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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잘 봐, 기획력 압승이다

유쾌발랄한 K문화 이색 혼종의 묘미…고퀄 작화와 음악, 현역 아티스트 제작진 참여로 높은 완성도

2025.06.25(Wed) 15:09:33

[비즈한국] 때론 나보다 남이 나를 더 잘 안다. 미처 내가 몰랐던 점을 객관적으로 짚고, 새로운 관점에서 보곤 한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세계적인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사실은 악마를 사냥하는 헌터로 활동한다는 이야기.

 

악마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혼문’을 노래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는데, 여기에 악마의 최종 빌런 귀마의 지령을 받은 저승사자 보이그룹 사자보이즈가 세상을 파탄에 빠뜨리기 위해 데뷔한다. K팝과 아이돌, 저승사자 등 한국의 아이돌 문화와 무속신앙이 주요 소재인 것에 더해 지극히 한국적인 디테일 하나하나가 새롭게 조명된다. 원안을 쓰고 연출한 한국계 감독을 비롯해 여러 한국인이 참여한 결과이긴 하지만, 제작사는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다. 나의 장점을 남이 더 잘 살려준 결과랄까.

 

K팝 스타로 군림하는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 사실은 노래의 힘으로 혼문을 만들어 세상을 악마로부터 구하려는 악마 헌터, 퇴마사로 활동 중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K팝 아이돌이 악마를 퇴치한다는 설정 자체가 ‘저세상급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예고편이 나오기 전까진 전 세계 어린 K팝 팬들을 위한 유치찬란한 애니메이션으로 오해했다. 그런데 공개 전 나온 짧은 예고편은 예상 외의 고퀄리티 작화와 꼼꼼하고도 센스 있는 한국 문화 묘사로 의외의 기대를 불러 일으켰고, 6월 20일 공개된 이후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OTT 시청 순위 집계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6월 23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26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찍었다. 네이버 영화 네티즌 평점 9점 후반대를 찍고 있을 만큼 평점도 좋다. ‘어린이용이 아닌데? 40대 내 취향인데?’라는 한 네티즌의 평처럼, 세대를 초월해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저승의 지배자인 귀마. 퇴마사들의 활약으로 혼을 먹지 못해 혼불의 모습으로 약해진 상태다. 이병헌이 영어와 한국어 동시더빙을 맡았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먼저 K팝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우리를 비롯해 전 세계에 익숙해진 K팝 문화의 세밀한 특징과 그로 인해 친숙해진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잘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응원봉과 포토카드 같은 덕질 문화에, 아이돌이 출연하는 예능에서 선후배 그룹끼리 서로 예의를 차리려고 90도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키득키득 터지게 된다. 남산서울타워와 낙산공원의 성곽, 북촌한옥마을 등 한국의 아이코닉한 장소들의 출현은 물론이요, 공연을 앞두고 목이 아픈 주인공이 한의원을 찾아 한약을 짓거나 라면과 김밥, 호떡 등 K간식을 흡입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수저를 놓을 때 밑에 티슈를 까는 한국인의 고유 습성(?)까지 담아냈다. 

 

귀마의 수하인 진우를 필두로 한 저승사자 5인방이 결성한 보이그룹 사자보이즈. 청량한 느낌으로 데뷔했다 강렬한 카리스마의 다크 콘셉트로 변신하는 등 보이그룹의 루틴을 제대로 보여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귀에 쏙쏙 박히는 노래들은 어떻고. 승무원과 파일럿으로 위장한 악마들을 전용 비행기 내에서 해치우고 콘서트가 열리는 스타디움 무대로 착지하는 과정에서 선보이는 헌트릭스의 첫 곡 ‘How It’s Done’부터 매력 만점이다. 헌트릭스의 모델로 삼았다는 걸그룹 잇지, 블랙핑크, 트와이스 중 어떤 그룹이 실제 싱글곡으로 내놓아도 호평 받을 것 같은 고퀄리티를 자랑한다.

 

작품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헌트릭스의 ‘Golden’, 트와이스 멤버들의 보이스로 입힌 헌트릭스의 디스곡 ‘Takedown’, 사자보이즈의 청량함을 극대화한 ‘Soda Pop’과 그에 대비되는 다크 콘셉트의 ‘Your Idol’, 악마의 문양을 지니고 있으면서 헌터로 활동하는 남 모를 비밀을 지닌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와 아픈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자 귀마의 명령에 따르는 사자보이즈의 리더 진우가 함께 부르는 ‘Free’ 등, 어느 곡이든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다. 프로듀서 테디와 24, 빈스 등 더블랙레이블 프로듀서 군단과 안무가 리정, ‘스우파2’ 준우승 출신 외국인 댄스 크루 잼 리퍼블릭, 그룹 트와이스 등 현역 K팝 최정상 네임드들이 대거 참여해 현실의 K팝 아이돌의 퍼포먼스를 유려하게 완성해냈다.

 

틈만 나면 라면, 김밥, 호떡, 어묵 등 각종 K분식을 흡입하는 헌트릭스의 모습. K팝 아이돌의 인기에 힘입어 해외에서 한국표 간식과 과자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생생한 현실을 담아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헌트릭스 멤버 삼인방 루미, 미라, 조이에는 아덴 조, 메이 홍, 유지영이 맡았고, 사자보이즈의 리더 진우 역에 배우 안효섭이 참여했다. 네임드 배우들도 여럿 등장하는데, 헌트릭스의 정신적 지주 셀린 역에 김윤진, 헌트릭스의 매니저 바비 역에 켄 정, 돌팔이 한의사 역에 다니엘 대 킴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최종 빌런인 귀마 역엔 무려 이병헌이 출연하는데, 영어와 한국어 버전을 동시에 소화한 것도 눈에 띄는 점.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즐겁게 시청하고 나면 부작용이 하나 생긴다. 우선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노래를 흥얼흥얼거리게 되는데, 이를 심화해서 ‘덕질’할 요소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 현실 아이돌판 덕질이라면 연습실 안무 영상부터 뮤직비디오 비하인드 영상, 아이돌 간 이어지는 챌린지 영상, 음방 직캠 영상 등 훑을 요소가 계속해서 풀릴 것인데 말이지. 벌써부터 유튜브 영상들에 더 많은 버전의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를 보고 싶다는 팬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병헌 외에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 활동하며 잘 알려진 김윤진을 비롯해 켄 정, 다니엘 대 킴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들이 여럿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리고 ‘시선 강탈’ 캐릭터로 등장한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의 굿즈 발급도 시급해 보인다. 더피와 서씨는 우리 민화 작호도(호작도)를 모티프로 한 캐릭터인데, 고양이에 빙의한 듯한 더피와 갓을 쓴 세 눈알의 서씨의 ‘댕청한 귀여움’이 아주 ‘저제상급’이다. 내부용 굿즈가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데, 지금의 인기로 보면 대량 생산을 고려하지 않을까 싶다(우선 더피 키링 좀 만들어 주세요, 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적 DNA를 갖고 있지만 해외의 자본과 기획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카데미에서 첫 한국인 여우조연상을 배출한 ‘미나리’ 같은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최근 단편 애니로는 이례적으로 11만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를 끈 ‘알사탕’도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이 원작이지만 제작사는 일본의 토에이 애니메이션이다. 한국 문화의 저력을 해외에서 알아봤다는 뿌듯함으로 새삼 ‘국뽕’에 차오르게 만들지만, 동시에 이런 것들을 한국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조금 남는다.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꼰대 같은 생각인 거겠지?

 

우리 민화 작호도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를 모티프로 한 더피와 서씨 또한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 못지 않게 인기를 끌 캐릭터들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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