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추석 연휴 기간 경복궁을 포함한 4대궁과 안국동, 삼청동, 북촌 일대에서 참 많은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 여기가 한국이 맞아 싶을 정도다. 더구나 한국 사람은 한복을 입지 않는데 외국인들 더구나 젊은 세대가 한복을 착용하고 거니는 모습이 새삼 이채롭다. ‘케데헌’ 때문에 한국 전통 문화가 빈번히 언급되고, 까치 호랑이 굿즈 완판 소식이 반갑다. K콘텐츠로 인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한편으론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자칫 태권도와 국기원의 실망스러운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앞서 글로벌 한류를 구가했던 태권도는 전 세계에 팬괴 태권도인을 양산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망감을 주었다. 1972년 미국에 첫 해외 태권도장을 낸 지 50여 년 만에 태권도장이 생긴 나라가 203개국에 달한다. 우리나라 정식 수교국 191개국보다 월등하게 많다. 전 세계 태권도 수련 인구는 2억 명에 이르고, 국기원 단증 소지자만 10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이에 수많은 태권도 팬과 태권도인들이 성지순례 하듯이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에 와서 실망하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고 뉴스도 되지 않는다.
일단 국제적 위상에 맞지 않는다. 일본 국기 ‘스모’ 총본산인 일본 국기관과 유도 중심 무도관(武道館)은 수용 규모가 1만 명이지만, 한국 국기원은 800석 정도에 불과하다. 국제 경기를 할 수 없고 건물마저 초라하고 낡았다. 국기원의 유일한 대회라고 불리는 세계태권도 한마당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열린다. 북한만 해도 2300석 이상의 전용경기장과 부대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태권도의 철학과 정신, 태권도 관련 고퀄 콘텐츠가 거의 없는 것은 더욱 실망스럽다. 태권도를 체험하고 즐길 테마파크조차 찾을 수가 없다. 세계를 누비며 태권 퍼포먼스를 하는 많은 조직과 팀, 단체를 집합적으로 접할 상설 공간도 없다. 간혹 이런 콘셉트로 홍보하는 곳은 아동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태반이다. 무엇보다 이런 활동과 공간 구성에 필요한 태권도 철학과 정신, 콘텐츠의 축적과 정립이 태권도 발전을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 국가 브랜드는 물론 경제효과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이번에는 한류 팬덤을 보자. 2023년 12월 기준 전 세계 한류 팬(동호회원) 수는 최초로 2억 명을 돌파하고 근래 2억 2500만 명을 기록했다. 동호회원은 대면 활동 중심이기 때문에 비대면까지 합치면 2~3배 더 많을 수 있다.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팬이 급증했다. 이들은 비대면으로 겪어온 K컬처의 본산인 한국을 방문하고자 한다. 케데헌 효과도 더해졌다.
하지만 K컬처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예컨대 K팝 팬덤은 각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 건물을 방문하거나 뮤직비디오 촬영지를 방문하는 수준이다. 이전에 SM타운 정도가 있었지만 이는 개별 소속사에 한정된다. 월드 투어 공연이 한국에서 시작하지만 음악 전문 공연장은 제대로 된 게 없다. 더구나 주변의 관광, 쇼핑 인프라와 연결되지 않은 점이 빈번하게 지적되었다. 문화와 관광을 결합한 ‘엔터투어먼트’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방문의 열망이 컸던 팬들은 실망감이 클 수 있다.
외형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K팝다움’은 아직 정립된 게 없다. 케데헌의 ‘골든’을 K팝이라고 인식하지만 그 개념이 구체적으로 분석, 정립되진 않았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노래는 물론 드라마, 영화도 마찬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이 중요한 것은 개념을 제대로 분석, 정립하지 못하면 확대 창작은 물론이고 발전도 어려울 수 있어서다.

전통문화도 마찬가지다. 단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외국인 방문객 숫자가 늘어나는 데에만 고무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미지와 콘셉트로 K콘텐츠를 창작하는 단계는 이제 지났다. 한국 문화의 정체성과 본질을 알리고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많이 제작하거나 기획전을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 아울러 K콘텐츠가 다양하게 시도되고 호응을 이끈 사례를 자료로 구축하고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 다른 나라와 기업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제안할 수 있고 ‘IP’를 확보할 수 있다. 지나치게 한국적인 것에 함몰되어선 곤란하다. 더피로 인해 까치 호랑이가 크게 히트했지만 한국적인 노리개와 무기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캐릭터가 가진 힙한 특징이 젊은 세대에게 받아들여진 사실에 주목하고 착안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보편성과 거치 정립이다. 방탄소년단은 미국의 복고 팝을 적극 포용했고, 케데헌은 오컬트 뮤지컬 방식을 취하는 등 보편적인 장르를 결합했다. 보편적 문화 코드에 더해 이를 차별화할 한국적 문화 철학과 정체성을 체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영종도 정도에 K컬처 테마 파크가 건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K팝 기획사들만이 아니라 방송사와 제작사 창작자들의 협업이 중요하고,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각 기업에 예산을 배분하는 정책은 시너지 효과를 반감할 뿐이다. 또 우리 스스로 K팝에 자부심을 갖고 내면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K콘텐츠에 국민적 중지를 모아줄 필요도 있다.
마지막으로 리더십 리스크가 없어야 한다. 국기원이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은 리더십 리스크에서 비롯됐다. 지금 K콘텐츠도 비슷한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 오너 리스크를 떨어내야 국기원의 사례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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