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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리포트] 케데헌 '더피'가 불러온 아이러니한 나비효과

일제강점기 한국 호랑이 멸절 역사 알려져…콘텐츠로 인한 파생효과 주목

2025.10.01(Wed) 14:36:08

[비즈한국] 한국에서 투자, 제작되고 IP를 전적으로 우리가 갖는지와 관계없이 한국 소재 콘텐츠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 K콘텐츠의 브랜드 가치나 관광 수지 증가를 넘어, 역사적 사실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이다. 단순히 작품이나 콘텐츠 자체를 통한 직접적인 효과뿐 아니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차원에서도 나타난다. 팬의 자발적 참여와 디깅컬처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2022년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는 전혀 생각지 못한 효과를 보였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동명 원작소설(Pachinko)이 있었지만, 많은 시청자는 소설 내용을 몰랐기에 ‘파친코’라는 말에 선입견을 가질 수 있었다. ‘파친코(Pachinko)’는 일본이 만든 도박기계여서 이 드라마가 한국 역사를 다룰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드라마는 일제강점기의 실상을 예술적으로 승화해 호평을 이끌었다.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 주인공 선자 어머니가 쌀을 사는 장면이다. 

 

2022년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삶을 보여주었다. 사진=애플TV+


“오늘은 쌀 사러 왔십니더. 마이도 필요 없고 두 홉이면 됩니더.” “쌀은 아무한테나 못 파는 거 알제? 일본 관리가 와서 검사하는데 그 여 사는 일본 사람한테 팔기 모자르믄 내가 큰일난다 안 카나.”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사람들은 쌀을 함부로 살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도 어머니는 선자가 일본으로 혼인을 해가기 때문에 밥을 해서 먹이려고 했다. 선자는 이삭과 결혼에 형이 있는 오사카로 가야 했다. “우리 딸내미 쪼매 있다가 신랑 따라 일본 갑니더. 지가 짜달시리 뭐를 해 줄 형편은 못 되고 우리 땅 쌀 맛이라도 뵈 주고 싶습니더. 그거라도 멕이가 보내고 싶어예.” 

 

조선 땅에서 나는 쌀을 먹고 사는 것조차 감시받는 상황을 보여주는 이 대사는 백 마디 천 마디보다 당시 현실을 강렬하게 알렸다. 더불어 조선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이 많고 따뜻한지도 보여주었다. “세 홉이데이.” “고맙십니더.” “선자 어매도 먹음서 설움 쪼매 삼키라이.” 

 

드라마 ‘파친코’는 2024년 방영된 시즌 2에서는 일본 열도로 건너간 선자와 조선 사람들이 어떤 핍박을 받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선자의 아이들 노아와 모자수가 학교에서 괴롭힘과 모욕을 당하는 장면은 공분을 자아냈다. 김치로 민족 차별을 가하는 장면은 또 어땠나. 재일 조선인들의 삶을 세계인들이 다 알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같은 민족끼리 따뜻하게 격려하는 장면은 재일 조선인들은 물론 한국인 전체의 이미지도 개선했다.

 

2023년 12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도 생각지 못한 효과를 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로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끈 한류 스타 박서준이 주연을 맡은 작품이라 일본 팬들이 앞다퉈 ‘경성크리처’를 시청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생체 실험을 하는 장면이 나오자 일본 팬들은 당황했다. 역사 왜곡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공식 교육 과정에서 가르치지 않을 뿐, 인터넷을 검색하면 731부대의 실체를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넷플릭스나 애플 TV+ 같은 해외 플랫폼이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런 효과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민화 호작도의 주인공에 기초한 호랑이 더피를 좋아한 팬이 한국의 호랑이 멸절 역사를 발견하고 세계에 알린 것이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호랑이 더피는 뜻하지 않게 한국 호랑이의 절멸 역사를 세계에 알렸다. 사진=넷플릭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다룬 영화가 최민식 주연의 ‘대호’라는 작품이다. 그 내용을 보면 1925년 일본군 장성 마에노조(前野蔵)는 일본으로 귀국하기 전 호랑이 가죽을 손에 넣기 위해 눈에 불을 켤 정도로 집착한다. 이에 맞서 조선에 남아 있는 마지막 호랑이를 지키려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의 대결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에선 일본 군 장교의 개인적 욕망이 부각됐지만, 실제 일제는 호랑이를 해수로 규정하고 1917년 ‘정호군(征虎軍)’을 조직해 무차별 사냥에 나섰다. 이 때문에 1924년 이후 한반도에서 호랑이 포획은 공식적 기록이 없다. 이런 역사를 한국인도 아니고 그 후손도 아닌 젊은 흑인여성이 찾아내 공유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 일은 세계인들에게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했고, 일제 침략사와 그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모르는 일본의 행태를 고발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계 강민지(매기 강)감독과 제작진 덕분이다. 더구나 일본 회사인 소니 픽쳐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일제의 역사를 드러냈으니 아이러니한 감흥이 일었다. 한국계 창작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또 글로벌 OTT를 활용한 역사 인식 자리매감의 좋은 사례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이제는 해외 팬들까지 역사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서 반갑고 이로운 활동을 해주고 있다. 

 

한국계 창작자와 관련해 최근 반가운 소식이 있다. 한국계 미국 작가 수전 최의 소설 ‘플래시라이트(Flashlight)’가 영국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플래시라이트’는 ‘파친코’와 비슷하게 재일교포 사회와 미 한인 사회를 오가는 설정이다. 작가의 수상경력도 탄탄했다. ‘신뢰 연습’은 2019년 전미 도서상을 받았고, ‘미국 여자’는 2004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른 바가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 출판 작품 가운데 선정하는 부커상은 인터내셔널 부커상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 11월 수상을 기대한다. 소설 ‘플래시라이트’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우리가 예상 못 한 나비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K콘텐츠는 수용주기 모델 가운데 마니아 선호 단계에서 캐즘을 딛고 전기 수용자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연대와 협력, 협업이 활발해야 할 단계다. 그런 공조 속에서 역사적 사실이 세계적으로 인식되면 한국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도 상승할 것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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