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제 해운 산업이 환경 규제 강화에 직면하면서 선박 연료의 패러다임이 중유(벙커C유)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박의 동력 시스템도 재편되는 추세다. 한국 조선업계는 이 같은 변화를 계기 삼아 그동안 유럽이 주도해온 대형 선박 엔진 원천 기술의 독점적 구조에서 벗어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해상에서 연료를 공급하는 LNG 벙커링선 분야에서도 기술적 성과를 다져가며 차세대 조선 시장의 거점을 다지는 분위기다.
#환경 규제는 강화되는데 배터리 기술은 한계
국제해사기구(IMO)는 국제 해운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단계적인 규제 로드맵을 시행 중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선박에는 에너지효율설계지수(EEDI)를, 기존 선박에는 에너지효율운항지표(EEOI)를 적용해 탄소 배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연간 운항 데이터를 바탕으로 탄소 효율을 평가하는 탄소집약도지수(CII) 제도가 안착하면서, 일정 등급 이하를 계속 받은 선박은 상업적 운항이 제한된다. 이에 더해 글로벌 자산운용사 중심의 ESG 경영 요구도 해운사들의 연료 전환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존 선박의 주 연료였던 벙커C유는 황산화물(SOx)과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한다. 이에 저유황유(MGO)가 대체재로 언급되지만,는 정제 비용에 따른 높은 가격대가 변동성 리스크로 꼽힌다. 배출가스 정화장치(스크러버) 설치 역시 오염 슬러지 처리 문제와 이산화탄소 직접 저감 한계라는 취약점이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꼽히는 배터리를 활용한 순수 전기 추진 방식은 소형·단거리 선박에는 도입이 가능하나 대형 상선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화석 연료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낮아 장거리 대양 항해를 위해서는 선박 내 상당한 공간을 배터리 탑재에 할애해야 하며, 이는 화물 적재 공간 축소로 이어져 경제성을 떨어뜨린다.
이에 비해 LNG는 영하 163도로 냉각해 액화할 경우 부피가 기체 상태 대비 600분의 1로 줄어들어 수송 효율이 높다. 기존 연료와 비교해 황산화물과 미세먼지 배출을 대부분 차단할 수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약 23% 줄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유효한 징검다리 연료로 평가받는 이유다.
#공간 효율성, 연비 높인 ‘DFDE' 시스템
LNG 추진 방식이 본격화되면서 대형 상선 시장에서는 내연기관과 전기 추진 방식의 장점을 결합한 ‘이중연료 디젤-전기 추진(DFDE)’ 시스템 채택이 늘고 있다. 이중연료 엔진은 두 가지 이상의 연료(디젤과 LNG, 메탄올, 암모니아 등)를 선택적 또는 동시에 사용하는 내연기관이다. DFDE 선내에 배치된 복수의 이중연료 엔진이 발전기를 구동해 전력을 생산하고, 이 전력으로 전기 추진 모터를 가동해 선박을 움직인다.
과거 기계식 추진 방식은 대형 메인 엔진과 프로펠러가 축으로 직접 연결돼야 해서 엔진룸의 위치가 선미 하단으로 제한됐다. 이에 반해 DFDE 시스템은 엔진과 모터가 전력 케이블로 연계되므로 선체 내 공간 배치가 훨씬 유연하다. 이 덕분에 엔진룸 공간을 줄이고 선박의 화물 적재 공간을 추가 확보할 수 있어 운송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운항 조건에 따른 부하도 낮출 수 있다. 저속 운항 등 부하가 낮은 상황에서 필요한 엔진만 선택적으로 가동해 연비 효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중 엔진 구조여서 운항 중 특정 엔진에 정비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나머지 엔진을 활용해 계속 운항할 수 있다. 빙하를 부수는 쇄빙선 등에서 기계식 엔진을 사용하면 크랭크축에 부하가 많이 가면서 고장 우려가 커진다. 이에 반해 전기 모터를 활용하는 DFDE 방식은 엔진이 모터의 부하와 기계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일정한 속도로 안전하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모터는 강력한 토크로 얼음을 부수며 전진할 수 있어 선박 시스템 전체의 기계적 안정성이 상승한다.
운항 효율성에서도 장점이 있다. DFDE 시스템은 운항 부하가 낮을 때는 여러 대의 엔진 중 필요한 개수만 가동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정지시켜 최적의 연비를 유지할 수 있다.
#선박 엔진 원천 기술 로열티 구조 바뀔까
이중 연료를 사용하는 다중 엔진 및 전기 추진 시스템의 부상은 단순히 선박의 연비 향상과 공간 절약이라는 기계공학적 이점을 넘어, 조선 시장의 깊게 뿌리내린 ‘선박 엔진 자주권’ 문제와 직결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1위의 선박 건조 능력을 자랑하는 조선 강국이지만, 선박 원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심장, 즉 대형 상선용 추진 기관인 ‘대형 2행정(2-stroke) 엔진’ 분야에서는 기술적 종속이라는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다.
현재 대형 선박용 메인 엔진의 원천 설계 및 핵심 기술은 독일 ‘MAN Energy Solutions(MAN-ES)’와 스위스 ‘WinGD(Winterthur Gas & Diesel)’, 두 거대 기업이 세계 시장을 사실상 양분해 독점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한국의 주요 조선사와 산하 엔진 제조사들은 대형 엔진 원천 설계 기술이 없기에 유럽 2사로부터 라이선스를 획득해 도면을 받아오는 ‘기술 협업(라이선시, Licensee)’의 형태로 대형 엔진을 제작해 조선소에 납품한다. 엔진을 제작할 때마다 거액의 기술 로열티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DFDE 시스템 도입이 늘면서 중형 엔진 부문 독자 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의 입지가 넓어졌다. HD현대중공업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자체 ‘힘센엔진’ 등의 중형 이중연료 엔진이 시장에서 채택 비중을 늘리며 기존 외산 대형 엔진 중심의 생태계를 보완하고 있다.
LNG 추진 선박의 보급과 맞물려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는 ‘LNG 벙커링’ 시장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LNG 벙커링 수요는 2030년 1600만 톤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최근 시장 내 LNG 벙커링선 발주 규모가 일반 LNG 운반선을 상회하는 흐름도 관측된다.
벙커링 방식은 탱크트럭을 이용하는 TTS(Tank-to-ship), 육상 터미널을 통하는 PTS(Pipe-to-Ship) 등이 있으나 대형 상선의 급유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용량과 장소의 제약이 따른다. 이에 따라 벙커링 전용 선박이 직접 대상 선박에 접근해 공급하는 선박 대 선박(STS, Ship-to-Ship) 방식이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STS 벙커링은 화물 하역과 연료 공급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동시 작업’ 기능이 장점이다. 선박이 부두에 정박해 화물을 내리는 동안 반대편 해상에서 벙커링선이 접안해 연료를 주입할 수 있어, 연료 보급만을 위한 별도 정박 시간이 필요없다. 선사들의 항만 체류 시간이 단축돼 운항 경제성이 개선된다.
조선 업계 종사자는 “최근 LNG 벙커링선이 활발히 수주되면서 중소형 선박 제조 조선사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며 “많은 해운사가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는 선박 설계를 요구하면서 LNG 관련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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