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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에서 카메라로 ‘고프로’ 창업자 닉 우드먼

2016.06.15(Wed) 11:32:33

   
▲ 닉 우드먼. 출처=고프로

‘서핑 마니아 백수에서 억만장자 사업가로.’

흔히들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다고. 여기에 ‘열정’까지 더해진다면 성공은 따논 당상이다. 이런 행운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고프로(GoPro)’ 창업자인 닉 우드먼(41)이다.

오늘날 아웃도어 액션캠의 대명사격이 된 고프로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디카와 캠코더 시장이 몰락했던 것과 달리 지난 10년 동안 건재함을 과시해왔다. 2004년 처음 출시된 이래 지금까지 1000만 대 이상이 팔렸으며, 2014년 기업공개 당시 시장가치는 26억 달러(약 3조 원)에 달했다.

디카나 캠코더와 달리 고프로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여기에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저격한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도중에도 일반 디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고화질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막 찍어도 잘 나오는 광각이라는 점이 그랬다.

여기에 팔목, 어깨, 목, 머리 등에 자유롭게 부착 가능한 확장성도 주효했다. 이렇게 카메라를 부착하면 스키, 자전거, 자동차,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면서도 마음껏 원하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

이 밖에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가볍고 작은 크기의 휴대성과 누구든지 쉽게 영상을 편집할 수 있도록 한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도 인기에 한몫했다. 타이밍도 잘 맞아 떨어졌다. 때마침 아웃도어 시장이 붐을 이루면서 고프로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았다.

   
▲ 아웃도어용 고프로 히어로4 카메라. 출처=고프로

사정이 이런 만큼 고프로의 최대 고객은 아웃도어 마니아들이다. 우드먼 본인도 이런 아웃도어 마니아 가운데 한 명이었다. 우드먼은 어릴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서핑에 미쳐 있는 아이’로 통했다. 서핑에 대한 열정이 결국 그를 액션캠 사업가로 이끈 셈이다.

그가 서핑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은 8세 때였다. 친구의 방에 붙어 있는 서핑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한 것이다. 그날 이후부터 우드먼은 온통 서핑에 빠져 지냈다. 모험을 즐기는 활동적인 그에게 서핑은 그야말로 딱 맞는 취미였다. 심지어 매일 새벽 5시부터 서핑을 하다가 등교할 정도였다. 늘 바다에서 파도를 가르면서 살다시피 했던 그를, 고등학교 동창들은 ‘열정이 넘치는 아이’로 기억한다.

서핑에 대한 열정은 대학 진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드먼은 오로지 서핑을 마음껏 하겠다는 이유 하나로 바닷가에 위치한 샌디에이고의 캘리포니아대학에 진학했다. 매일 아침 친구들과 함께 블랙비치로 나가 서핑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고, 공강 시간에도 어김없이 파도를 탔다. 대학생 시절 내내 강의실과 해변을 오가는 것이 그의 주된 일상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우드먼은 벤처붐을 타고 두 차례에 걸쳐 벤처회사를 설립했지만 쓴맛을 봤다. 첫 번째 회사는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임파워올닷컴(EmpowerAll.com)’이었고, 두 번째 회사는 게임 및 마케팅 플랫폼인 ‘펀버그(Funbug)’였다. 하지만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우드먼의 회사도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했던가. 우드먼은 실패 후에 새로운 사업도 준비할 겸 재충전도 할 겸 5개월 동안 서핑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호주와 인도네시아 해변에서 유유자적 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파도를 타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는 카메라가 없음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그를 비롯한 서퍼들은 대부분 일회용 방수 카메라를 손바닥에 고무줄로 묶어서 사용했는데, 카메라가 파도에 휩쓸려 분실되는 일이 다반사였고 카메라에 얼굴을 맞아 부상을 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우드먼은 이런 불편함을 보완할 수 있는 카메라 고정용 밴드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정이 잘 되고, 각도 조절이 가능하며, 신축성이 있는 밴드여야 했다.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본금이 필요했다. 발리섬의 시장에서 개당 1달러 90센트(약 2200원) 하는 조개껍질 목걸이 600개를 사서 미국으로 돌아와 개당 60달러(약 7만 원)에 팔았다. 이렇게 목걸이를 팔아서 번 돈과 어머니로부터 빌린 3만 5000달러(약 4000만 원)가 고프로의 초기 자본금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제품을 완성하기까지는 2년이 소요됐다. 2002년 ‘우드먼랩스’ 사를 설립한 우드먼은 비용절감을 위해 제품 제작부터 테스트, 영업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했다. 일반 카메라용 손목 스트랩으로 시작했지만 곧 스트랩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카메라까지 직접 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초기 모델은 손목에 부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형태의 35mm 자동필름 카메라였다. 이어서 개발한 카메라는 와이파이가 지원되고, 원격 조정이 가능한 작은 디카였다. 시제품이 나올 때마다 반드시 직접 테스트해야 직성이 풀리던 그는 스포츠카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하루종일 제품을 테스트하곤 했다. 이런 노력 끝에 세계여행을 떠난 지 4년 만인 지난 2004년 마침내 첫 번째 고프로가 탄생했다.

같은 해 미국의 스포츠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인 고프로는 단숨에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본의 한 회사가 100개를 주문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던 것. 그 후로 판매량은 정확히 매년 두 배씩 늘어났다.

고프로가 가장 획기적으로 도약한 시점은 2009년 무역박람회 때였다. 당시 신제품이던 ‘히어로 HD’가 현장에서 순식간에 품절되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끈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고프로의 매출은 6400만 달러(약 755억 원)로 껑충 뛰었다. 바야흐로 액션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 고프로로 촬영한 다양한 사진. 출처=고프로 페이스북

고프로의 성공 덕분에 제조사인 ‘우드먼랩스’는 현재 5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2012년 대만 최대 기업이자 아이폰 제조업체인 폭스콘이 8.8%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2억 달러(약 2000억 원)를 투자해 화제가 됐으며, 덕분에 실리콘밸리의 청년 사업가였던 우드먼은 24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자수성가형 억만장자가 됐다. 사업가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서핑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고프로는 2014년부터 미국 프로서핑협회를 후원하고 있다.

우드먼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열정을 좇다보면 반드시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다. 열정은 지문과도 같다. 누구나 열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열정은 저마다 다르다. 열정은 인생의 가이드북이다.”

김민주 외신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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