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동반자의 볼이 가야할 방향을 잃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저기 오비예요?“ ”해저드예요?“ 골퍼는 묻고 “네, 저희 골프장은 오비 없어요” 캐디가 대답한다. 골퍼는 해저드티의 유무를 확인한 후, 해저드 티로 향한다.
사실 ’해저드‘란 골프용어는 없어진 과거의 유물이다. ’페널티 구역‘, ’페널티 구역 특설티‘가 정확한 말이지만 아직도 많은 골퍼들에겐 ’해저드‘란 말이 익숙하고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전장이 대략 460미터 정도 되는 파 5에서 ’페널티 구역 특설티‘는 그린까지의 거리가 200미터 남짓한 곳에 있었다.

동반자들이 한마디씩 한다. “무슨 특설티가 이렇게 앞에 있나?”, ”내 3번째 샷 지점이랑 차이가 없는데..“ 골퍼는 1벌타를 받고 특설티에서 3번째샷을 했다. 티샷과는 달리 3번째 샷은 멋진 타구음과 포물선을 그리며 그린에 안착했다. 버디 찬스다. “나이스 샷, 버디 찬스”라고 외치는 동반자의 리액션은 티샷이 나간자의 버디찬스에 다소 씁쓸하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이천의 어느 골프장 라운드 중 일어났던 일이다.
최근 몇년 동안 골프코스에는 많은 ’맛집‘ 생겨 났다. ’오비 맛집‘ ’해저드 맛집‘이 그것들이다. 과거에 비해 오비구역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얀 말뚝은 코스에서 사라지는 중이고 빨간 말뚝으로 대체 되는 중이다. 분명 지난 라운드에서는 오비였는데 페널티구역으로 바뀌어서 당황과 안도가 함께 찾아왔던 적도 있지 않은가.
최근 골프코스 조성의 추세 중 하나는 여성골퍼를 위한 ’레드티(Red Tee)’의 전장은 줄이고 볼을 찾거나 플레이할 수 없는 구역을 오비(out of bounds)구역에서 페널티구역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실 오비나 페널티구역에 빠진 경우 같은 1벌타지만 오비는 원구지점에서 3번째 샷을 해야하고 페널티구역에 들어간 볼은 옵션에 따라 드롭을 하고 3번째 샷을 한다. 특설티에서 플레이를 하면 골퍼가 느끼는 벌타는 오비는 2벌타, 페널티구역은 1벌타라고도 할 수 있다.
스코어가 잘 나오지 않는 골프장들은 골퍼들에게 인기가 없다. 오죽하면 골프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내가 가장 잘 맞을 때’고 가장 좋은 골프코스는 ‘스코어가 가장 잘 나오는 코스’란 말이 나올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볼을 10개쯤 잃어버렸어도 심하면 웨지로도 세번째 샷이 가능한 페널티 구역에서 샷을 하고 투 퍼트 마무리로 보기를 한다. 볼을 2홀에 한 번은 페널티구역에 보내고 페널티를 받았음에도 ‘보기 플레이’가 가능하다. 분명 티샷만으로는 페어웨이에 볼을 보낸 사람과 페널티 구역에 볼을 보낸 사람의 결과가 확연히 차이가 날 것으로 보였지만, 그린 위에서 같은 타수의 펏을 한다,
제 5의 메이저 대회라고 하는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 17번 홀은 140야드 정도의 아일랜드 파3다. 선수들은 폭이 좁은 그린 때문에 해마다 많은 볼을 물에 헌납한다. 그리고 ‘드롭존’, 말하자면 특설티에 간다. 볼이 들어간 지점이 아닌 80미터 남짓의 특설티에서도 또 실수를 한다. 안병훈은 이 홀에서 8개 오버를 치기도 했다.
경기도 어느 골프장의 파3 페널티 구역 특설티는 그린 바로 옆에 있다. 그린 밖 퍼트가 익숙하다면 퍼팅도 가능하다. 골퍼들은 이 특설티로 스코어를 세이브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진행’때문일 거라는 강한 의심을 한다. 더 많은 골퍼들을 받기 위해서는 빠른 진행이 필요하고 이 신속한 진행에 혁혁한 기여를 하는 것이 바로 ‘특설티’다. 명문 골프장일수록 특설티 없이 플레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의심은 확신에 가까워진다.
특설티가 골퍼들의 즐겁고 원활한 라운드에 도움이 된다면, 그래서 필요하다면 너무 과하게 그린쪽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 티샷을 하고 페어웨이에 잘 떨어진 볼 앞에서 물에 빠졌음에도 수십미터 앞, 특설티에서 샷을 준비하는 동반자의 모습에서 이 골프가 과연 ‘공정’한 것인지란 생각이 든다. 흰색 특설티든, 빨간색 특설티는 주말골퍼의 평균 거리에 특설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골프장은 여러가지 면에서 ‘맛집’이다. 하늘 맛집이고 구름 맛집이다. 잔디 맛집이고 나무 맛집이고 사진 맛집이다. 골프장 주변엔 실제 맛집들도 많다. 굳이 ‘오비 맛집’, ‘페널티구역 맛집’까지 있어야 할까.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강찬욱 작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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