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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증명] '일단 등록하고 보자' 우리나라 상표 제도의 문제점

상표 등록 급증에 심사기간 2배 지체…불필요한 상표 선점으로 타인 선택권 제한

2023.06.08(Thu) 11:24:14

[비즈한국] 우리나라 상표법은 1908년 8월 구한말 시행된 ‘대한제국특허령’이 효시다. 지금 상표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11월 처음 만들어졌다. 최초 제정 상표법은 사용주의를 근간으로 출발했지만 1958년 개정을 통해 등록주의로 전환됐다.

 

EBS 유튜브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 캐릭터 펭수가 2019년 MBC 방송연예대상에 시상자로 참석한 모습. 사진=MBC 제공

 

등록주의는 상표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특허청에 상표를 등록함으로써 상표에 대한 권리가 발생한다. 반면, 사용주의는 특허청 상표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상표의 사용이라는 사실에 기초해 상표권이 발생한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상표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상표를 먼저 특허청에 등록해 선점하면 상표에 대한 독점권을 소유할 수 있다.

 

서구 상표법에 대한 기록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인은 포도주 병마개에 삼지창 모양의 표지를 사용해 포도주를 판매했는데, 로마산 포도주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주변 지역 상인이 자신의 포도주에도 동일한 삼지창 표지를 표시해 판매했다. 이는 문헌상 존재하는 최초의 상표 위조 사례로 알려졌다.

 

이후 근대의 상표제도는 1857년 제정된 프랑스 상표법(제조표 및 상품표에 관한 법률)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영국, 미국 및 독일 등에서 상표법이 각각 제정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서구 상표법은 상거래에 있어 부정 경쟁을 방지하고 영업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오랜 기간 시장 경제의 발달과 함께 발전돼 왔다.

 

우리나라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상표법을 도입한 역사가 매우 짧지만 상표 출원이 세계에서 9번째로 많은 다출원 국가다. 1000만 건에 가까운 중국의 상표출원 건 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2013년 20만 건을 시작으로 2020년 30만 건을 돌파해 현재 그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상표 출원이 급증하면서 상표 심사 제도와 등록주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우선 상표출원 급증으로 인한 심사 처리가 지나치게 지연되고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최대 8~9개월이면 심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1년 4~5개월이 소요되고 있다. 증가한 상표 출원만큼 상표 등록 여부를 심사하는 심사관 수가 증가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등록주의에 따라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전에 상표를 등록하는 것이 필수가 돼버렸는데, 상표 등록을 신청했지만 등록여부는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심사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심사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우선심사를 이용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우선심사가 늘다 보니 일반심사의 심사기간이 더욱더 지체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또 우선심사를 이용하면 심사 기간이 1개월 전후로 대폭 단축되는 효과가 있지만,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상표 출원 증가에 맞춰 심사관 수를 늘리거나, 일반심사와 우선심사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등록주의를 악용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상표 선점해 거래 질서를 왜곡하고, 진정한 권리자의 상표 사용을 방해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몇 년 전 EBS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펭귄 케릭터 ‘펭수’가 알려지기 시작한 초창기에 펭수 상표를 EBS가 아닌 타인이 상표 출원해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또 2020년에는 SBS TV 프로그램 골목식당에 “덮죽집”이 소개되었는데, 방송 후 바로 다음날 이 식당과 무관한 제3자가 “덮죽” 상표를 특허청에 신청한 사례가 있었다. 

 

등록주의는 상표 도용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상표를 무단으로 선점하면 상표 사용을 금지 또는 상표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권리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상표법에서는 도용한 상표의 등록을 막는 조항을 두고 있지만, 상표가 매우 널리 알려져야 하거나, 도용한 자의 부정한 목적 등이 입증돼야 하는 등 해당 조항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등록주의에 따른 불필요한 상표 선점으로 인한 타인의 상표 선택권이 제한되는 문제점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상표법에서는 불사용 취소 심판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또한 사회적 자원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문제점이 있다. 최근 불사용 취소심판 청구 건이 연 평균 2500여 건에 이르고, 실제 취소 비율도 80%에 육박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상표들이 사용 의사 없이 출원되는 지를 가늠할 수 있다. 다수는 단순히 타인의 상표 등록을 막을 목적으로 출원된 방어상표이거나, 등록만 해놓고 사용하지 않는 저장상표인 셈이다. 

 

등록주의의 경우 권리 안정성과 법적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상표권 부여의 법적 정당성이 부족하고 진정 보호 가치가 있는 상표가 보호받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불필요한 상표 선점으로 인한 폐해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등록주의 상표법에 사용주의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일례로 미국과 같이 상표 등록이나 유지를 위해 상표 사용 견본 등을 제출하도록 하는 사용주의 제도 등이 고려될 수 있겠다. 그 밖에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사용주의적인 요소들이 등록주의 근간의 상표법에 조화롭게 반영이 되어 법적 안정성도 유지하면서 진정한 상표권자를 가능한 넓게 보호하고, 부당한 상표 선점도 방지하여 불필요한 사회적 자원의 낭비도 막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공우상 특허사무소 공앤유 변리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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