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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거인과 소인' 체급 다른 두 블랙홀이 꼭 닮은 이유

M87 중심 블랙홀과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 빛 고리부터 플라즈마 자기장 분포까지 비슷

2024.05.14(Tue) 11:44:56

[비즈한국] 지난 4월 10일은 총선일이었다. 천문학자인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2017년 천문학자들은 남극에서 북극까지, 지구 전역 여러 대륙의 10곳 넘는 전파 망원경을 총동원해 거대한 타원 은하 M87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모습을 담아내는 역사적인 관측을 성공했다. 말 그대로 블랙홀 주변, 우리가 빛을 통해 볼 수 있는 가장 마지막 한계, 사건의 지평선에 근접한 모습까지 관측하겠다는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다. 그 놀라운 관측 결과는 2019년 4월 10일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 이후 매년 4월 10일은 블랙홀을 닮은 도넛, 베이글을 먹으며 블랙홀의 첫 인증샷을 기념하는 ‘블랙홀데이’가 되었다. 

 

이후 천문학자들은 같은 방식으로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 블랙홀 주변 빛의 고리의 모습까지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드디어 빛의 고리를 너머 블랙홀 주변에 형성된 자기장의 존재까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이번에 관측된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자기장은 앞서 관측한 M87 은하 중심의 블랙홀의 자기장과 모습이 굉장히 유사하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두 블랙홀의 규모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 질량은 태양 질량의 400만 배 수준인 반면, M87 중심 블랙홀은 무려 태양 질량의 65억 배나 된다. 전혀 체급이 다른데도 굉장히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유사성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비밀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 은하 중심에 숨어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감싼 자기장의 존재를 관측했다.

 

블랙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익숙한 이미지,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온 블랙홀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영화에 등장하는 블랙홀 ‘가르강튀아’는 은하 중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 정도에 해당한다. 

 

이런 거대한 블랙홀은 강한 중력으로 주변의 물질을 집어삼킨다. 빠른 속도로 붙잡힌 채 맴도는 물질들이 블랙홀 주변에 원반을 이룬다. 워낙 빠른 속도로 맴돌기 때문에 원반 속 물질은 아주 뜨거운 온도로 달궈져 사실상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블랙홀 주변을 에워싸게 되는 이 뜨거운 물질 원반을 강착 원반이라고 부른다. 반으로 얇게 자른 베이글을 생각하면 좋다. 가운데 뻥 뚫린 구멍 속에 눈에는 안 보이지만 작은 블랙홀이 숨어 있다. 그리고 주변 동그란 빵이 바로 블랙홀 주변 강착 원반이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 블랙홀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각 요소를 설명한 그림. 사진=NASA


그런데 실제로 블랙홀 주변 강착 원반을 관측하면 재밌는 현상이 벌어진다. 아주 극단적으로 강한 중력으로 인해 블랙홀 주변 시공간은 아주 크게 휘어지고 왜곡된다. 블랙홀 주변을 지나가는 빛의 경로도 매우 크게 꺾인다. 아주 극단적인 일종의 중력 렌즈 현상이 벌어진다. 우리가 봤을 때, 블랙홀 앞을 지나가는 강착 원반 앞부분은 평범하게 보인다. 반면 블랙홀 뒤를 지나가는 강착 원반 뒷부분은 원래라면 뒤에서 보여야 하지만 완전히 꺾여서 우리 쪽으로 날아온다. 이렇게 휘어진 빛줄기는 블랙홀 위쪽과 아래쪽, 두 방향으로 날아올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관측하기에는 반으로 잘린 강착 원반 일부의 허상이 블랙홀 위에 하나, 아래에 하나, 두 개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봤던 블랙홀 이미지의 원리다! 

 

그렇다면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으로 관측한 블랙홀의 이미지는 영화와 같을까? 그렇지 않다. 천문학자들이 실제 관측한 건, 영화 장면보다 블랙홀 중심이 훨씬 더 깊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블랙홀 주변, 플라즈마가 빠르게 맴도는 강착 원반에서 밝은 빛이 새어나온다. 수많은 광자들이 블랙홀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극단적으로 빛의 경로가 꺾이면서 일부 빛은 블랙홀을 관측하는 우리 시야로 날아올 수 있다. 정확하게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광자들의 경로를 모아보면, 한가운데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보다 약 2~3배 더 넓은 범위에 걸쳐 뻥 뚫린 거대한 구멍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구멍을 둥글게 에워싼 빛이 고리 모양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모습을 블랙홀 주변 광자 고리라고 부른다. 

 

실제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관측을 통해 포착한 모습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바로 바깥, 그 주변 빛의 고리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블랙홀 주변을 스쳐 지나간 빛줄기들이 남긴 일종의 블랙홀의 그림자 실루엣을 본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이제 블랙홀 주변 자기장의 모습까지 포착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잠깐! 블랙홀에게 자기장이란? 얼핏 블랙홀은 자기장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렇다. 우주에서 관측할 수 있는 대부분의 블랙홀은 전기적인 전하를 띠지 않는다. 육중한 질량을 갖고, 빠르게 회전하는 ‘커 블랙홀’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블랙홀 자체는 이론적으로 자기장을 갖기 어렵다. 

 

다만 블랙홀 주변에 뜨겁게 달궈진 플라즈마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일종의 발전기 역할을 한다. 블랙홀 자체는 아니지만, 그 주변 원반에서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될 수 있다. 이번에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블랙홀의 자기장도 바로 이 자기장이다. 

 

블랙홀 주변 자기장을 관측하는 것은, 블랙홀이 얼마나 빠르게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며 성장하는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방으로 토해내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자기장의 존재는 그 방향에 수직으로 편광한 빛을 관측해서 알 수 있다. 만약 블랙홀 주변 자기장이 약하다면, 자기장은 블랙홀 주변 빠르게 회전하는 플라즈마의 방향과 나란히 둥근 고리 모양으로 블랙홀을 감쌀 것이다. 그러면 편광한 빛의 분포는 그에 수직으로, 중심 블랙홀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로 관측되어야 한다. 

 

만약 블랙홀 주변 자기장이 더 강하다면, 자기장은 점점 더 블랙홀 쪽으로 모여들게 된다. 그 결과 편광한 빛의 분포도 그에 수직으로, 블랙홀 주변을 나선을 그리며 꼬여 들어가는 모습으로 관측되어야 한다. 앞서 M87 은하 중심 블랙홀에서도, 이번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에서도, 두 블랙홀 모두 바깥에서 안쪽으로 꼬여 들어가는 나선 형태의 자기장 분포를 보인다! 

 

M87 은하 중심(왼쪽)과 우리 은하 중심(오른쪽)의 블랙홀 주변 자기장의 형태를 보여주는 이미지. 사진=EHT Collaboration


앞서 설명했듯이 두 블랙홀은 체급 자체가 다르다. 하나는 겨우(?) 태양 질량의 400만 배 수준, 다른 하나는 태양 질량의 약 65억 배 수준이다. 그런데 그 주변에 형성된 빛의 고리 모습부터 휘감고 있는 플라즈마 자기장의 분포까지 너무나 많은 부분이 닮았다. 이것은 시공간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블랙홀이라는 존재라면 그 질량, 즉 규모에 상관없이 동일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똑같이 적용되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물리 법칙은 우주에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 관측 결과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블랙홀을 감싼 자기장의 분포는, 블랙홀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밖으로 토해내고 있는지를 대변한다. 블랙홀 중심축을 따라 뻗어나가는 자기장 축을 따라서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깝게 에너지가 뿜어져나가는 제트가 방출된다. 실제로 M87 은하 중심의 블랙홀은 오래전부터 그 제트의 모습과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 블랙홀은 거의 매년 우리 태양 질량의 2~3배 정도의 질량을 꾸준히 집어삼키면서 계속 은하 바깥까지 관측될 정도로 큰 규모의 제트 흔적을 남긴다. 이번 관측 결과를 보면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도 이와 비슷한 자기장 분포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도 규모가 작긴 하더라도 어딘가로 이런 비슷한 에너지 제트를 뿜어내고 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은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이 농담처럼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은 “사람이라면 백만 년마다 쌀알 하나를 겨우 먹는 정도”로 물질을 찔끔찔끔 잡아먹는다. 당연히 바깥으로 토해내는 에너지 제트 역시 관측되지 않는다. 수억 년 전에는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도 강력한 제트를 뿜어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흔적이 관측되기는 했다. 이를테면 우리 은하 원반 위아래로 둥글게 뻗어나가는 거대한 전파 거품이나 페르미 버블 같은 구조들이다. 하지만 이 구조들이 실제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과거 제트 활동과 연관됐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앞으로 지구 전역의 더 많은 전파 망원경이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에 참여해, M87 중심 블랙홀과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관측할 예정이다. 블랙홀 주변 빛의 고리와 자기장의 분포가 실시간으로 어떻게 요동치고 흔들리는지를, 사진이 아닌 영상으로까지 담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주 망원경까지 동원해, 지구 크기를 뛰어넘는 더 거대한 크기의 망원경 효과를 얻는 ‘블랙홀 익스플로러’ 미션이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이 미션이 실현된다면, 지구 안에 갇혀 있던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보다 더 높은 해상도로 더 작은 스케일을 볼 수 있다. 비로소 미션의 이름에 걸맞게 사건의 지평선 코앞에 다다르는 블랙홀의 진정한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을 기다려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참고

https://www.blackholeexplorer.org/

https://www.eso.org/public/news/eso2406/?lang

https://www.mpg.de/21486001/magnetic-launching-of-black-hole-jets-in-perseus-a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27/1/428/7326786?login=false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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