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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한국 여학생은 왜 이공계 진학을 기피할까?

‘학습된 무기력’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그리고 이공계 기피현상

2016.12.19(Mon) 15:40:03

최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시행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학생의 성적이 2012년에 비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성적하락의 원인을 살펴보면, 남학생의 점수가 크게 떨어진 게 원인이었다. 특히 수학성적이 크게 떨어져서, 여학생에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적으로 남학생 수학 점수가 여학생에 비해 8점 높으며, 특히 상위수준에서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참고로 PISA란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 성취도를 측정하는 대규모 시험으로 2000년 이후 3년마다 시행되고 있다. 초기에는 OECD 국가만 대상으로 치러졌지만 요즘은 대만과 중국, 베트남 등 신흥국도 시험에 참여하며 대상국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표> PISA 2015 우리나라 결과. 출처: 주OECD 대표부(2016.12.9),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15 결과”


PISA 조사 결과를 보면, 여학생의 수능성적과 대학진학률이 남학생을 넘어선 게 당연하다 싶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여학생의 성과는 사회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아래의 그림에 잘 나타난 것처럼, 한국 여학생들의 높은 대학진학률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참가율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2015년 74.6%로 남학생의 67.3%를 크게 넘어서는데도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표> 대학진학률과 경제활동 참가율 추이. 출처: 통계청(2016.12.12.), ‘한국의 사회동향 2016’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는 여러 요인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역시 과학/기술계로의 진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제3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 이공계 대학 여학생 입학 비중을 현재 20%에서 2018년까지 25%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난 2008년 정부가 추진한 ‘제2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과 큰 차이가 없다. 2008년 제시한 계획에는 2013년까지 이공계 여학생 입학 비중 25%로 확대 등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이공계 여학생 비중은 2008년 19%에서 2013년 20%로 단 1% 증가하는 것에 그쳤다.*

 

과학/기술계로의 여학생 진출이 어려움이 지속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예전에는 여학생들이 남학생에 비해 수학/과학 성적이 뒤처졌기에,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PISA 2015 결과에서 보듯, 수학/과학 성적의 격차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오히려 여학생이 더 우위에 올라선 상황임을 감안하면 여학생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 미국의 직장별 연봉 통계 조사에서 보듯, 정보통신 혁명의 진전 속에 이른바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전공자들의 연봉이 갈수록 올라가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표> 미국 전공별 연봉 랭킹. 출처: 중앙일보(2016.12.17), “미국의 ‘연봉킹’ 전공은 공학 분야…석유공학 1위, 시스템공학 2위, 주: ‘붉은 박스’ 부분은 15대 연봉 상위 전공 중, 유일하게 문과 관련 전공을 표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괴로웠는데,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완벽한 공부법’(고영성/신영준 지음, 로크미디어, ​​2017년 1월 출간예정​)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책 18~20쪽).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먼은 1964년 동료인 스티브 마이어와 흥미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 속에 두 마리의 개를 가두고 무작위로 예고 없이 5초 동안 전기 충격을 가했다. 하지만 개들이 처한 상황이 같지는 않았다. 

 

한 우리에 갇힌 개는 전기 충격을 받을 때 우리 앞에 있는 패널을 코로 누르면 전기 충격이 바로 사라졌다. 그러나 다른 쪽 우리에 갇힌 개에게는 패널이 없었다. 이렇게 전기를 64번 흘려 보낸 다음 두 마리의 개를 원래의 우리로 돌려보내고, 다른 개 두 마리를 데려와 똑같은 방법으로 실험했다.

 

실험을 마친 다음날, 셀리그먼 팀은 개를 특수 제작한 상자에 넣었다. 가운데 큰 칸막이가 있는 이 상자는 스위치를 누르면 한쪽 칸에서만 전기가 흐르게 되어 있다. 개는 전기가 흐르는 칸에 처음 자리를 잡고 있다. 고음의 신호와 함께 전기를 흘려 보내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전날 패널을 코로 눌러 전기 충격을 중지시켰던 개들은 대부분 칸막이를 넘어서 전기가 흐르지 않는 건너편 칸으로 넘어갔지만, 패널이 없어 전기 충격을 받았던 개들의 대부분은 전기 충격이 끝날 때까지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전기 충격을 견뎠다. 이 개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것이다. (중략)

 

기대를 상실한 이런 무기력이 단지 실험실에서만 형성되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의 학교에서, 삶에서 매일 같이 벌어진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런 무기력이 ‘학습’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무기력한 아이, 활기찬 아이, 낙관적인 사람이 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타고 태어난다. 하지만 실패 경험이 쌓이고 현재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경험이 누적될 때마다 무기력은 학습되고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무서운 이야기다. “넌 안돼! 해봐야 소용없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서 의욕을 아예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들으며, 두 아들들에게 아빠로서 혹시 저런 못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런데 이 ‘학습된 무기력’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하락, 그리고 이공계 기피현상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2008년 세계적인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Culture, Gender, and Math’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은 PISA 2008 수학 점수를 분석한 결과, 대단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학생들의 점수가 여학생보다 높은 것으로 나온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그 분포가 문제였다. 남녀 간의 수학성적 차이는 해당 국가의 성불평등 지수와 똑같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와 같이 남녀 완전평등이 실현된 나라들의 경우, 남녀의 수학 실력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수학과 관련된 성차(性差)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과 관련된 성차(性差)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 여러 실험에서 밝혀졌다. 그럼에도 이공계로 진출하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적다. 사진=비즈한국DB

 

특히 2008년의 연구에 참가했던 연구자 두 명을 포함한 연구진이 ‘여성은 수학을 못한다’는 편견의 실상을 파헤친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은 더욱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연구진은 업무상 수학을 필요로 하는 업종의 고용자와 구직자들을 모집하여, 고용자 및 구직자들의 여성에 대한 편견을 측정해 보았다.

 

1. 구직자에 관한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사진 하나만 달랑 제시했을 때, 남성이 고용될 확률은 여성이 고용될 확률보다 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고용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차이가 없었다.

 

2. 구직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수학 실력을 설명할 시간을 주고 채용 결정을 내리게 한 후에도, 고용자들의 편견은 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성 구직자들은 자신이 수학 실력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자기 PR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3. 구직자들의 수학점수를 보여준 후 채용 결정을 내리게 한 경우, 고용자들의 편견은 많이 감소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남성은 같은 성적의 여성에 비해 여전히 30%나 많이 고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남성 고용자는 여성 구직자의 수학 실력을 낮게 평가하며, 또 여성 고용자도 여성 구직자의 수학 실력을 낮게 평가한다. 결국, 이런 ‘학습된 무기력’ 속에서 여성 구직자들은 자기의 수학 실력을 스스로 낮게 평가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수학 잘하는 여학생에게 이공계 진학을 권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그 여학생이 졸업한 후 STEM 관련 일자리를 얻지 않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이 글을 쓰는 필자 스스로도 어떻게 해야 여학생의 이공계 진학을 촉진하고, 더 나아가 경제활동 참가율을 올릴 수 있을지 뚜렷한 답은 없다. 다만,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이 이공계에 진학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 디지털 타임즈(2014.5.30), “이공계 여학생 기피현상 여전”

** Luigi Guiso, Ferdinando Monte, Paola Sapienza, Luigi Zingales,(30 May 2008), “Culture, Gender, and Math”, Science, Vol. 320, Issue 5880, pp. 1164-1165.

***​ Ernesto Reubena, Paola Sapienzab, and Luigi Zingalesc(January 31, 2014), “How stereotypes impair women’s careers in science”, PNAS, vol. 111 no. 12, 4403-4408.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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