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원유 배럴당 70~80달러의 안정적인 박스권은 이제 추억이 되고 있다. 국제유가는 100달러 선을 넘나들고, 4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준비제도는 성명서 문구까지 바꿔가며 “최근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기여하고 있다”고 직접 언급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앞으로 30~60일 사이의 유가 동향이 정책 문구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한 발언도 시장을 흔들었다. 주유소에 갈 때마다 한숨이 늘고, 식료품 가격은 슬금슬금 오르고, 항공권은 비싸졌다. 소비자로서는 지갑이 얇아지는 시기지만,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자본은 늘 어딘가로 흐른다. 고유가 국면에서 그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읽어내면 적어도 인플레이션에 자산이 잠식되는 속도는 늦출 수 있다.
우선, 정유주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가장 직관적인 선택지지만 함정도 가장 많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가 좋다”는 통념과 달리, 정유사 실적의 핵심 변수는 유가 자체가 아니라 정제마진이다. 즉, 원유를 사다가 휘발유·경유로 정제해서 팔 때 남는 차익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정유화학 섹터가 시장에서 일종의 ‘빈집’ 상태라는 점이다. 그동안 기대치가 낮아진 상황에서 화학제품과 기초 소재의 판가가 급격히 오르며 1분기 실적 서프라이즈가 나오고 있다.
다올투자증권은 향후 아랍에미리트(UAE)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 이슈로 촉발될 중동 패권 변화가 장기적으로 유가 시나리오에 선반영되며 섹터 전반으로 온기가 확산될 가능성을 짚었다. 다만 S-Oil, GS,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정유사들은 글로벌 정제마진과 환율, 재고평가손익에 따라 분기 실적 변동성이 꽤 크다. 정유주에 투자할 것이라면 분기 실적 발표에서 정제마진과 재고평가손익 항목을 꼭 확인하고, 단순한 ‘유가 추종주’로 착각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또 원유 ETF·ETN은 약이자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 상품은 유가 방향성에 직접 베팅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도구다. 그런데 여기엔 함정이 하나 있다. 바로 콘탱고(contango)에 따른 롤오버 비용이다. 이 상품들은 실제 원유를 보유하는 게 아니라 선물 계약을 굴린다. 만기가 다가오면 다음 달 선물로 갈아타야 하는데, 다음 달 선물 가격이 이번 달보다 비싸면 그 차이만큼 손실이 누적된다. 유가가 횡보하거나 살짝만 올라도 ETF 가격은 조금씩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단기 트레이딩 도구로는 유효하지만 “장기 보유로 유가 상승에 묻어두자”는 발상은 권하기 어렵다. 굳이 장기 노출을 원한다면 에너지 기업 주식을 담는 섹터 ETF가 훨씬 합리적이다. 같은 유가 상승이라도 콘탱고 손실 없이 기업의 실적과 배당으로 이익을 누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명목물가 상승 수혜주’라는 새로운 시각도 있다. 유가가 오르면 모든 물가가 오르는데, 이때 가격을 그대로 또는 그 이상으로 전가할 수 있는 기업이 진짜 수혜주라는 관점이다. 대표적으로 데이터센터 밸류체인 안의 전력 설비 기업, 조선 엔진 분야가 거론된다. AI 붐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전력 설비는 공급 부족 상태고, 친환경 규제 강화로 조선 엔진은 가격 결정력을 가진 영역이 됐다. 밸류에이션 부담이 있다는 점은 분명한 리스크지만, 명목 GDP가 인플레이션과 함께 부풀어 오르는 국면에서는 가격 전가력이 곧 마진 방어력이 된다. 단순한 인플레이션 헤지를 넘어 인플레이션을 수익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인 셈이다.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도 하나 더 늘려보자. 유가 상승은 곧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진다. 운송비가 모든 재화의 가격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4월 FOMC가 성명서에서 “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이 에너지 가격 상승을 반영한 결과”라고 직접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국면에서 전통적으로 기능했던 자산은 금, 은, 물가연동국채(TIPS) 등이다. 금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던 시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던 시기에 모두 안전자산 역할을 했다.
국내 투자자라면 KRX 금현물 계좌나 ETF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금은 달러 강세 국면에서는 힘을 못 쓰는 경향이 있으니 미국 금리 방향과 함께 봐야 한다. 리츠(REITs)도 인플레이션 헤지 후보로 거론되지만, 고금리 국면에서는 차입 비용 부담으로 오히려 약세를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자. 자산의 5~10% 정도를 금이나 인플레이션 연동 자산에 분산해두는 정도가 보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접근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확실한 재테크는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투자 수익률 5%를 더 짜내는 것보다 한 달 기름값과 전기료 10만 원을 아끼는 게 세금도 없고 위험도 없는 확정 수익이다. 알뜰주유소 정보를 알려주는 오피넷 앱은 같은 동네에서도 리터당 100원 넘는 차이를 보여준다. 유류세 환급이나 주유 할인이 큰 신용카드, 대중교통 할인 카드를 점검해볼 만하다. 이런 절약분을 그냥 쓰지 말고 매달 ETF 적립으로 돌리면, 고유가가 오히려 자산을 불려주는 계기가 된다.
유가는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대응의 영역이다. 파월 의장조차 향후 30~60일의 유가 동향이 연준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인정할 만큼 변동성이 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시나리오가 펼쳐져도 견딜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짜두는 것이다. 투자에서 가장 비싼 말은 “이번엔 다르다”이고, 가장 든든한 말은 “분산해뒀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세아 금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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