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의약품 생산 규모가 커지면서 가정용 폐의약품 수거량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생산·판매한 제약회사가 회수·처리 비용을 부담하는 제도는 마련돼 있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 중심의 수거망 확대를 넘어 제약업계도 비용과 역할을 나누는 구조를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폐의약품은 단순 생활쓰레기가 아니다. 일반 쓰레기나 하수구로 버려질 경우 약 성분이 토양과 하천으로 흘러갈 수 있다.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장기적으로 환경과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정부와 지자체가 폐의약품을 별도로 수거해 소각 처리하는 이유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의약품 생산실적은 32조 8629억 원으로 1998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의약품 생산과 소비가 커지는 만큼 폐의약품의 수거량도 늘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집계 기준 전국 폐의약품 수거량은 2021년 약 487톤에서 2022년 713톤, 2023년 772톤으로 늘었다. 수거량이 늘수록 회수·운반·소각 부담도 커지지만 현행 체계에서 이를 생산·판매한 제약회사가 비용을 부담해야 할 의무는 없다.
가정용 폐의약품 수거 체계가 처음부터 지자체 위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2009년 환경부 주도의 민관협약으로 회수·처리 시스템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정부와 약사회, 제약업계, 의약품도매업계 등이 역할을 나눴다. 제약업계는 수거함 제작·보급 등 인프라 지원을 맡았고, 의약품도매업계는 약국에 모인 폐의약품을 보건소 등으로 옮기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체계 개편의 초점은 제약업계 책임 강화가 아니라 공공 수거망 확대에 맞춰졌다. 2023년 정부가 내놓은 ‘폐의약품 회수·처리체계 개선방안’은 주민센터와 공동주택 수거함, 우체통, 지자체별 회수·처리 방안 등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초창기 수거 체계에 등장했던 제약사와 의약품도매업계의 역할은 드러나지 않았다. 폐의약품 수거망은 넓어졌지만 생산·판매자인 제약회사의 책임은 여전히 제도 밖에 남아 있는 셈이다.
정부가 제약업계 책임을 검토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10년 폐의약품 회수·처리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2011년 하반기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제약사 등에 회수·처리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 계획은 현재까지 제도화되지 않았다.
제약업계가 손을 완전히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제약회사는 폐의약품 수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거나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제약은 2021년 대한약사회, 용마로지스 등과 폐의약품 수거 업무협약을 맺고 수거함과 관련 용품을 지원했다. 바이엘 코리아 또한 지난 6월 1일, 폐의약품을 올바르게 배출하는 방법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문제는 이런 활동이 의무가 아니라는 점이다. 참여 여부와 방식은 기업별로 다르다. 수거함 지원, 홍보물 배포, 임직원 캠페인 등 일회성 사업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업계 전체가 폐의약품 회수와 운반, 소각 비용을 지속적으로 나누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해외에서는 폐의약품 처리 비용을 공공에만 맡기지 않는 사례가 있다. OECD에 따르면 프랑스는 2009년부터 의약품을 확대생산자책임(EPR) 체계에 포함해 제약회사가 가정에서 나온 미사용 의약품의 수거·처리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개인이 약국에 반납한 미사용 의약품의 회수·처리는 비영리 생산자책임기구인 Cyclamed가 맡고, 제약회사와 도매업체, 약국이 함께 참여한다. 폐의약품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국내도 수거망 확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제약업계가 일정 부분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약사단체도 비슷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폐의약품의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의약품 제조사와 유통업체가 회수·처리 체계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약회사 판매량에 비례해 분담금을 내거나, 생산자책임기구를 운영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한편 제약업계는 가정용 폐의약품 회수·처리 책임을 제도화하는 데 신중한 입장이다. 여러 회사의 제품이 섞여 배출되는 폐의약품의 특성상 비용 부담 기준과 형평성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폐의약품은 범위가 넓고 어느 회사 제품인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며 “제도화가 필요하다면 제약사별 매출 비중 등을 기준으로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원혁
기자
garden7074@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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