피해 인상적인 도서관 액션신을 선보인 이청산 역의 윤찬영, 남라를 향한 지고지순한 순정과 소녀들을 홀릴 만한 매혹적인 마스크를 지닌 이수혁 역의 로몬, 죽어도 죽어도 죽지 않는 극강의 빌런 윤귀남을 연기한 유인수, ‘오징어 게임’에 이어 다시 한번 존재감을 강렬히 드러내는 이나연 역의 이유미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신선한 얼굴들이 많다. ‘걸크러시’를 일으키는 양궁부 장하리를 연기한 하승리의 경우,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의 딸 혜림 역으로 출연한 아역 배우 출신이라 하여 더욱 반가웠다.

 

책임감 없는 어른의 모습은 학생들을 지켜야 할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교사들에서부터 그려진다. 왕따와 학폭 문제가 발생해도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하던 교장(엄효섭)을 위시로 학생부장 교사 정용남(윤경호) 등은 이병찬 선생이 요나스 바이러스를 만들게 되는 원인 중 하나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모두가 ‘지금 우리 학교’가 이루고 있는 쾌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 한 가지 씁쓸한 점은 전 세계에 어필하는 이른바 K-드라마와 영화들이 유독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포착하거나 아포칼립스물에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다. ‘부산행’이나 ‘킹덤’ 같은 좀비 아포칼립스는 물론 크리처물이었던 ‘스위트홈’이나 비뚤어진 신념이 세계를 지배하던 ‘지옥’ 같은 작품을 봐도 항상 재난이 닥쳐오는 상황에서 상식과 신념을 가지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는 어른이나 사회는 부재하는 식이었다. 오히려 어른들은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돈이라는 물질주의에 홀려 모든 것을 내팽겨칠 수 있는 극단의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대중문화에서 그려지는 이런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과연 정상일까? 세계에 우리 대중문화 콘텐츠가 널리 퍼지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앞으로 이런 작품들이 또 만들어진다면 그 안에 담긴 사회의 문제점이 그저 상상의 결과물이길 바라는 것은 순진한 욕심일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