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 세계가 K팝의 성취에 열광하고 있지만, 이 거대한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인 팬들이 마주치는 현실은 그리 눈부시지 않다. K팝 산업은 팬덤 경제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팬들의 구매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인 팬들의 기본적인 권리는 애정이라는 명분 아래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K팝의 글로벌 위상에 걸맞지 않은 공연 산업의 관행과 문제점을 이용자 권익 관점에서 짚어본다.
K팝 공연 산업이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엔터사들에게 공연은 단순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핵심 자산으로 여겨진다. 글로벌 투어는 티켓 판매만으로도 대규모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데다, 응원봉과 의류·액세서리 등 MD 소비로 연쇄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올해 1분기 엔터테인먼트 매출 2641억 원 가운데 1773억 6300만 원(63.5%)을 공연 및 영상 콘텐츠 제작 부문에서 거뒀다. SM 측은 콘서트 규모 확대와 MD·라이선싱 성장 효과를 주요 실적 요인으로 꼽으며 “콘서트와 IP 기반 매출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브 역시 공연 사업 비중을 키우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콘서트·팬미팅 등 공연 부문에서 7639억 5000만 원의 매출을 냈다. 이는 전체 매출의 28.8% 수준으로, 음반·음원(29.1%)에 이어 두 번째로 비중이 크다. 올해 1분기에는 공연 부문에서 887억 22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이브는 분기보고서에서 “한국 대중음악산업은 충성도 높은 팬덤을 구축하고 이를 중심으로 집중적이고 연속적인 공연 및 매니지먼트 활동을 수행하는 선진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공연 사업이 안정적인 팬덤 소비를 기반으로 엔터사의 기업가치를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 이 같은 ‘선진 모델’의 소비자인 팬들이 느끼는 현장 경험은 사뭇 다르다. 연간 92억 달러로 급성장한 K팝 시장의 상당 부분을 떠받치는 K팝 팬들의 소비자 권리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척돔 4층도 16만 원, ‘전석 동일가'의 이면
공연 사업의 외형이 커질수록 이를 둘러싼 팬들의 불만과 논란도 커진다. 콘서트 티켓 가격 인상 자체는 글로벌 공연 시장 전반에서 나타나는 흐름이지만, 국내 K팝 공연에서는 특히 ‘전석 동일가’ 관행이 만연하다. 해외 유명 가수의 내한 공연에서는 구역과 시야에 따라 좌석 등급을 나누는 게 일반적인 반면 국내 아이돌 공연은 좌석 등급 차이를 최소화한 채 가격을 똑같이 매기는 경우가 많다.
지난 2월 말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3일간 개최된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콘서트는 스탠딩·좌석 구분 없이 전석 15만 4000원 단일가로 판매됐다. 체조경기장에서 5월 말 열릴 예정인 샤이니 콘서트는 다이아몬드석 19만 8000원, 일반석 16만 5000원 등 두 가지 가격으로 구성됐다. 같은 경기장에서 오는 8월 개최되는 일본 밴드 오피셜히게단디즘 내한 공연은 스탠딩과 지정석을 R·S·A·B 등급으로 나눠 13만 2000원에서 16만 5000원까지 차등 책정했다.
4만여 석 규모인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10월 열리는 포스트말론 내한 공연의 경우 얼리 엔트리 VIP 패키지(43만 원대)와 프리미엄 VIP 패키지(52만 원대)를 포함해 P·R·S·A·B·C·D·E 등 세분화된 등급으로 구성된다. 얼리 엔트리 VIP 패키지(43만 원대)와 프리미엄 VIP 패키지(52만 원대)를 포함해 P·R·S·A·B·C·D·E 등 세분화된 등급으로 구성된다. 스탠딩석은 15만 4000원, 가장 저렴한 E구역 좌석은 9만 9000원이다.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체감 가치가 달라지는 구조를 가격에 반영한 것이다.
여기에 선예매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3만 원 안팎의 팬클럽 가입비도 사실상 필수 비용으로 굳어졌다.
일괄적인 좌석 구성이 현장에서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해 7월 블랙핑크 월드투어 고양 공연에서 일부 구역 관객들은 무대 정반대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인해 공연 내내 무대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문제의 구역은 시야제한석이 아닌 정상가 B석(13만 2000원)으로 판매됐는데, 예매 페이지에는 이 구역의 시야 제한에 대한 별도 안내가 없어 논란이 이어졌다.
한 K팝 팬은 “고척돔 같이 큰 공연장 3, 4층에서는 무대를 제대로 볼 수도 없는데 전석을 같은 금액으로 책정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냐”며 “K팝 공연만 시야제한석이 없거나 유독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더 비싼 패키지, 더 길어진 대기
티켓 외 부가 서비스처럼 판매되는 패키지 상품에 대한 불만도 반복된다. 사운드체크(사첵) 패키지는 본공연 전 리허설 현장에서 아티스트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판매되지만, 현장 경험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K팝 아이돌 팬 방 아무개 씨(28)는 “사첵이 팬들을 위한 팬 서비스처럼 이야기되지만 가격은 더 비싸고 재입장을 허용하지 않아서 스탠딩일 경우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사운드체크와 본 공연 사이 최대 5시간을 더 버텨야 한다. 로비 이용은 가능해 화장실에 갈 수 있지만 대부분 자리를 지킨다. 공연 시간까지 합산하면 7~8시간”이라고 토로했다.
하이터치(공연 후 아티스트와 짧게 손을 맞대는 방식의 팬 접촉 이벤트)나 하이바이(아티스트와 가까운 거리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는 이벤트)에 대해서도 “스치는 수준으로 순식간에 끝난다”, “매 행사마다 안내대로 빠르게 이동하는데도 직원이 밀었다”는 등의 볼멘소리가 SNS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본인 확인 관련 현장 운영 논란 역시 끊이지 않는다. 티켓 재판매와 부정 관람을 방지하기 위한 교차 확인 과정에서 일부 공연의 경우 금융인증서나 생활기록부 제출 요구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7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데이식스 팬미팅 공연에서는 일부 관객이 과도한 본인 확인 절차로 인해 입장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학생증을 지참한 10대 관객이 경찰서를 통해 신원 확인까지 받고 돌아왔지만 끝내 입장이 거부된 것. 이후 JYP엔터테인먼트는 “본인 확인 절차가 과도했다”며 공식 사과하고 환불 보상을 약속한 바 있다.
사건 직후 온라인에서는 “아이돌 콘서트 본인 확인을 개선해달라”는 취지의 서명운동에 4000명 이상이 참여했고 다수의 공감 의견이 이어졌다. 업계에서는 암표 거래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이 나오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검증이 관람 경험 자체를 위축시킨다는 관점도 있다.
팬들의 충성도가 높다 보니 불만이 이탈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업계 보편적인 인식이라는 비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콘서트 현장에서는 안전과 진행 문제 등으로 팬들에게 불편을 드리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면서도 “현장 운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인력과 비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팬들을 브랜드 자산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쪽으로 인식이 일부 전환되고 있다. 팬을 잘 챙기는 것 자체가 아티스트의 경쟁력으로 거론되는 분위기도 생겨났다. 과거처럼 팬의 불만이 쌓이면 결국 팬덤 이탈로 이어진다는 걸 업계도 의식하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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