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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강릉에서 만난 '여성 예술가'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신사임당 그림의 모티브가 된 오죽헌 정원, 허씨 생가터 주변에 자리한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2022.05.25(Wed) 10:53:45

[비즈한국] 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드물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도 그랬다. 그들은 세상과 끊임없이 불화하거나, 실제 삶과는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했다. 강릉엔 이러한 여성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유명했으나 그리 행복하진 않았던 두 여성의 삶을 만나볼 수 있다. 

 

“내가 한스러운 건 첫째, 조선에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것이다.” 허난설헌은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기념관에 세워진 허난설헌 동상. 사진=구완회 제공

 

#생전에 현모양처 아닌 ‘화가 신씨’로 유명

 

신사임당이 아들 율곡을 낳아 기른 오죽헌은 강릉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오죽헌의 오른쪽 방은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는 몽룡실이다. 15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친정이며 대대로 사위나 딸에게 물려주던 집이었다.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도 장인 이사온에게 이 집을 물려받았다. 

 

이 무렵 사위가 처갓집을 물려받는 데는 보통 조건이 하나 붙었다. 처가살이를 하거나 처갓집 인근에 살 것. 신사임당이 살던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처가살이가 일반적이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한 장군 이순신도 10년 동안이나 처가살이를 했다. 여성들은 친정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외갓집에서 보냈다. 

 

15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친정이며 대대로 사위나 딸에게 물려주던 집이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외갓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율곡의 어머니 사랑은 각별했다. 아버지는 지어드리지 않았던 행장(죽은 사람의 일생을 적은 글)을 어머니께만 지어드릴 정도였다. 율곡의 행장에 묘사된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멀다. 율곡이 어머니의 가정교육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자녀가 잘못이 있으면 훈계를 했다”는 한 문장뿐이다. 아내로서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아버지께서 어쩌다가 실수가 있으면 반드시 간하였다”는 내용이 전부다. 남편의 실수는 반드시 지적질(?)하는 아내가 어찌 가부장 사회의 현모양처일 수 있을까.

 

대신 율곡은 어머니의 재능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경전을 읽고 글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고 했다. 특히 신사임당이 뛰어난 화가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사실 신사임당은 당대에 현모양처가 아니라 ‘화가 신씨’로 유명했다. 훗날 율곡의 학통을 이어받은 송시열에 의해 “마땅히 율곡 선생을 낳을 만큼 훌륭한 어머니”로 찬양되면서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오죽헌에 가면, 율곡을 낳은 몽룡실뿐 아니라 신사임당 그림의 모티브가 된 정원도 찬찬히 살펴볼 일이다. 

 

까마귀처럼 검은 오죽헌의 대나무. 오죽헌의 이름은 이 대나무에서 따왔다. 사진=구완회 제공

 

#가부장 세상과 불화한 시인, 허난설헌

 

강릉에서 태어난 또 다른 조선 예술가는 허난설헌이다. 허난설헌과 그녀의 동생 허균이 태어난 집터는 오죽헌에서 차로 10분이면 닿는다. 오죽헌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데 비해, 허난설헌 생가터에는 허씨 집안과 상관없는 고택이 있다. 대신 생가터 주변에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이 조성되고 그들의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도 만들어졌다.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도 외갓집이었다. 외갓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4남매는 뛰어난 문장으로 유명했다. 거기다 아버지 허엽까지 더해 ‘허씨 5문장’이라 불렸다. 여기에는 여성인 허난설헌도 당당히 한몫을 차지했다. 그녀가 8살 때 지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글은 보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명문이었다. 그 재주를 아깝게 여긴 아버지 허엽은 허난설헌을 허균과 함께 당시 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이달의 문하로 보냈다.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허난설헌의 시를 동생 허균이 모아 ‘난설헌집’을 펴냈다. 이들의 생가터 근처에 조성된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사진=구완회 제공

 

이후 허균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르고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쓰는 등 문명을 날렸으나, 허난설헌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15세에 혼인한 남편은 가정보다 술집을 더 좋아했고, 애지중지 키우던 어린 남매는 모두 전염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한스러운 건 첫째, 조선에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것이다.”

 

허난설헌은 이러한 불행을 책과 시로 달래다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묻힐 뻔한 작품을 살려낸 것은 동생 허균이다. 누이의 시를 모아 ‘난설헌집’을 펴낸 것. 이 중 일부 작품은 중국과 일본까지 전해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살아생전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죽어서 독자들에게 받은 셈이다. 

 

<여행정보>


오죽헌 

△주소: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 24

△문의: 033-660-3301

△이용시간: 09:00~18:00, 연중무휴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주소: 강원도 강릉시 난설헌로 193번길 1-29

△문의: 033-640-4798

△이용시간: 상시, 연중무휴, 기념관은 09:00~18:00, 월요일 휴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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