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연간 15조 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낳는 ‘구조적 재난’이다. 비즈한국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비만 청구서의 근본 해법을 찾아 나섰다. 무너진 소아청소년 식생활 환경을 들여다보고, 비만 치료제 급여화와 설탕세 도입을 둘러싼 첨예한 정책적 딜레마를 살펴본다. 나아가 약물 만능주의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100조 원 시장의 판도를 바꿀 K-바이오의 혁신 현장까지 조명한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글로벌 상표명 젭바운드) 등 글로벌 빅파마의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계열 치료제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지난해 젭바운드 매출은 135억 4240만 달러(18조 3000억 원), 위고비 매출은 134억 달러(19조 4000억원)를 기록하며 글로벌 의약품 매출 10위와 8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올 1분기에도 두 치료제 모두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상승세를 이어가며 의약품 시장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약·바이오 기업이라면 비만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너도나도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아성에 도전할 파이프라인 확보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위고비와 마운자로 열풍은 뜨겁다. 지난해 위고비 국내 매출은 4725억 원을 돌파했고, 9월 출시된 마운자로 역시 4개월 만에 2155억 원의 매출을 올렸을 정도다. 하지만 두 제품의 국내 가격은 해외보다 수배 이상 높다. 다른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비만치료제도 제약 주권 확보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미국선 3만 원, 한국선 70만 원?” 글로벌 빅파마에 휘둘린다
국내와 해외의 위고비와 마운자로 가격 차이는 제법 크다. 이에 공급망을 쥐고 있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한국 시장에서만 비만치료제를 유독 비싸게 판매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다.
해외에서 위고비, 마운자로 투약 비용은 국내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의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환자 부담은 정가의 30% 수준으로 줄어든다. 고용량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한 달에 10만 원대 초반이면 처방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도 최근 전자상거래 플랫폼 등을 통해 약가가 대폭 낮아져 위고비 저용량은 4만 원대, 고용량은 20만 원대에 처방받을 수 있다. 마운자로 가격도 한 달 10만 원 안팎으로 형성돼 있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민간 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제조사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위고비를 한 달에 25달러(3만 4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30만~50만 원대에 처방 가능한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영국은 공공의료(NHS) 급여 대상자의 경우 거의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으며 사비로 구매해도 20만 원대 수준이다.
반면 국내 처방 비용은 용량에 따라 한 달(4회 투약)치인 1펜당 30만~70만 원대에 형성돼 있다. 마운자로의 국내 출시 초기, 위기감을 느낀 노보노디스크가 저용량 위고비의 국내 공급가를 20만 원대 초반까지 낮추고 ‘글로벌 최저 수준’이라고 홍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여전히 높다.
한국은 비만치료제가 100% 건강보험 비급여인 탓에 제약사가 공급가를 내려도 병원이 마진과 진료비를 붙인다. 결국 공급가가 20만 원대라도 환자가 약국에서 지불하는 실결제액은 30만~50만 원대를 훌쩍 넘긴다. 이 때문에 일부 환자들은 해외에서 약을 직접 처방받아 들여오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마운자로 국내 공급사인 한국릴리 관계자는 “치료제 가격을 산정할 때 약의 가치와 함께 각국의 규제와 경쟁약을 포함한 시장 상황,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한다”면서 “한국은 비만치료제가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안 돼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가격이 높은 것이지, 한국 소비자에게만 비싸게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가격만이 아니다. 전 세계 수요가 폭증하다 보니 국내 공급 차질 우려도 상존한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는 비만뿐만 아니라 치매, 수면무호흡증,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등으로 약의 적응증을 확장하고 있다. 양 사가 생산시설을 계속 확충하고 있어도 향후 비만치료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처럼 글로벌 빅파마의 생산 일정과 가격 정책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만큼 국산 신약을 통한 K-비만치료제 제약 주권 확보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한미약품 ‘선두’ 셀트리온 ‘4중 작용제’…제형 혁신으로 판 흔드는 K-바이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기 위해 잰걸음을 걷고 있다.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은 오는 2030년 100조 원 이상으로 전망되는 만큼 포기할 수 없는 미래 먹거리가 됐다.
현재 K-비만치료제 1호를 탄생시킬 제약사로 가장 유력한 곳은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한국인 맞춤형 비만치료제로 개발한 ‘한미에페글레나타이드오토인젝터주’ 품목허가를 신청해 이르면 올 하반기 상용화가 예상된다.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전량 생산할 예정이어서 향후 비만치료제 국산화 기대감도 높다.
이 밖에 한미약품은 미국에서 임상 2상 시험 중인 3중 작용제(GLP/GIP/GCG) ‘HM15275’, 미국 임상 1상 단계인 근육 증가 기전의 신약 ‘HM17321’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한미에페글레나타이드오토인젝터주에 디지털 치료기기를 결합해 복약과 식단, 운동을 통합 관리하는 스마트 환자 케어 솔루션 구축에도 나서는 등 비만 시장 패러다임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후발주자들은 기존 주사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형을 개발하거나 약물 지속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등 차별화 전략 승부수를 던졌다.
일동제약은 올 2분기 중으로 경구(먹는 알약) 제형의 비만치료제 ‘ID110521156’의 미국 임상 2상 진입을 목표로 한다. 이 약물은 앞선 임상에서 투약 4주 만에 평균 9.9% 체중 감량 효과를 보여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일라이릴리의 먹는 비만치료제보다 감량 효과가 뛰어나다는 게 일동제약 측의 설명이다.
대웅제약은 환자의 접근성을 극대화한 마이크로니들 패치형 비만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동전 크기의 패치를 1주일에 한 번 피부에 붙이면 미세한 바늘을 통해 약물이 천천히 흡수되는 방식이다. 현재 임상 1상 단계를 밟고 있다.
주사제 투여 주기를 1주일에서 한 달 이상으로 늘리려는 플랫폼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장기지속형 약물 전달 기술 ‘스마트데포’를 보유한 펩트론은 1개월 이상 효력이 지속되는 위고비 성분의 ‘PT403’과 마운자로 성분의 ‘PT404’에 대해 글로벌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특히 일라이릴리와 플랫폼 기술평가(MTA) 계약을 체결하고 공동 연구 및 검증 단계를 밟고 있어 향후 기술수출 본계약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유한양행은 인벤티지랩과 손잡고 위고비 성분(IVL3021)과 마운자로 성분(IVL3024)을 모두 1개월 지속형 주사제로 개량하는 투트랙 공동 개발에 나섰다. 두 파이프라인 모두 연내 임상 1상 시험 계획(IND)을 신청하는 것이 목표다.
셀트리온은 한발 더 나아가 글로벌 빅파마들도 아직 상용화하지 못한 4중 작용 비만치료제 ‘CT-G32’ 개발에 돌입했다. 식욕 억제와 체중 감량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기존 약물의 치명적 단점인 근손실 부작용까지 개선한 계열 내 최초 혁신 신약(First-in-class)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연내 동물 효능 평가를 마치고 내년 상반기 글로벌 임상 1상에 돌입할 계획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일라이릴리가 개발 중인 3중 작용 비만치료제의 비반응률이 10% 이하로 예상되는데, 당사의 4중 작용제는 약물이 듣지 않는 비반응률을 5% 미만으로 낮출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국은 비만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을 이미 연간 15조 원 넘게 감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빅파마의 비만치료제 독점과 고가 정책은 치료제 급여화 확대를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다. 해결 방법은 비만치료제도 자급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것뿐이다. 도전에 나선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중 누가 ‘게임 체인저’가 될지 주목된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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