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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노동자들③ 사서] 책만 빌려주면 끝? 도서관 모든 일이 그들 몫

'꿀 보직'은 선입견, 도서관 수 늘었는데 인력은 줄어…팬데믹 이후 업무강도 더 높아져

2023.05.19(Fri) 13:38:08

[비즈한국] 2023년 5월 10일은 윤석열 정부 취임 1주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기도 하다. 비즈한국은 지난 1년간 한국 노동 현장에 일어난 변화를 추적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라진 노동자들’이다. ‘노동’이 사라진 건 아니다. ‘노동자’가 사라졌다. 정규직에서 기간제로, 지상에서 지하로, 직관적인 이름에서 세련되고 모호한 명칭으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빠르게 감춰지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사라지게 만들까. 일그러진 노동 현실을 짚어본다. 

 

강북문화정보도서관 내부 모습. 도서관은 지역 시민들에 문화, 복지 등을 제공하지만 정작 그 안에 있는 사서들의 노동은 보이지 않는다. 비즈한국은 감춰진 사서들의 노동을 살펴봤다. 사진=전다현 기자

 

지방에서 나고 자란 김성연 씨(가명)에게 도서관은 또 하나의 학교였다. 어렸을 때는 어린이 도서관에, 이후에는 지역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매일같이 갔다. 단순히 책만 읽는 공간은 아니었다. 문화 행사나 특강, 영화 상영, 각종 자격증 교육도 모두 도서관에서 누렸다. 지역 특성상 스터디카페나 공부방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도서관엔 무료 열람실이 있어 지역 중·고등학생들은 하교 후 도서관을 찾았다. 

 

대학생이 된 후 김 씨는 도서관에서 일을 하게 됐다. 지역에서 모집하는 대학생 공공기관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군내 여러 기관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도서관을 선택했다. ‘꿀 알바’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책을 좋아​하는 그로서는 도서관만큼 친숙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서 대출’이 주 업무이니 크게 힘들진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일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책을 읽기는커녕 앉아 있을 시간도 없었다. 매일 서고를 정리해야 했다. 신간이 들어오면  배치하고 훼손된 책을 골라냈다. 정기적으로 도서 배치도 바꿨다. 서고에 꽂힌 무거운 책들을 한 번에 빼내고 다시 새로운 책을 넣는 일은 중노동 수준이었다. 떨어지는 책에 손을 찧는 등 ​몸에 상처가 나는 건 예삿일이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팔다리가 후들거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힘들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책을 다루는 도서관 일은 물류센터 새벽배송 알바 못지않았다. 

 

몸만 힘든 것도 아니었다. 이용 안내를 하거나 대출을 할 때는 사람을 상대해야 했다. 도서 정리법을 배우는 데도 한참 걸렸다. 도서관 사서는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전문직이지만, 이들의 노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30년간 사서로 일하고 있는 김가현(가명) 씨는 “내 직업이 사서라고 하면 ‘너무 부럽다, 편하겠다, 책 읽을 시간이 많겠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우리가 일하는 모습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행사 기획부터 운영까지…보이지 않는 노동

 

비즈한국이 만난 전국의 사서들은 공통적으로 인력 부족과 업무량 증가를 호소했다.​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국립이든 사립이든 상황은 비슷했다. 코로나19 이후 ​사서의 ​업무량은 늘어난 반면 인력은 줄었으며, 개선 조치도 없다고 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최근 도서관 예산까지 삭감했다. 

 

2022년 전국문화기반시설총람에 따르면 문화기반시설 가운데 이용자가 ​가장 많은 ​시설은 ‘도서관’이다. 2022년 윤자호 일하는시민연구소 연구위원이 사서들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년간 업무량이 증가했다고 답한 비율은 561명 중 66.1%에 달했다. 원인으로는 인력 부족(30.2%),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서비스 증가(38.5%) 등을 꼽았다. 

 


앞서의 김가현 사서는 “보통 사서가 대출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행사나 교육 강좌 등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모든 일을 사서가 담당한다. 서평도 쓴다. 이전에는 자료 제공이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문화활동과 플랫폼 운영, 비대면 서비스 등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일은 늘었지만, 인력이나 급여는 그대로다”고 말했다.

 

노동 조건도 좋지 않다. 사서 공무원 기준 사서수당은 5급 이상 월 3만 원, 6급 이하 월 2만 원이다. 1982년 수당에 대한 기준이 생긴 후 40년간 같은 금액이다. 주말 근무에도 추가 수당이 없다. 

 

8년 차 사서 이민호(가명) 씨는 주말마다 죄인이 된다. 25개월 된 아이가 있지만, 육아를 함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씨는 “내년에 아내가 둘째를 출산할 예정이다. 내가 주말에 일을 하면 아내 혼자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족 모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주말 근무에 대한 어떤 보상도 없이 ​사명감으로만 버텨내야 한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프로그램이 늘면서 업무도 증가했다. 전문성을 살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고 털어놨다.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리는 행사들. 도서관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와 강연을 사서들이 기획하고 진행한다. 사진=전다현 기자

 

시립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이미현(가명) 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씨는 “기본적으로 사서 고유의 업무가 있다. 자료 대출이나 반납, 도서 정리 등이다. 그런데 이 외에도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행사, 디지털 서비스 모두 사서의 일이다. ICT 기반으로 도서관 정보가 바뀌면서 이걸 사서가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업무 강도가 매우 높아졌다. 또 주말에는 평일보다 ​방문객이 ​더 많기 때문에 사서들이 돌아가면서 의무적으로 근무를 해야 해서 육아도 어렵다”고 말했다. 

 

#예산 줄고 인력도 줄고…법적 기준 못 미치는 도서관 수두룩 

 

도서관은 점점 늘고 있다. 전국의 작은도서관은 2021년 기준 6448개였지만, 2023년 5월 18일​ 기준으로 7492개로 늘어났다. 전국 공공도서관은 매년 30개 이상, 작은도서관은 2021년 대비 올해 5월 18일 1000개 이상 늘었지만, 사서 교사 정원은 동결됐다. 지자체나 사립에서 운영하는 도서관도 상황은 비슷하다. 도서관법은 공공도서관 사서 수를 최소 4명에 인구 2만 명·면적 330㎡ 기준 1명씩 추가 배치하게 규정했지만, 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사서 인력이 1~2명밖에 되지 않는 도서관도 비일비재했다.

 

 


도서관 수는 늘었지만, 되레 예산이나 인력을 줄이는 사례도 늘었다. 강북구도시관리공단 노동조합은 최근 3개월간 ​강북구청 앞에서 인력 충원,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데, 공공도서관 인력 부족도 포함돼 있다. 강북구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은 총 7곳인데 이 중 3곳은 정규직 사서 인력이 1명뿐이다. 부족한 인력은 기간제나 대학생 아르바이트로 채워졌다. 

 

강북구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민규(가명) 씨는 “강북구 도서관의 사서 인력은 법적으로 44명이 돼야 하지만, 현재 23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1년에 3~4명이 퇴직하면 1~2명만 충원하는 식이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비대면 프로그램이 새로 생겼고, SNS 운영도 사서들이 하고 있다. 실제 업무량이 30% 이상 늘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마포구가 마포중앙도서관의 예산 삭감을 추진해 논란이 일었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중앙도서관의 예산을 30% 삭감하고 작은도서관들을 문고나 스터디카페로 용도를 변경하려 해 반대여론에 부딪힌 바 있다. 

 

현장의 사서들은 윤석열 정부의 기조 때문에 인력난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철수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코로나19 이후로 사서 역할이 굉장히 확장됐다. 업무가 늘었으면 그만큼 정책적으로 받쳐줘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통합활용정원제 때문에 인력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로 문화기반시설 중 가장 많은 이용자가 방문한 시설이 도서관이지만,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통합활용정원제는 매년 공무원 정원의 1%가량을 감축·재배치해 효율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인사 정책이다.

 

아산시립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 김지민(가명) 씨는 “실제로는 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도서관이 훨씬 많다. 우리 도서관만 해도 그렇다. 사서의 업무가 잘 알려지지 않다 보니 지자체장이 도서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도서관은 종일 민원에 시달리고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이 혼합된 노동 현장이다. 그러나 편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노동 환경이 나아지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인력은 더 줄고 업무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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