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TRAPPIST-1은 가장 주목받는 외계행성 시스템 중 하나다. 2017년 천문학자들은 이곳에서 무려 일곱 개의 행성을 발견했다. 우리 태양 곁에 여덟 개 행성이 맴도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한꺼번에 이렇게나 많은 행성이 맴돌고 있는 모습은 우주 전역에 더 많은 다중행성 시스템이 존재할 거란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심지어 일곱 개 행성 전부 지구와 비슷한 암석 행성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가운데 무려 네 개의 행성이 생명을 기대할 수 있는 골디락스존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TRAPPIST-1d가 골디락스존 가장 안쪽 경계에 걸쳐 있고, e와 f가 중간에, 그리고 g가 골디락스존 가장 바깥 경계에 놓여 있다. 운이 좋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생명이 살고 있는 외계행성을 한꺼번에 여러 곳 발견할 수 있는 현장이다. 제임스 웹이 우주에 올라가면서 TRAPPIST-1 행성을 많이 관측했다. 특히 생명이 살기 위해서는 지구처럼 대기권이 덮여 있어야 한다.
이미 앞서 가장 안쪽에 있는 두 행성 b와 c에서는 별다른 대기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결과가 발표되었다. b 행성은 수성처럼 거의 대기가 없는 것처럼 보였고, c 행성은 아주 얇게 깔린 대기가 있을지 모른다는 모호한 데이터만 확인했다. 하지만 정작 골디락스존에 있는 다른 네 곳은 본격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 제임스 웹이 관측을 하는 사이 하필이면 강력한 플레어까지 폭발한 바람에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더 오래 걸렸다.
이제야 모두가 기다렸던 TRAPPIST-1d 행성에 대한 제임스 웹의 관측 분석 결과가 발표되었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떨까? 모두의 바람대로 TRAPPIST-1에서 골디락스존에 있는 행성에 대기권도 존재할까?
TRAPPIST-1의 행성들은 중심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면서 별빛이 어두워지는 트랜짓을 통해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일곱 개의 행성이 각기 다른 주기로 일제히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면서, 중심 별빛은 상당히 복잡한 패턴으로 밝기가 변한다. 그 패턴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총 몇 개의 행성이 각각 어떤 주기로 별 앞을 지나가는지를 알아냈다.
외계행성과 중심 별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트랜짓을 잘 활용하면 행성의 대기 유무도 알 수 있다. 이미 2018년 허블 우주 망원경 관측을 통해 이곳의 대기를 확인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허블은 제임스 웹과 달리 주로 가시광선을 관측했고 망원경 크기도 더 작다보니 정밀한 대기권 관측이 어려웠다. 허블 정도의 성능으로 대기를 확인하려면 적어도 천왕성, 해왕성처럼 두꺼운 대기권을 가진 커다란 가스 행성 정도는 되어야 한다. 대기가 얇은 암석 행성이라면 허블 관측만으로는 대기권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2018년 허블 관측에서 천문학자들은 적어도 d, e, f 행성에는 두꺼운 수소 대기가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골디락스존 가장 바깥에 있는 g 행성의 경우에는 애매하지만 대기가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또 g 행성이 암석 행성이 아니라, 미니 해왕성 정도의 작은 가스 행성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중요한 건, d, e, f 행성 모두 ‘결코 대기권이 존재할 리 없다’라고 결론을 내린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목성처럼 두꺼운 대기권까진 없는 것 같다는 게 핵심이다. 얼핏 보면 대기권을 찾지 못한 것이니까 절망적인 결론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꼭 그렇지 않다. 오히려 희망적인 결론이 될 수도 있다. 이 행성들은 지구와 같은 암석 행성으로 의심되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지구처럼 얇은 대기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얇은 대기권을 확인하기 위해선 제임스 웹이 필요하다. 특히 제임스 웹은 적외선 파장을 관측하는 덕분에, 물과 이산화탄소 같은 지구 생명과 직결된 성분을 파악하는 데 유리하다. 제임스 웹은 TRAPPIST-1d 행성이 중심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순간을 겨냥했다. 이 행성은 태양-지구 사이의 2%밖에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중심 별과 떨어져 있지만, 중심 별 자체가 워낙 왜소하기 때문에 행성에 비치는 별빛은 지구에 비치는 태양 빛과 비슷하다.
TRAPPIS-1d 행성에 정말 다양한 화학 성분을 머금은 대기권이 있다면, 행성이 별 앞을 가리는 동안 별의 스펙트럼은 화학 성분으로 인해 중간중간 갉아먹힌 흔적이 남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관측한 스펙트럼을 보면 상당히 평탄하다. 화학 성분에 의해 중간중간 흡수된 정도가 상당히 미미하다. 천문학자들은 메테인, 이산화탄소, 물 등 다양한 화학 성분을 가정하고 실제 관측된 이 스펙트럼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을 찾았다. 하지만 메테인, 일산화탄소, 물, 이산화탄소, 이산화황 등 그 어떤 성분도 뚜렷한 신호를 보이지 않았다. 처음 분석했을 때는 그나마 암모니아 성분이 유의미한 신호를 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추가 분석을 통해 이것은 실제 대기 성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행성이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트랜짓이 진행되는 동안 중심 별 자체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면서 벌어진 밝기 변화로 인한 일종의 착시였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번 분석 결과, 크게 두 가지 흥미로운 가능성이 남는다. 첫 번째는 이 행성에 정말 아주 높은 밀도로, 낮게 깔린 얇은 대기권이 존재할 가능성이다. 화성과 비슷하다. 이 경우가 관측 데이터를 가장 잘 설명한다. 두 번째 가능성은 금성처럼 아예 대기권 높은 곳에 두꺼운 구름이 잔뜩 깔려서 대기권 성분에 스펙트럼이 흡수된 흔적 자체를 다 가렸다는 것이다. 이럴 가능성이 비교적 낮긴 하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행성이 지구를 닮길 바랐지만, 실제로는 화성 또는 금성과 비슷한 세계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두 곳 모두 우리는 살 수 없는 세계다. 안타깝지만 TRAPPIST-1에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천문학자들은 다시 한번 절망했다.
이번 발견이 천문학자들에게 특히나 씁쓸한 이유가 있다. TRAPPIST-1 별은 태양에 비해 훨씬 왜소하고 작은 적색왜성이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별은 우주에서 가장 흔하다. 우리 태양 같은 별에 비해 훨씬 작고 어두운 적색왜성이 훨씬 더 흔하다. 실제로 그동안 외계행성이 발견된 별 대부분도 이런 적색왜성이다. 그런데 이번 발견은 적색왜성에선 결국 생명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결론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우리가 발견한 적색왜성 주변을 맴도는 외계행성들 대부분을 다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적색왜성은 크기가 작은 별이기 때문에 별 안팎을 뒤섞는 대류가 매우 크게 벌어진다. 그러면서 별의 표면 바깥으로 전하를 띤 입자들이 함께 복잡하게 요동치고, 별 표면에 자기장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그 자기장을 따라 별 표면 물질이 빠르게 뿜어져 나오게 되고 별들은 우주 공간으로 에너지를 토해내는 플레어를 일으킨다. 플레어가 주변 행성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행성에 남아 있던 대기권이 계속 쓸려 나가게 되고 결국 행성은 대기권을 오랫동안 지키지 못할 것이다. 중심 별에서 쏟아지는 항성풍은 그대로 행성 표면에 막대한 우주 방사선을 내리쬐고 그 어떤 생명도 버티지 못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번에 제임스 웹이 관측한 d 행성은 골디락스존에서 가장 안쪽 경계에 있기 때문에, 중심 별에서 거리도 가깝고 항성풍에 가장 취약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멀리 떨어진 e, f, g 행성에는 기대해도 될까? 물론 중심 별에서 조금이나마 더 멀기 때문에 아직까지 대기권을 지키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중심 별에서 거리가 더 멀어지면 관측을 하기 까다롭다. 행성이 별 곁을 맴도는 주기가 더 길어지기 때문에 트랜짓을 한 번 놓치면 다음 트랜짓이 일어나기까지 더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또 별과 행성 사이 거리가 멀기에 행성 대기권을 통과하는 별빛의 세기도 약해지고, 따라서 스펙트럼을 파악하는 것도 더 어려워진다. 부족한 빛을 더 모으려면 제임스 웹보다 더 큰 망원경을 써야 하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 번 관측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관측해서 전체 데이터를 모아 희미한 신호를 더 밝게 증폭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러다보니 중심 별에서 더 멀리 떨어진 e, f, g 행성으로 갈수록 분석이 가능한 데이터를 확보하기까지 더 긴 기다림이 필요하고, 제임스 웹의 관측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야만 한다.
현실적인 한계를 마주하자 천문학자들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과연 현존하는 관측 기술로 우리가 찾고 싶은 외계 생명의 확실한 증거를 확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껏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추정되는 곳을 주로 찾아다녔다. 지구와 비슷하다는 건 결국 작은 암석 행성에 목성처럼 두껍지 않은, 훨씬 얇은 대기로 덮인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난감하게도 아직 우리 기술로는 목성처럼 두꺼운 대기를 두른 경우에만 대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지구처럼 얇은 대기를 덮고 있는 상황은 아직 우리의 관측 기술로 확실히 결론 내리기 어렵다.
우주에 가장 흔한 별이 적색왜성이건만, 이제 적색왜성 주변 외계행성에는 희망을 모두 버려야 하는 걸까? 수많은 생명으로 가득 차 시끄럽게 느껴졌던 밤하늘이 갑자기 고요해진 것 같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4-52642-6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df207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df62e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df42e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3-06232-z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날마다 우주 한 조각’, ‘별이 빛나는 우주의 과학자들’,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코스미그래픽’ 등을 번역했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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