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 곳곳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소부장 특화단지 유치, AI 융합 산업 육성 등을 내건 공약이 쏟아졌다. 경기도지사 후보뿐 아니라 수원·용인·평택·이천·오산·안성 등 기초단체장 후보들도 지역과 당을 가리지 않고 반도체·인공지능(AI) 관련 공약을 전면에 배치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가 집중된 경기도에서 반도체 허브를 자처하거나 그 수혜를 극대화하겠다는 약속은 지역경제 활성화 기대감을 겨냥한다. 다만 이미 투자를 선점한 연고 지자체와 뒤늦게 뛰어든 인근 지자체 간 행정적 셈법나 정주 여건의 격차만큼 공약의 무게감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도지사 3인 “반도체” 같아도 색깔은 달라
이번 선거에서 반도체 공약은 단순한 공장 유치를 넘어 교통·주거·교육·인재 양성을 포괄하는 ‘생활권 재편 공약’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팹(Fab) 하나에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산업 특성상 생산시설 자체보다 배후도시 기능과 광역 인프라 확보 경쟁이 더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가 2042년까지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에 300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투자 규모 역시 최대 600조 원까지 거론되면서 경기 남부 전역이 사실상 ‘반도체 생활권’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지사의 공통 과제로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완성, 전력·용수 인프라 확충, 수도권정비계획법 완화가 꼽힌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의 반도체 공약은 팹리스(설계)에서 생산,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후공정까지를 잇는 전주기형 생태계 조성에 무게를 뒀다. ‘경기미래투자공사(가칭)’ 설립과 반도체기술원·반도체대학원 유치를 통해 추진 기반을 제도화하겠다는 구상인데, ‘AI 반도체 전략위원회’ 신설과 경기 북부 평화지대 발전계획을 묶어 균형발전 카드도 함께 꺼냈다. 단순 유치 경쟁보다 산업 정책 추진 조직과 공공 투자 플랫폼 구축을 강조한 셈이다.
국민의힘 양향자 후보는 삼성전자 임원 경력을 앞세운 후보답게 보다 공격적이다. 수원·성남·용인·평택·화성·이천·오산·안성 등 8개 시를 하나로 묶는 초광역 AI·반도체 클러스터 ‘K-벨트’ 구축이 공약의 뼈대다. 규제 완화와 경제자유구역 지정, 글로벌 소부장 기업 유치와 함께 난양공대(NTU)·홍콩과기대(HKUST) 같은 해외 공학대학 유치,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의 전문교육과정 이수 비용을 지원하는 ‘미래기술 바우처’ 도입, AI고·반도체고 설립 등을 공약했다.
개혁신당 조응천 후보는 교통·물류 중심 접근을 택했다. 이천·용인·화성·수원·평택을 잇는 ‘반도체 익스프레스’와 경기남부국제공항 구상을 연계해 글로벌 인력과 물류 이동 효율성을 강조했다. 첨단산업 경쟁력을 출퇴근과 공항 접근성 문제로 풀어낸 점이 특징이다.
#특례시급 경쟁, 삼성·SK와 ‘어떻게 얽혔나’에 따라 공약도 갈려
수원에서는 두 후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광역 연결을 내세웠다. 재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이재준 후보는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탑동 이노베이션밸리·R&D사이언스파크 조성을 통해 AI·반도체 연구 거점 도시를 내세웠다. 반면 국민의힘 안교재 후보는 삼성전자 수원·화성 사업장과 SK하이닉스 이천, 용인 클러스터를 하나의 ‘1시간 생활권’으로 묶는 광역 교통망 구축에 집중했다. 반도체 단지 종사자의 직주근접 문제를 교통망으로 풀겠다는 계산이다.
경기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용인은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초대형 투자가 진행 중인 만큼 ‘유치’보다 배후 인프라를 완성하는 ‘수용’ 경쟁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현근택 후보는 삼성전자 1기 팹 조기 가동과 경제자유구역 지정, 5000억 원 규모 벤처펀드를 앞세웠다. 반도체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팹리스·AI 반도체 스타트업까지 연결하겠다는 그림이다. 반면 현직 시장인 국민의힘 이상일 후보는 인허가 신속 처리와 주민 우선 입주 지원 등을 통한 ‘사업 정상 추진’을 핵심 성과로 강조한다. 대규모 보상 문제와 교통 혼잡, 배후 주거단지 조성 같은 현실 현안을 관리하는 행정형 공약에 가깝다.
화성과 오산은 인접 도시 연계 전략이 두드러진다. 화성은 GTX-C·신분당선 연장 등 광역철도 공약이 집중됐고, 오산은 AI·반도체 테크노밸리와 스마트시티 구상이 전면에 등장했다. 오산은 2023년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 공모에서 안성에 밀린 이후 ‘반도체 배후도시’ 경쟁 의식이 강해진 지역으로 거론된다. 국민의힘 이권재 후보와 민주당 조용호 후보 모두 AI·반도체 기업 유치를 핵심 성장축으로 내세운 배경이다.
평택과 이천의 경우 이미 형성된 산업 기반을 어떻게 확장할지가 주요 의제다. 평택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생산 거점인 만큼 교통·전력·용수·물류 공약이 집중됐다. 민주당 최원용 후보는 AI-반도체 융합 클러스터와 수소 발전 허브를 연계하며 RE100 대응을 언급했고, 국민의힘 차화열 후보는 반도체특별법과 연계한 원스톱 행정지원, 전력·용수 선제 구축 등을 강조했다. 제조라인 확대에 필요한 실질 인프라 확보 경쟁 성격이 짙다.
이천은 SK하이닉스 의존도를 어떻게 줄일지가 관건이다. 민주당 성수석 후보는 소부장 산업단지와 이천혁신센터를 통해 ‘단일 대기업 의존 탈피’를 내걸었고, 국민의힘 김경희 후보는 500억 원 규모 이천산업진흥원 설립과 반도체 체험형 박물관 조성을 제시했다. 산업 인프라를 교육·관광 자원으로 연결하겠다는 접근이다.
오산 지역은 2023년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 공모에서 탈락하며 인근 안성에 거점을 내줬다는 위기감이 있다. 양 후보는 글로벌 장비기업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등과 연계한 연구단지 조성이라는 강점을 발판 삼아, AI 특구 지정과 ‘K-AI 스마트시티 시범지구’ 조성(더불어민주당 조용호 후보)을, 용인·동탄·평택 산업벨트와 연계한 ‘AI·반도체 중심 오산 테크노밸리’(국민의힘 이권재 후보)를 각각 제시했다.
안성은 이미 확보한 소부장 특화단지를 실제 생태계로 연결하는 단계다. 현직 시장인 민주당 김보라 후보는 116만 8000㎡ 규모 반도체 소부장 안성캠퍼스 조성과 특화단지 조기 착공, 미래모빌리티 메가특구 조성을 함께 내세웠다.
다만 선거 공약 상당수는 지방정부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완화, 반도체특별법 연계 지원, 특화단지 지정, 국가철도망 반영 등 중앙정부 협의와 입법을 전제하는 과제가 다수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특별법 시행령안에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요건으로 ‘수도권 외 지역’을 명시하자 경기도와 시·군들이 공동 대응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경기도는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 조항 삭제 의견을 공식 제출한 데 이어 지난 28일 도청에서 도내 31개 시·군과 관계기관이 참여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현병천 미래성장산업국장은 “반도체 산업은 속도와 실행력이 핵심인 만큼 수도권을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은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선거 막판 이를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같은 날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개혁신당 조응천 후보와 양향자 후보는 “수도권을 배제하겠다고 하면 찬성하겠느냐”고 공세를 폈고 추 후보는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경기도는 반도체 전주기를 완성해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고 맞섰다.
다만 세 후보 모두 기존 반도체 산단 계획은 원안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점에는 뜻을 같이했다. 선거 이후에도 경기도와 도내 시·군들이 ‘수도권 반도체 벨트’라는 공동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정부 정책 대응에 함께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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