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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대전환] ④ 정부와 업계가 추진하는 '탈 나프타'의 한계

연료 대신 청정원료 사용으로 탄소 배출 감축…수급 안정성 및 경제성 측면 '물음표'

2026.06.02(Tue) 18:48:30

[비즈한국] ‘대산 1호’ 프로젝트 승인을 계기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정부와 업계는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고, 고부가가치·친환경 산업으로 체질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탄소중립을 위한 실질적인 산업 전환 대책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구조조정이 단순한 생산량 감축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본다.

 

폐플라스틱을 화학적 재활용한 열분해유 등 원료 대체가 석유화학 업계에서 탄소절감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한화솔루션 웹사이트


최근 벌어진 나프타 대란은 석유화학 산업이 왜 ‘원료 대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나프타는 에틸렌, 프로필렌 같은 기초유분을 만드는 출발점이다. 여기서 나온 소재가 플라스틱 용기, 자동차 부품, 전자제품, 섬유, 포장재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나프타가 흔들리면 산업 전반의 원가와 공급망이 함께 흔들린다. 실제로 올해 중동발 수급 불안 속에서 나프타 가격 급등과 품귀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수입 비용 지원까지 검토했고, 업계는 대체 수입처와 원료 다변화에 나섰다.

석유화학 업계가 지금 주목하는 해법도 여기서 출발한다. 범용 플라스틱 제품의 수익성은 떨어지고, 탄소 감축 압박은 커지는 상황에서 기존처럼 나프타에만 의존해서는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나프타를 에탄, 바이오 나프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같은 대체 원료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공장을 통째로 갈아엎는 전기 NCC보다 기존 설비의 뼈대를 살리면서 원료만 바꾸는 방식이 당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떠오른 것이다.

다만 원료를 바꾸는 일이 곧바로 생존 전략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에탄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유리하지만, 생산물이 에틸렌에 치우쳐 고부가 소재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려는 업계의 장기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 원료 대체가 위기의 돌파구인지, 또 다른 범용 제품 의존의 반복인지를 두고 석유화학 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청정 대체 원료, 어디까지 왔나

 

현재 나프타를 대체하기 위해 검토 및 도입 중인 청정 원료는 에탄, 바이오 나프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등이 거론된다. 에탄은 미국산 셰일가스 등에서 추출되는 경질 가스로, 기존 일반 나프타 대비 탄소 배출량이 최대 50%까지 낮은 원료로 분류된다. 바이오 나프타는 식물성 유지나 폐식용유 등 바이오매스를 기반으로 생산되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대안이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는 수거된 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다시 석유화학 원료 수준의 정제유로 되돌리는 순환경제 모델의 일환이다. 정부 역시 중장기 고부가·친환경 전환을 위해 바이오 기반 원료 전환과 첨단소재 개발 등에 대규모 기술개발(R&D) 투자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이러한 대체 원료 도입 가속화를 위해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다. 대산석유화학단지의 LG화학, HD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에너지스 3사는 에탄 공동구매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한화토탈에너지스는 2030년까지 대산 산단 내에 에탄 터미널을 구축하고, 기존 설비를 에탄분해설비(ECC)로 일부 전환해 에탄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정부 또한 대산산단 에탄 터미널 인허가 패스트트랙 지원을 경쟁력 제고 방안에 포함했다. 또한 LG화학은 충남 당진에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공장을 추진하는 등 화학적 재활용에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장용희 LG화학 저탄소추진팀장은 “전기 NCC는 950도에 달하는 초고온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소재 및 전기의 내구성 검증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기존에 연료로 쓰던 부생가스(메탄)가 잉여물로 남게 되어 이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추가 과제가 발생한다”며 “반면 바이오 원료 활용 및 폐플라스틱 재활용 제품은 상대적으로 기술 성숙도가 높고, 기존 생산 설비를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주목받는 에탄, 구조적 한계도

 

원료 대체 카드가 주목받고 있으나 구조적인 한계점도 지적된다. 특히 온실가스 저감 측면에서 선호되는 에탄은 국내 석화업계가 시급히 추진 중인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사업 재편과 방향성이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기존 나프타를 분해하면 에틸렌 외에도 프로필렌, 부타디엔 및 벤젠·톨루엔·자일렌(BTX) 등 다양한 연산품과 방향족 화합물이 생성된다. 석화사들은 이 다양한 부산물을 가공해 고기능성 화학 소재 및 다양한 다운스트림 스페셜티 제품을 생산하며 수익 구조를 다변화한다. 반면 에탄은 분해 시 주로 에틸렌 단일 품목 위주로만 생산되어 다양한 고부가 부산물을 기반으로 하는 다운스트림 확장성이 제한적이다. 범용 제품의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에탄 비중을 대폭 늘릴 경우, 제품 포트폴리오가 다시 범용 에틸렌계에 갇히게 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에탄 ECC 공정의 지속가능성 리스크는 에탄 가스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관측된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쉘(Shell)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모나카에 총력을 기울여 건설한 대규모 에탄 크래커 시설은 초기 낙관했던 수익성 전망과 달리 최근 글로벌 공급과잉 여파와 시황 악화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원료 단가가 낮다는 이점만으로는 글로벌 석화 시장의 구조적 침체와 공급 격변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원료 대체 앞서 플라스틱 감량, 재사용 우선돼야”

 

에탄 외에 바이오 나프타나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등 친환경 원료 역시 양산 및 상용화 단계에서 걸림돌이 많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 공장들의 거대한 처리 용량을 감당하기에는 이들 대체 원료의 절대적인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며, 원료 수급의 안정성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열분해유의 경우 기술적 고도화 비용과 양질의 폐자원 확보를 위한 비용 상승 등으로 인해 투자의 경제성 유무를 두고 업계에서 정밀하게 검토하는 중이다.

 

SK지오센트릭은 1조 8000억 원을 투입해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 부지에 열분해,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PET 해중합 기술을 결합한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 단지 ‘울산 ARC(Advanced Recycling Cluster)’​ 건설을 추진했다. 완공 시 매년 32만 톤 규모의 폐플라스틱을 재자원화할 예정이었으나, 급증한 투자비 부담과 SK그룹의 사업 구조 재편(리밸런싱) 여파로 인해 준공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특히 합작하려던 미국의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가 투자를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사업 추진의 동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되면서 내부 전담 부서 축소 및 임원진 감축 등 구조 조정이 단행됐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원료 대체 위주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석유화학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플라스틱 제품 자체의 절대적인 생산 및 소비를 줄이는 ‘감량’과 ‘재사용’ 정책이 최우선되어야 한다는 것. 가공 과정에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화학적 재활용에 앞서 플라스틱을 종류별로 모아 잘게 쪼갠 뒤 열을 가해 다시 성형하는 ‘기계적 재활용’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자원 순환과 탄소 감축이라는 본질적 목적에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정석환 기후솔루션 석유화학팀장은 “기존 원유 기반 나프타는 채굴 및 정제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듯, 대체 원료 역시 원료의 조달 기원과 제조 공정이 얼마나 청정한지에 따라 실제 감축 효과가 달라진다”며 “현재 석화 산업의 위기 속에서는 공급 과장인 물량 생산 중심의 정책이 아닌 감량과 재사용, 기계적 재활용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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