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책의 텍스트를 자동으로 읽어주는 TTS(문자음성 자동변환) 기능도 저작권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독서 플랫폼이 임의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이 기술이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라 저작권법상 ‘복제·전송’에 해당하는 중요한 행위라고 봤다. 플랫폼 사업자가 도서 내용을 음성으로 변환해 제공하는 건 책의 내용을 복제하고 이용자에게 전송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반드시 권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로써 플랫폼은 “이용자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기능”이라는 주장만으로 저작권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졌다. 이번 판결은 인공지능(AI)과 TTS 기술이 빠르게 확산하는 전자책 및 오디오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저작권자 권리 보호와 협의 절차 및 권리 관리의 필요성을 한층 부각한 사례로 평가된다.

독서 플랫폼 윌라가 KT의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서재에 제기한 배타적발행권 침해금지 소송 2심에서 법원이 윌라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은 KT 밀리의서재와 윌라 간의 오디오북 배타적발행권 침해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오디오콘텐츠의 배타적발행권이 윌라에게 있는 도서의 내용을 밀리의서재가 TTS 기능을 통해 이용자에게 제공한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TTS 기능은 책을 읽어주는 행위일 뿐 복제로 볼 수 없다는 밀리의서재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독서 플랫폼이 배타적발행권 양수자 등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책의 텍스트를 음성으로 제공하는 행위 자체가 전통적인 저작권 보호 범위 안에 포함된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계약 체결 방식과 산업 전반의 권리 관리 구조에 변화가 예상된다.
#배타적발행권 침해금지 항소심, 밀리의서재 패소
서울고등법원 민사5-2부(재판장 김대현·강성훈·송혜정)는 지난달 19일 윌라의 운영사 인플루엔셜이 밀리의서재를 상대로 낸 소송 1심 판결에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밀리의서재가 자사 앱과 웹사이트에서 분쟁 대상 도서들에 대해 TTS 기능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편의 기능 넘어선 복제·전송 행위로 판단
1심은 윌라의 ‘판정승’에 가까운 결과였지만, 2심에서는 밀리의서재가 TTS 기능 제공 금지 등 주요 사안에서 모두 패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오디오북 서비스에 한해 윌라의 배타적발행권 침해를 인정한 1심과 달리 오디오북뿐 아니라 TTS 기능 제공 역시 권리 침해로 판단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플랫폼 사업자가 TTS 기능을 통해 도서 콘텐츠를 음성으로 제공하는 행위가 오디오콘텐츠의 배타적발행권 침해에 해당하는지와 그 행위의 주체를 플랫폼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밀리의서재는 TTS 서비스 방식과 관련해 “자사가 직접 오디오콘텐츠를 복제하거나 전송하지는 않으므로 TTS 기능을 제공하는 행위 자체가 윌라의 오디오콘텐츠에 관한 배타적발행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해왔다.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저작권법 제30조)이거나 일시적 복제(저작권법 제35조 2항)의 경우 배타적발행권 침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리도 펼쳤다.
법원은 TTS 기능으로 별도의 오디오 파일(유형물)이 만들어져 저장·유통되지 않더라도 복제·전송 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면 저작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TTS 기능을 통해 생성된 음성 파일이 별도의 보호 대상인지 아닌지는 애초에 배타적발행권의 설정이나 그 권리가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데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실체가 남는 파일의 생산 여부와 상관없이 기술적으로 텍스트가 음성으로 변환되어 이용자에게 제공된 행위 그 자체가 저작물의 복제 및 전송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2심은 복제·전송 행위의 직접적인 주체로 밀리의서재를 지목했다. △TTS 기능 실행 시 일시적으로나마 복제물인 wav(윈도우 표준 오디오 포맷) 파일이 생성되는 점 △TTS 기능의 사용 여부를 제외하고는 이용자의 선택권이 없는 점 △프로그램 운영 제휴 및 기술 개발, 기능 실행 등이 밀리의서재가 관리·지배하는 전용 앱에서 이뤄진다는 점 등이 근거로 거론됐다. 이는 주체를 이용자로 보고 플랫폼은 기능만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 기존 해석과 상반된다.
재판부는 “특정 도서의 epub(전자책 표준 형식) 파일이 wav 파일로 복제되는 과정에서 밀리의서재 이용자들의 역할은 복제 대상이 되는 도서를 지정해 밀리의서재가 제공하는 앱 인터페이스의 ‘TTS’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는 없다”며 “밀리의서재가 이 사건 각 도서의 오디오 데이터로의 복제행위를 관리·지배하고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계약서상 배타적발행권을 폭넓게 정했을지라도 법의 한계는 넘을 수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배타적발행권의 범위에 대해 계약상 발췌·요약·각색 등 변형해 오디오콘텐츠로 복제·전송할 수 있는 포괄적 권리가 명시됐더라도 저작권법상 2차적저작물 작성 행위에까지 일방적으로 확대할 수는 없다고 해석했다.
#TTS 기능에도 배타적 권리 적용, 상고 여부 주목
이번 판결은 두 기업 간 법적 분쟁을 넘어, AI와 TTS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는 콘텐츠 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 범위와 권리자의 배타적 권리와 관련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간 오디오 파일 등 유형물이 명확히 생성되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TTS 기능을 통한 제공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해 복제·전송 성립의 가능성을 열어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기술을 ‘이용자 편의 기능’으로만 간주하기 어려워지면서 계약·협업, 권리자 수익 배분 등 저작권 유통 생태계까지 구조적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다. 신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디지털 콘텐츠 산업에서 서비스 초기 단계에서부터 권리자와의 협의, 계약 관계, 저작권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1심 판결 이후 관련 도서는 서비스가 중단돼 현재 밀리의서재 앱에서 모두 내려간 상태다. 상고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쟁점의 법리적 중요성과 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향후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밀리의서재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별도의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TTS 등의 서비스의 경우 수익 창출보다는 이용자의 독서 편의성과 접근성 확대를 위한 기능적 고민의 연장선이라는 시각을 견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밀리의서재는 독서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독서 경험을 확장시키겠다는 취지로 다양한 기능을 도입해왔다. TTS의 경우 시각장애인 등의 독서 소외 계층의 독서 활동을 지원하는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신기술 기반 기능의 활용과 저작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어떻게 찾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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