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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서른 살 '천녀유혼'과 영원한 '섭소천' 왕조현

동아시아 최고 인기 여배우 신드롬, 은퇴 이후에도 세인 관심 여전

2017.07.10(Mon) 18:24:41

[비즈한국] “이 영화 귀신 영화 맞는 거지? 처녀귀신이면 흰 소복에 산발해 가지고 입가에 피 질질 흘리잖아. 그런데 귀신이 왜 저렇게 예뻐?”, “사람이 아니잖아. 후후. 앞에 있는 애들 좀 봐라. 극장에서 사진기 플래시 팡팡 터뜨린다.”

 

30년 전쯤, 두세 편을 함께 상영하던 변두리 동시상영관에서 특정 영화를 상영할 때면 흔히 있던 일이었다. 인터넷은 물론 PC통신도 없던 그 시절 동시상영관을 찾은 소년들은 부모님 카메라를 몰래 들고 와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올해로 개봉한 지 만 30년을 맞는 왕조현(왕쭈셴) 주연의 1987년 작 ‘천녀유혼’ 얘기다. 아름다운 귀신과의 이뤄질 수 없는 가슴 시린 러브 스토리를 그린 이 영화는 사극, 공포, 무협, 멜로, 특수효과가 기막히게 융합된 판타지물로 이제는 옛 얘기가 된 홍콩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흔히 주윤발(저우룬파) 주연의 ‘​영웅본색’(1986)​​과 함께 홍콩영화 르네상스의 정점에 선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천녀유혼’ 중 왕조현이 나오는 장면.


‘​천녀유혼’​은 명나라 말과 청나라 초 시대 인물인 포송령이 쓴 ‘요재지이’에 나오는 처녀귀신 섭소천(립시우신)과 가난한 서생 영채신(링초이산) 이야기를 실사 영화한 작품이다. 섭소천 역에 왕조현, 영채신 역에 장국영(장궈룽), 퇴마사 연적하(인척시아) 역에 오마(우마)가 열연했다. 천녀유혼은 1편의 엄청난 성공에 이어 2편(1990), 3편(1991)이 제작됐으며 세 편 모두 감독은 정소동(청샤오둥), 제작은 서극(쉬커)이 맡았다. 

 

 

각 편에서 등장인물의 이름과 출연진은 차이가 있지만, 왕조현은 세 편에 모두 출연했다. 널리 알려진 섭소천 배역은 1편에서만 등장한다. 왕조현은 2편에서 소천과 닮은 청풍이란 여자 인간 역할을 했고, 3편에선 여자 귀신 소탁 역을 맡았다. 장국영은 2편까지 나오고, 3편에선 양조위(량차오웨이)가 남주인공 십방 역을 맡아 대체된다. 연적하 역으로 장학우(장쉐여우)가 나왔다. 

 

왕조현에게 ‘​천녀유혼’​​은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특히 1편을 찍을 당시 갓 스무 살이었던 왕조현은 천상의 선녀에게나 있을 법한 환상적인 미모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홀렸다. 오밀조밀하고 단아한 이목구비, 하얀 얼굴과 대비되는 짙은 검은 눈썹, 당시 동아시아권 여배우로는 매우 큰 173cm의 키에 농구선수 출신의 운동으로 다져진 날씬한 몸매는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왕조현은 특히 중국 고전의상이 매우 잘 어울렸는데 ‘천녀유혼’ 시리즈는 이런 그녀의 특장점을 십분 발휘하기에 필요충분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중화권 여배우들이 출연하는 많은 작품을 봤지만, 그녀만큼 고전의상이 잘 어울리는 여배우를 ​아직 ​못 본 것 같다. 

 

의심스럽다면 ‘천녀유혼’ 시리즈와 ‘장단각지연’(1988)​의 결말 부분, ‘청사’(1993)​, ‘동방불패2’(1993)​에서 고전의상을 입은 왕조현의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 이 영화들에 등장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중국 역사상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 왕소군, 초선(또는 항우의 부인 우미인), 양귀비(양옥환)의 모습이 ‘저러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마저 들게 한다.

 

‘천녀유혼’을 제목으로 하는 다른 영화, 만화, 드라마까지 있지만 아직도 ‘섭소천은 왕조현’이라는 공식이 성립돼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87년 작 ‘천녀유혼’은 1959년 작 동명 작품의 리메이크이다. 그러나 왕조현의 모습이 너무나 강렬하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어 1987년 작을 원작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왕조현은 ‘천녀유혼’과 비슷한 분위기의 ‘화중선’(1988)​에도 출연하는데 이 작품은 ‘천녀유혼’의 짝퉁이라는 평가를 못 벗어난다. 

 

영화 ‘청사’에서 장만옥(오른쪽)과 함께 나온 왕조현.


‘천녀유혼’ 시리즈의 제작을 맡은 서극이 감독한 애니메이션 ‘천녀유혼’(1997)​도 있고, 2003년에 타이완에서 만들어진 40부작에 달하는 TV시리즈도 있다. 2011년 중국에서도 리메이크 돼 유역비(리우이페이)가 섭소천 역할을 맡았는데 비평가와 관객에게 혹평만 받아야 했다. 왕조현이 아닌 배우의 ‘천녀유혼’은 ‘​짝퉁’​으로 취급된 셈이다. 


인터넷을 통해 지금처럼 해외 연예인 사진을 쉽게 구할 수 없었던 당시엔 이들의 사진을 담은 책받침이나 연습장이 대유행이었다. 브룩 실즈,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같은 서구 여배우들이 대세였던 이 시장에서 왕조현은 당당히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

 

왕조현은 홍콩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타이완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가 중국의 국부 손문(쑨원)과 혁명 동지인 뼈대 있는 가문에서 자랐다. 그녀의 연예계 진출은 청소년 농구 국가대표를 지낸 아버지의 영향으로 농구선수 생활을 하며 연습을 하는 도중 이를 지켜보던 연예계 관계자로부터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아디다스 광고 모델로 데뷔하면서 이뤄졌다. 

 

그녀는 1983년부터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1986년부터 홍콩 영화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왕조현은 ‘의개운천’에서 광둥성 출신 밀입국자로 상대역인 주윤발의 비호를 받으며 애틋한 사랑을 키워가는 공선 역을 맡으면서 호평을 받았다. 그해에 주윤발과 다시 함께한 ‘공처2인방’과 홍금보(홍진바오) 주연의 ‘대나팔’에 히로인으로 출연하며면서 급속하게 인지도를 높여갔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87년 그녀의 인생작인 ‘천녀유혼’에 출연하게 됐다. 

 

그녀는 당대 홍콩의 최고 인기 배우 주윤발과 유독 연기 호흡을 많이 맞추었다. 앞서 언급한 작품 외에도 ‘대장부일기’(1988)​, ‘장단각지연’(1988)​, ‘도신-정전자’(1989)​가 그러했다.

 

리즈 시절의 왕조현.

 

이후에도 왕조현은 ‘시티헌터’(1992)​, ‘신유성호접검’(1993)​, ‘동방불패 2’(1993)​, ‘청사’(1993)​ 등 숱한 히트작품에 출연하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갔다. 하지만 여배우로서의 전성기는 거기까지였다. 너무나 강렬했던 ‘천녀유혼’의 섭소천 이미지는 그녀에게 족쇄로 작용한 데다가 다작 출연과 스캔들은 그녀를 감싸왔던 신비한 이미지를 갉아 먹는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왕조현은 나이 쉰인 지금까지 독신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녀를 남성들이 가만 놔둘 리 없었다. 그녀의 스캔들 상대들은 나이 차이가 매우 많이 나는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첫 스캔들 상대는 ‘최가박당’(1982)​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허관걸(쉬관제)이었는데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열아홉 살이었다. 또 오랜 기간 친구이자 애인으로 지낸 가수 겸 배우였던 제진(치친)은 그녀와 일곱 살 차이였다. 

 

왕조현은 인터뷰에서 “나와 상대역들은 나이 차이가 많았다. 그들은 나를 막내 동생처럼 (정답게) 대해줬고 (나도) 그들을 스스럼없이 대하다 보면 (사랑) 감정이 드러날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열 살 연상의 기업인이자 영화제작자인 임건악(린젠웨)과의 스캔들은 그녀의 연예활동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 임건악이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왕조현은 이 일로 1994년 은퇴를 선언했지만 다시 복귀했고 ‘미려상해(제작 2002년, 개봉 2004년)’를 끝으로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그녀는 캐나다 벤쿠버에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운명은 조용히 살아가려는 그녀를 놔두려 하지 않는 것 같다. 2004년 왕조현은 한 파파라치에게 엄청나게 뚱뚱해진 모습을 찍혔고 이 사진이 공개되면서 팬들을 경악시켰다. 그녀는 쉽게 살이 찌고 또 잘 빠지는 스타일이었고 이를 인식하듯 다이어트를 통해 곧 예전의 체형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은둔 생활을 오래하다 비구니가 됐다는 루머도 있었다. 2010년에는 심하게 부은 얼굴 사진으로 성형의혹에 시달려야 했고 다음 해에는 사생아 딸을 1994년에 낳았다는 루머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왕조현은 그때마다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대처했다. 더 이상 후속 보도가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모두 루머일 뿐으로 보인다.

 

그녀는 2010년대 들어와선 간간이 SNS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공개하고 있다. 공개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아름답다. 여배우 가운데에는 팬들이 젊은 시절 아름다운 모습만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막이나 브라운관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왕조현이 그런 경우로 보인다. 

 

왕조현은 이른 나이에 스타덤에 올라 동아시아 최고의 인기 여배우로 군림했으나 많은 외적인 요인으로 그녀의 인생은 심한 부침을 겪어야 했다. 연예계를 떠난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나의 섭소천은 어떻게 지낼까”라며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 터졌다. 왕조현이 훌훌 상처를 털어내고 다시 배우 활동을 하든지 아니면 대중 앞에 스스럼없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지나친 관심보다는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면 어떨까. ​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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