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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변호인] '참고인'으로 부르고 '피의자'로 대하는 검찰

피혐의자·피내사자 등 이상한 용어 들먹이며 압박…'참고인'은 '피의자'가 아니다

2017.09.25(Mon) 14:33:40

[비즈한국] 의뢰인이 참고인 조사 받으러 검찰청에 가는데 함께 가달라고 했다. 변호인선임계를 들고 따라나섰다. 참고인 조사임에도 강력부라 그런지 초장부터 불친절했다. 참고인은 수사에 참고하고자 수사기관이 협조를 구해야 하는 사람이다. 

 

수사대상이 수사기관의 의심을 없애야 무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수사기관이 수사대상의 혐의를 충분히 입증해야 유죄가 되는 것이다. 사진=비즈한국DB


그런데 담당수사관은 특정 신체검사에 동의해달라는 말을 꺼내고는, 대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당신이 왜 의심을 받고 있으며 그게 왜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당신은 설명도 못 한다’는 식으로 참고인을 몰아대며 신체검사를 반강제 했다. 실제 대화는 이랬다.

 

수사관: 당당하면 이분 신체검사를 임의로 받게 협조하세요.

 

변호인: 영장 가져오시면 협조하지요. 임의로 신체검사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인권 측면에서 최소한의 방어라고 이해해주세요. 이분 입장에서는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이기도 하고요.

 

수사관: 온 김에 하세요.

 

이때 약간 짜증이 났다.

 

변호인: ‘온 김에’라니 여기가 목욕탕이에요? 이발소예요? 어디서 참고인한테 이렇게까지 대합니까?

 

수사관: 이분 참고인 아니고 피혐의자예요.

 

변호인 : 아, 진짜! 피혐의자가 뭔데?

 

화를 참지 못하고 반말을 하고 말았다. 피혐의자니 뭐니 하는 표현을 수사기관에서 한두 번 들은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피혐의자’, ‘피내사자’, 이런 이상한 지위는 없다. 형사소송법에는 참고인, 피의자, 피고인이 있을 뿐이다. 피혐의자, 피내사자, 피혐의자성 참고인, 참고인성 피내사자, 피의자성 참고인, 이런 말들은 수사기관이 조사대상을 겁주려고, 위축시키려고, 그래서 수사를 편하게 이끌어나가려고 쓰곤 하는 이상한 표현이다. 

 

수사가 개시돼 ‘입건’된 ‘피의자’, 입건 후 ‘공소’가 제기(형사재판에 회부)된 ‘피고인’ 외에는 모두 다 참고인이다. 참고인은 수사기관에 일체의 의무가 없다. 수사기관이 협조를 간곡히 청해야 하는, 경찰공무원의 봉사대상인 국민일 따름이다.

 

신체조사 요구는 계속돼 내가 다시 개입했다. “지금 이분 동의를 구하는 거 아니에요? 친절하게 말하세요. 그리고 영장 가져오라니까요. 지금 집에 갈 거니까.” 참고인은 조사 중 아무 때나 집에 가도 된다.

 

옆에 있던 고참 수사관이 나에게 말한다. “의심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뇨. 안 했다는 증거 있어요? 증거?”

 

그 고참 수사관을 나는 “여봐요”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여봐요. 했다는 증거 있어요? 무죄라는 증거를 대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무죄추정의 원칙 모릅니까?”

 

수사대상이 수사기관의 의심을 없애야 무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수사기관이 수사대상의 혐의를 충분히 입증해야 유죄가 되는 것이다. 

 

그 수사관의 열의는 이해하지만, 현대 법률이 정해놓은 절차와 최소한의 원칙은 지키자는 말이다. “니 죄를 니가 알렸다”는 마을 원님 식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사람을 잡아들이면 편하겠지만 문명사회에서는 번거롭더라도 보편적 인권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날 밤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의뢰인에게 불이익이 될까 목에 차오른 말을 다 못하고, 더 격하게 항의하지 못한 게 자꾸 아쉽다. “무죄추정의 원칙 몰라요?”라는 말 앞에 “당신 수사관 맞아?”라는 말을 붙였으면 얼마나 속이 시원했을까. 

 

참, ‘참고인’이었던 나의 의뢰인은 피의자로 전환됐으나 ‘증거 없음’으로 최종 무혐의 처분됐다.​

류하경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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