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브랜드가 상품을 넘어 감각과 경험, 태도로 기억되는 시대, 이제 사람들은 무엇을 사는지보다 무엇에 끌리고 어떤 경험을 기억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비즈한국은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와 함께 매월 ‘이달의 브랜드’를 선보인다. 비마이비가 포착한 브랜드의 새로운 감각과 흐름을 독자들에게 전하며, 지금 주목받는 브랜드가 왜 선택받았는지 그 맥락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한동안 브랜드 업계의 화두는 늘 ‘새로움’이었다. 더 자극적인 협업, 더 빠른 유행, 더 낯선 경험이 경쟁력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올해 5월의 브랜드들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흐름이 보인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오래 존재한 것들을 지금 시대의 감각으로 다시 해석하는 브랜드들이 더 큰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된 게임 IP 포켓몬은 여전히 성수동 한복판에 수만 명을 불러 모았다. 92년 된 호두과자 브랜드 학화는 젊은 세대의 ‘오픈런’ 디저트가 됐다. 60년 된 출판사 민음사는 출판사 자체를 팬덤으로 만들었고,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은 한국의 ‘뒷산 문화’라는 오래된 일상을 새롭게 조명했다. 무비랜드 역시 영화를 단순 상영 콘텐츠가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취향의 공간으로 확장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브랜드들이 과거의 향수에만 기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래된 것을 무작정 복고처럼 소비하기보다, 지금 세대의 취향과 플랫폼, 공간 경험 안으로 다시 번역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경험하게 만드는 힘. 어쩌면 지금 브랜드에게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5월 브랜드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오래된 것의 재해석’이다. 30년 된 게임 IP부터 90년 넘은 간식 브랜드, 60년 된 출판사까지. 이들은 단순히 과거의 향수를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지금 세대의 취향과 플랫폼, 공간 경험 안으로 오래된 브랜드를 다시 번역해내며 새로운 팬층을 만들어냈다.
#즐기고: 30년 IP를 생활 문화로 확장한 ‘포켓몬’
‘즐기고’ 부문에 선정된 포켓몬은 3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거대한 팬덤의 힘을 보여줬다. 성수동에서 열린 ‘포켓몬 메가페스타 2026’에는 하루 12만 명이 몰리며 일부 행사가 중단됐고, 일본과 중국 팬들까지 원정 방문에 나섰다.
행사 방식도 흥미로웠다. 서울숲 ‘시크릿 포레스트’는 자연 속 힐링 경험을, 성수동 ‘메타몽 놀이터’는 SNS 인증 문화를 겨냥했다. ‘포켓몬런’에서는 5000명이 잉어킹 콘셉트로 한강을 달렸고, 코엑스 ‘스포츠 데이’는 코어 팬덤의 경쟁 심리를 자극했다. 단순 전시가 아니라 포켓몬 세계관을 현실 공간으로 확장한 셈이다.
포켓몬의 힘은 IP 확장력에서도 드러난다. 스파오, 올리브영, SPC삼립, 롯데 자이언츠, FC서울 등 패션·뷰티·식품·스포츠를 넘나드는 협업이 이어졌고, 약 230종의 한정 상품이 출시됐다. 오래된 캐릭터지만 어느 브랜드와 만나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포켓몬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무엇보다 포켓몬은 ‘추억’만 소비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포켓몬을 보며 자란 세대가 이제 2030 소비층이 됐고, 포켓몬은 그들의 앱 사용 시간과 오프라인 동선, 소비 패턴까지 움직이는 생활형 IP로 자리 잡았다.
#입고: 한국 산 문화를 다시 읽은 ‘살로몬’
‘입고’ 부문 살로몬은 단순한 아웃도어 브랜드 캠페인을 넘어 한국의 산 문화를 새롭게 조명했다. 반세기 넘게 산악 문화를 기록해온 ‘월간산’과 함께 ‘월간살로몬’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한국식 등산 문화의 감각을 브랜드 콘텐츠로 풀어냈다.
첫 아티클 ‘뒷산의 민족’은 한국인의 일상 속 산 문화를 다뤘다. 약수터, 하산 후 막걸리, 동네 뒷산 같은 익숙한 풍경을 글로벌 브랜드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봤다. “지하철에서 내려 15분만 걸으면 암벽이 나오는 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표현처럼,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던 장면들을 새롭게 해석했다.
5월 중순 북한산 백운대에서 열린 ‘월간살로몬 야유회’도 눈길을 끌었다. 참가자들은 배낭에 오이를 담아 정상에서 나눠 먹었고, 브랜드는 제품 대신 산에서의 정과 풍경을 전면에 내세웠다.
살로몬은 최근 서촌에 세계 최초 트레일 러닝 전문 매장 ‘살로몬 트레일 런 서울’을 열며 한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캠페인에서 더 인상적인 부분은 신제품 홍보보다 한국 산 문화의 기억을 먼저 들여다봤다는 점이다.
#먹고: 92년 브랜드를 다시 유행시킨 ‘할머니학화호도과자’
‘먹고’ 부문에 오른 할머니학화호도과자는 1934년 시작한 천안의 원조 호두과자 브랜드다. ‘호두’ 대신 옛 표기인 ‘호도’를 유지하는 것도 창업 당시 간판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는 상징이다.
학화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22년 브랜드 리뉴얼 이후다. 체크무늬 패키지 같은 상징은 유지하되 한자 로고를 한글로 바꾸고, 인스타그램 채널과 새로운 디저트 라인을 선보이며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넓혔다. 말차, 앙버터, 슈톨렌 호도과자 같은 신메뉴도 등장했다.
특히 인스타그램 운영 방식이 인상적이다. 메뉴 사진과 비주얼을 하나의 매거진처럼 구성하고, 신메뉴 개발 과정을 콘텐츠처럼 풀어낸다. 29CM 성수 팝업, 연세우유 협업 등 젊은 세대가 익숙한 채널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하지만 변화 속에서도 기준은 분명하다. “앙금과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라는 원칙이다. 오래된 브랜드가 살아남는 방식은 결국 무작정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유지한 채 시대의 취향과 연결되는 데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머물고: 취향의 공간을 만든 ‘무비랜드’
‘머물고’ 부문 무비랜드는 성수동에서 가장 독특한 영화 공간 중 하나로 떠올랐다. 브랜드 컨설팅팀 모베러웍스가 만든 이 극장은 단순 상영관이 아니라 ‘이야기를 경험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5월에는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가 큐레이터로 참여한 특별전 ‘간직한 꽃’이 큰 화제를 모았다. ‘남과 여’, ‘스플래시’, ‘400번의 구타’ 등 다섯 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 이후 2시간 넘게 이어지는 GV를 함께 구성했다.
무비랜드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러 가는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과 생각을 함께 경험하러 간다.
최근 출간한 ‘무비랜드 메이킹북’ 역시 같은 흐름 안에 있다. 공간 디자인과 수익 구조, 굿즈 기획, 접객 운영까지 극장을 만드는 과정을 기록하며 브랜드 세계관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확장했다.
#쓰고: 출판사 자체를 팬덤으로 만든 ‘민음사’
‘쓰고’ 부문 민음사는 창립 60주년을 맞은 올해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단행본 시장 침체 속에서도 지난해 매출 206억 원, 영업이익 41억 원을 기록했다.
민음사의 힘은 단순히 유명 작가 몇 명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출간 500권을 앞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와 ‘데미안’, ‘싯다르타’ 같은 스테디셀러,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발견되는 책들이 꾸준히 브랜드 자산으로 축적됐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가 있다. 기존 출판사 채널이 작가 인터뷰와 신간 소개에 머물렀다면, 민음사TV는 출판사 직원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보여주며 팬덤을 형성했다. 편집자 김민경의 방송 출연 이후 관련 도서 판매량이 급증한 것이 대표 사례다.
‘민음북클럽’ 역시 팬덤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6기 얼리버드 모집 당시 접속자가 몰려 서버가 다운됐고, 한정 굿즈와 리커버 에디션을 기다리는 소비자들의 ‘오픈런’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제 사람들은 책만 소비하지 않는다. 출판사 자체의 취향과 태도, 세계관까지 함께 소비한다. 민음사는 오래된 출판사가 어떻게 브랜드 팬덤을 만들 수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5월의 브랜드 ‘포켓몬’
포켓몬이 5월 ‘이달의 브랜드’로 선정된 이유는 단순히 오래 살아남은 IP라서가 아니다. 포켓몬은 세대가 바뀌는 데 따라 소비되는 방식을 계속 바꿔왔다. 한때 TV 애니메이션과 게임보이 화면 속에 있던 캐릭터는 이제 모바일 앱, 팝업스토어, 러닝 이벤트, 패션 협업, 스포츠 구단 굿즈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브랜드가 오래된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포켓몬은 그 익숙함을 낡음으로 방치하지 않았다. 피카츄와 메타몽, 잉어킹 같은 캐릭터들은 추억의 기호인 동시에 지금 당장 사진을 찍고, 입고, 모으고, 함께 뛰게 만드는 현재형 콘텐츠가 됐다.
무엇보다 포켓몬은 팬덤을 ‘관람객’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포켓몬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포켓몬 세계 안에 잠시 들어가기 위해 움직인다. 성수동을 걷고, 한강을 달리고, 한정 굿즈를 찾고, 자신이 좋아했던 캐릭터를 다시 고른다. 이 과정에서 포켓몬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도시 경험과 소비 동선 안에서 다시 작동한다. 30년 된 브랜드가 여전히 강력할 수 있는 이유다. 포켓몬은 과거를 팔지 않는다. 과거에 좋아했던 마음을 지금 다시 꺼내 쓸 수 있게 만든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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