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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덕일기] '미생'에서 '완생' 이룬 하부리그의 황제들

미생들이여, 그대들도 언젠간 피어날 것

2017.10.06(Fri) 11:41:26

[비즈한국] 추석엔 많은 청춘이 운다. 오랜만에 친척이 모여 안부를 묻는 날과 취업용 자기소개서 쓰는 날이 겹쳐서 생기는 문제다. 기업 서류 합격과 인적성 합격 여부가 나오는 날이 겹쳐서 생기는 문제다. “잘 지내냐”보다 “취업했냐”가 안부라 생기는 문제다. 

 

문제가 이렇게 많은 것도 문제적이다. 부모는 자식을 자랑스레 여기지만, 자식 입장에선 부모에게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이다. 스타크래프트에도 미생이 있다. PC방에서 치러지는 스타리그 예선에선 무적이지만, 팬들의 응원을 받는 오프라인 무대에선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미생들이다. 오늘은 그 미생들을 알아보겠다. 

 

사진=유튜브 안기효 채널 캡처


첫 번째는 안기효다. 송병구가 프로토스의 총사령관이라면, 안기효는 PC방 예선의 하데스이자 지하의 총사령관이다. 김택용이 프로토스의 혁명가라면, 안기효는 반란군의 리더이자 개방의 방주다. 그만큼 PC방 예선에서 성적이 좋았다. 신이라 불리는 이영호와 폭군 이제동을 꺾고 스타크래프트의 하부 리그인 챌린지 리그를 우승했다. 

 

예선에 혼신의 힘을 써서 그런지, 스타리그 본선에선 3패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안기효는 스타리그의 하부리그인 챌린지 리그와 듀얼 토너먼트에서 도합 39승을 챙겨, 하부리그 다승 1위라는 진기록을 갖고 있다. 안타깝게도, 본선의 최고기록은 8강이다. 분명히 한 건을 터트린 셈인데, 하필 하부리그에서 터트렸다. 오발탄인 셈이다. 

 

언론사들마저 고인규의 별명 '서황(서바이버 리그의 황제)'을 인정했다.  사진=구글 검색 캡처


두 번째는 고인규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예선의 총사령관이 송병구라면, MSL(MBC게임 스타리그)의 총사령관은 고인규다. 고인규는 한때 모든 스타크래프트 팬의 기대를 받았던 유망주였다. 2004년에 데뷔한 그는 임요환의 후계자로 불렸다. 임요환과 최연성을 잇는 SKT T1의 테란이자 그들의 최강자 계보를 이을 거라 기대했다. 

 

실제로 그는 황제였다. 하지만 스타리그와 MSL이 아닌 MSL의 하부리그인 서바이버 리그의 황제였다. 그의 별명인 ‘서황’은 서바이버 리그의 황제라는 뜻이다. 서바이버 리그의 서바이버였지만 안타깝게도 프로리그와 스타리그 본선에선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의 경기는 무색무취로 불릴 만큼 무난했다. 그만의 것이 보이지 않았다. 터질 듯 터지지 않았다. 안기효가 오발탄이라면, 고인규는 불발탄이었다. 

 

저그 황제는 임홍규를 부르는 애칭이다. 사진=구글 검색 캡처


셋째는 홍규다. 이제동이 폭군이고, 이영호가 신이라면 홍규는 옥황상제다. 아니, 집에서만 옥황상제라 ‘집황상제’다. 사람의 죄를 판단해 천국과 지옥을 보내는 옥황상제처럼, 그는 상대방을 모두 지옥으로 보낸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홍규는 집에서만 강하다. 집에서 게임을 할 때만 상대를 짓밟는다. 실제로 홍규는 최근 국민맵으로 불리는 서킷 브레이커에 한정해선 테란을 가장 잘 잡는 저그로 불리고, 이영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저그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오프라인 스타리그 성적은 처참하다. 항상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온게임넷에서 스타리그가 방송되던 시절 경기를 뛰기는커녕 팀에서 설거지를 담당했다. 기이한 오프라인 무대 부진은 오프라인 무대 경험 부족 때문이었다. 그의 강점은 피지컬이지만, 게임을 읽는 판단력이 부족했고, 경험 부족이 겹치니 오프라인 경기에선 피지컬만 좋은 그저 그런 게이머가 됐다. 다행히, 최근엔 조금 극복한 모양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다. 위에서 언급한 셋은 현재 다 일류다. 고인규는 리그 오브 레전드 해설로 활약하고 안기효는 인기 BJ가 됐다. 홍규는 톱급 BJ로 활동하며 현재 아프리카 스타리그 16강 토너먼트를 준비하고 있다. 

 

아니, 이들은 원래 일류였다. 스타리그 예선 진출은커녕 프로게이머가 되지도 못했던 미생들이 대부분인데, 최소한 저들은 프로게이머가 되지 않았는가. 과거 미생이었던 그들은 각자의 길에서 ‘완생’이 됐다. 미생이라 불리는 청춘들이여, 우리 모두 언젠간 피어날 삶이다. 지금 터지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자. 설거지를 도맡던 홍규가 아프리카 톱 BJ가 되었듯 우리도 언젠간 터질 것이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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