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최근 외국인 부동산 투기를 막고자 외국인 토지거래허가제를 도입한 가운데,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현대1·2차 아파트 매매 신고가를 갈아치운 매수자가 미국인으로 확인됐다. 당시 거래가격은 105억 원으로, 이 단지에서 처음으로 매매가가 100억 원을 넘어섰다. 내국인에 비해 부동산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 외국인들은 그간 매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며 주택시장 영향력을 키웠다.

#4월 계약, 8월 소유권 이전…주담대 규제 피해가
업계와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미국인 A 씨는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현대1·2차 아파트 전용면적 198㎡를 105억 원에 매입했다. 해당 세대는 단지에서 전용면적이 가장 큰 타입으로 한강 변에 위치했다. A 씨는 지난 4월 매매 계약을 체결한 뒤 약 4개월 만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당시 국내 금융기관이 62억 7000만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으로 미뤄 매입가 절반 수준인 50억여 원은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해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거래는 압구정현대1·2차 아파트 매매가가 100억 원을 넘은 첫 사례다. 이 단지의 직전 매매 최고 가격은 지난 2월 95억 원(전용면적 196㎡)으로 10억 원이 낮았다. 같은 규모인 전용면적 198㎡ 직전 최고가 역시 지난 2월 94억 원으로 11억 원 저렴했다. A 씨 거래 이후 이 단지 매매 최고가는 6월 각각 120억 원(197㎡), 127억 원(197㎡)으로 뛰었다. 전용면적 198㎡도 같은 달 117억 8000만 원으로 신고가를 경신했다.
A 씨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비켜갔다. 정부는 지난 6월 28일 수도권과 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소득과 상관없이 6억 원으로 제한했다. 수도권 다주택자는 주담대 이용을 차단했고, 주담대를 받아 수도권에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6개월 이내 전입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등 실수요가 아니면 금융권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만들었다. 외국인도 국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으면 내국인과 같은 규제를 받는데, A 씨는 이번 규제 시행 이전 대출 신청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압구정현대1·2차 아파트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재건축단지다. 서울시는 1970년대 아파트 공급을 활성화하고자 강남구 한강변에 압구정아파트지구를 조성했다. 이후 일대에는 압구정 현대(1~14차)와 미성(1~2차), 한양(1~8차) 아파트 등이 빼곡히 들어섰다. 현재 대부분이 준공 40년 차를 맞으면서 인접 단지들끼리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A 씨가 매입한 압구정현대1·2차는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압구정3구역에 속한다.

#외국인 토지거래허가제 도입 “대출 규제도 형평성 맞춰야”
외국인 소유 주택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 외국인 주택 소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소유한 우리나라 주택은 2022년 하반기 8만 3512가구에서 2023년 하반기 9만 1453가구, 2024년 하반기 10만 216가구로 늘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전체 주택 중 외국인이 보유한 주택은 우리나라 전체 주택의 0.52% 수준이다. 외국인 소유 주택은 대부분 아파트 등 공동주택(9만 1518호)이었고, 경기·서울·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됐다.
외국인이 주택 매매 최고가를 경신하는 사례도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인이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 아파트 전용면적 240㎡를 120억 원에 사들이며 단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같은해 11월에는 우즈베키스탄인이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 아파트 전용면적 245㎡를 74억 원에 매입해 단지 신고가를 썼다. 올해 4월에는 몰타인이 서울 강남구 연세리버테라스 아파트 243㎡를 신고가인 69억 원에 샀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외국인이 매수한 30억 원 초과 주택 거래 70%는 신고가였다.
정부는 최근 외국인 토지거래허가제를 도입했다. 실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이 집값 상승 우려가 있는 지역 주택을 사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난 26일부터 내년 8월 25일까지 1년간 서울 전역과 인천 7개 구, 경기도 23개 시·군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외국인이 아파트나 단독·다가구·연립·다세대주택을 구매할 때 허가를 받도록 했다. 주택 거래를 허가받은 외국인은 허가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입주해야 하고, 취득 후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간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형평성 문제 등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긍정적이다. 그간 외국인은 실거주 의무나 대출규제, 자금출처조사 등 내국인에게 적용되는 부동산 규제에서 자유로웠다”면서 “이번 외국인 토지거래허가제가 실거주 수요 확인이나 투기수요 배제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대출규제 부분에서는 내국인과 어떻게 형평성을 맞췄는지 여전히 의문스럽다. 준주거시설인 오피스텔이 배제된 점도 아쉽다”고 평가했다.
외국인은 내국인에 비해 부동산 대출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국내 대출 규제를 적용받지만, 자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국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택의 경우 정부가 외국인 개별 세대원의 주택 보유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주택 규제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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