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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게임업계에 유독 표절 시비가 많이 생기는 까닭

저작권 보호 대상은 구체적 표현방식…단순 아류작은 저작권 침해 아냐

2023.09.12(Tue) 10:20:45

[비즈한국] 여러 게임을 하다 보면, 그래픽, 스토리, 배경 설정, 규칙 등이 유사한 게임을 접하게 된다. 그 이유로는 아래와 같은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허드슨의 ‘봄버맨’ 플레이 화면. 사진=넥슨, 코나미 유튜브 캡처

 

우선 장르가 같아서 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 시리즈는 액션 RPG 장르에서 대중에게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게임이기 때문에 한동안 어떤 게임이 액션 RPG 장르로 출시되기만 하면 디아블로의 아류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르는 시류에 따라 변화하는 불확정한 개념이고, 해당 장르를 선택한 이상 장르적 특성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어떤 장르를 선택했다고 해서 게임 외형이 바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므로, 최근 들어서는 장르가 같다고 아류작이라고 몰아가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또는 세계관이 같아서 게임이 유사해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워해머’ 시리즈와 ‘워크래프트’, 스페이스 오페라를 배경으로 하는 ‘워해머 40K’ 시리즈와 ‘스타크래프트’는 게임에 등장하는 종족, 유닛 등의 외형과 성능이 유사하다. 

 

이 경우도 배경이 유사한 이상 종족·유닛이 비슷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점을 들어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제작사인 블리자드에 대해서 ‘기존의 요소를 잘 버무리고 활용할 줄 안다’는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다음으로 영화업계에서 사용되는 ‘오마주’와 유사하게 원작 가치를 높게 평가해 스스로 후속작임을 자처하며 원작의 영향력을 받았음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원작 제작사가 부도, 해체돼 후속작을 직접 내기 어렵거나 정식의 라이선스를 받기 어려운 경우, 다른 개발사가 팬심을 발휘해 후속작을 제작하는 것인데, △‘웨이스트랜드’와 ‘폴아웃’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와 ‘토먼트: 타이드 오브 누메네라’ △‘시스템 쇼크’와 ‘바이오쇼크’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처럼 정신적 후속작은 원작에 대한 존경을 전제로 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식 라이선스가 없다고 하더라도 업계에서 문제가 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오히려 ‘홈월드: 데저츠 오브 카락’처럼 원작의 라이선스를 보유한 회사가 정신적 후속작을 흡수해 시리즈물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사정 없이 오로지 원작의 높은 인기도에 편승하기 위해 깊은 고민 없이 원작의 주요 요소를 그대로 따라 만드는 아류작이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출시 시점이 중요하고, 아직 팬심이 깊게 형성되지 않으며, 캐주얼 게임이 주류인 모바일 게임에서 자주 등장한다. 아류작은 굳이 원작을 드러내지 않고 원작를 따라 했다는 사실도 숨기는데, 이 점에서 시장에서 용인되는 작품과 비난을 받는 작품의 차이는 원작에 대한 태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류작은 나쁜 것일까. 아류작이 확산됨으로써 원작의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등의 논리를 만들 수야 있겠지만, 중국산 아류작을 비난하는 여러 기사를 접해보면, 적어도 공개적으로 아류작을 옹호하는 여론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렇다면 아류작은 저작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일까. 이에 대해 국내 여론의 변화된 태도를 보면 매우 흥미롭다. 

 

과거 우리나라 게임이 일본 게임의 강한 영향력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네오플의 ‘신야구’와 코나미의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허드슨의 ‘봄버맨’ △넷마블의 ‘다함께 차차차’와 소니의 ‘모두의 스트레스팍!: 레이싱’은 게임의 룰이나 외형적으로 표현된 디자인의 방식이 유사하다. 

 

그러나 위 3건 모두 법원 판결에서 저작권 침해로 판단된 바는 없다. 오히려, 넥슨은 허드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봄버맨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다’는 판결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위 3건에서 저작권 침해 시비를 피해갈 수 있었던 주요 법적 논리는 다음과 같다(봄버맨 사건, 서울중앙지법 2005가합65093, 2005가합2006). 

 

①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되는 저작물이란, 창작적 표현형식을 말하므로, 추상적인 게임의 장르, 기본적인 배경, 게임의 전개방식, 규칙, 게임의 단계변화 등은 게임의 개념, 방식, 해법, 창작도구로서 아이디어에 불과하므로 그러한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② 게임이 갖는 제약에 의해 표현이 제한되는 경우 특정한 게임방식이나 규칙이 게임에 내재되어 있다고 해 아이디어의 차원을 넘어 작성자의 개성 있는 표현에 이를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게임방식이나 규칙은 특정인에게 독점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해 다양한 표현으로 다양한 게임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즉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대상은 구체적인 표현방식이다. 규칙, 배경 등 아이디어가 표현형식에 내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비교의 대상은 이러한 아이디어가 제거된 순수한 형식적 요소에 그쳐야 한다. 따라서 언뜻 봤을 때 동일·유사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저작권 침해물로 단정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을 고수할 경우 아류작 대부분은 저작권 침해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본 게임 역시 미국 게임을 따라 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위 3건이 한참 문제 되었을 당시 보도된 언론을 보면, 국산 게임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보다는 ‘일본 회사가 저작권법상 성립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해 국내 게임 산업을 압박한다’는 식의 보도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게임산업의 규모와 지형이 변화함으로써 위와 같은 법리를 고집하기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다. 위와 같은 법리로는 우리가 짝퉁 게임이라고 비난하였던 중국 게임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중국 짝퉁 게임을 비난하면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언론 보도가 많아졌다.

 

‘문제를 애써 축소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법적 보호를 주장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 이제는 우리나라가 게임에 대한 법적 보호를 주장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법리를 확대 해석하거나 새로운 법령의 조항을 도입하는 등의 시도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보기로 한다. ​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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