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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다반사] "청어·꽁치 반반에 야채 추가요" 갯바위수산 과메기

올리브 오일 같은 청아한 기름 내음…먹기 편한 배지기·네발걸이 일반화

2018.01.15(Mon) 10:06:51

[비즈한국] 몇 해 전 같이 일하던 후배는 ‘구룡포의 딸’이었다. 매 해 겨울이면 온 동네에 과메기 냄새가 진동을 했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과메기 껍질을 까는 것이 주요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선배, 전 과메기 좋아하지도 않는단 말이에요.” 진저리 난다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래도 잘하는 덕장 한 곳은 수소문해 알려줬다. “아빠가 추천해준 집이에요. 여기가 잘한대요.” 다정한 아이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과메기는 지금처럼 흔한 음식이 되지는 못했다. 안 먹어본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먹어봤어도 좋지 않은 물건을 먹어 첫인상부터 구긴 이가 태반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서울 인사동 어귀의 관광지화 된 식당에서 내놓은 말라비틀어진 과메기에선 비린내만 났다. 산패한 기름 향은 초고추장을 아무리 푹푹 짜 얹어도 가려지지 않았다.

 

꽁치 반, 청어 반으로 택배 주문을 넣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람을 불러 모았다. 몇 명의 먹보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와 과메기 껍질을 깠다. 이제는 청어가 동해로 돌아와 청어 과메기도 아무데서나 맛볼 수 있지만, 당시는 청어 과메기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귀하고 특별한 경험을 한다는 우월감에 설레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라고 우월감씩이나 느꼈는지 창피하지만. 

 

하여간 구룡포의 딸의 아버지가 자신 있게 추천해준 과메기 덕장은 실로 대단했다. “그간 먹었던 과메기가 다 쓰레기였네.” 독한 소리를 해가며 우리는 청어며 꽁치 과메기를 몇 마리씩이나 먹어치웠다. 방바닥은 뜨끈했고, 공기엔 구룡포의 바다가 진동을 했다. 그곳, ‘갯바위수산’은 그때부터 매년 겨울 올려 먹는 과메기 단골집이 되었다. 과연 이름부터 잘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과메기로 차린 어느 밤의 술상. 아래 붉은 빛이 더 도는 것이 꽁치 과메기, 위의 밝은 것이 청어 과메기다. 갯바위수산에서 봄에 따서 냉동해둔 돌미역, 아니면 고소한 곱창김만 싸먹어도 사실 충분하다. 초고추장이 잘 어울리긴 하나, 좋은 과메기엔 굳이 필요 없다. 딱 익은 김치, 또는 묵은지를 씻어 곁들여도 궁합이 좋다. 여러 조합으로 요래조래 곁들여 먹으니 한 입마다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 사진=이해림 제공

 

좋은 과메기에서는 청아한 향이 난다. 비린내 따위는 나지 않아야 잘 말린 과메기다. 마치 품질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처럼, 사과산이 흐릿하게 느껴지는 싱그러운 기름 향이 과메기가 가진 원래 향이다.

 

청어 과메기, 그리고 청어가 동해를 떠난 동안 대표 과메기 자리를 꿰찬 꽁치 과메기를 놓고 보자면 꽁치 쪽이 더 구수한 향이 강하고 청어는 담백함에 더 가까운 고소한 맛을 갖고 있다. 말리는 시간을 놓고 보면 꽁치는 사나흘, 청어는 일주일가량 걸리니 들인 시간과는 관계없이 생선 본연의 맛이 생긴 대로 흘러간 것이다.

 

요즘 나오는 과메기는 다들 ‘덕장’이라 이름 붙은 작업장에서 말린다. 말이 좋아 덕장이지 그냥 시골집 뒷마당의 그늘막 정도다. 과메기용 건조대를 여럿 만들어 놓고 꽁치며 청어를 포 떠 둘둘 널어 놓은 게 다다. 전화와 택배로만 접하던 갯바위수산에 취재차 갈 일이 있어, 성지순례라도 하는 듯한 비장한 각오로 찾아 갔다가 막상 그 덕장이라는 것의 정체를 알고서 망상이 깨졌다. 

 

대개의 소규모 덕장 풍경이 다 그렇다. 갯바위수산처럼 해안에 있는 곳도 있고, 산 중턱에 있는 곳도 있고, 시장통에 있는 곳도 있다. 구룡포 곶으로 부는 찬바람에 과메기가 알아서 기름을 뚝뚝 흘리며 마르지만, 대량생산하는 곳은 열풍기나 난로, 선풍기, 제습기 등 기계의 힘으로 더 빨리 말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과메기가 애초부터 이렇게 말리던 음식은 아니다.

 

옛날 주택구조에선 부엌에 아궁이가 있고, 거기에 나무를 때 밥을 하고 난방을 했다. 아궁이 위로 쌓은 부뚜막은 천혜의 건조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에 말리던 것이 전통적인 과메기다. 짚으로 둘둘 엮은 싱싱한 청어를 통째로 매달아 오래도록 말린다. 부뚜막에 피어오르는 향이 과메기에 밴다. 그렇게 말린 과메기를 구해다 먹어 보니 과연 훈연 향이 물씬하다.

 

이렇게 통째로 말리던 과메기를 ‘통마리’라고 하는데 그에 반해 ‘배지기’라고 하는 형태의 과메기가 요즘은 더 일반적이다. 바뀐 건조 환경과 편의에 맞춰 발달한 것으로 보이는데, 생선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반으로 포를 뜨면서 잔뼈까지 걷어냈다. 다름이 아니라 빨리 마르고, 먹기도 편하게 한 것이다.

 

청어는 껍질이 겉에 오게, 꽁치는 살이 겉에 오게 뒤집어 말린다. 칼이 몇 번 거치는가에 따라 ‘두발걸이’ ‘네발걸이’로 또 나뉘는데 우리 같은 도시 사람들은 네 번의 칼질로 못 먹을 것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네발걸이’가 먹기 편하다. 

 

20년여 전 등장한 배지기는 어느 어선에서 배 가른 꽁치를 무심코 갑판에 던져놨다가 먹었더니 맛이 좋아 우연히 발명됐다는 설, 한 과메기 생산자가 과메기 먹을 줄 모르는 외지 사람들을 위해 개발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올 겨울도 역시나 갯바위수산에서 과메기를 올려 먹었다. 나름의 연말 파티였던 셈이다. 완전히 손질되어 각종 쌈채소와 양념 일습이 한 데 오는 ‘야채세트’ 같은 것도 편리하지만, 더 맛나게 먹자면 껍질 안 깐 것을 주문해 그 자리에서 다 같이 도란도란 껍질을 까고 손으로 박박 찢어 먹는 것이 낫다.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칼이나 가위로 뚝뚝 자르면 편하지만 굳이 손으로 찢는 것은 입 안에 기름이 잘 배어나오고 훨씬 식감도 좋아서다. 또 먹보들이 둘러앉아 기세 좋게 몇 마리씩이나 과메기를 먹다 보니 누군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역시 과메기 아는 사람은 청어만 먹지.” ‘또 시작이야?’라고 생각하자마자 누군가 받는다. “과메기 드실 줄 모르네. 꽁치가 더 맛이 깊은데?” 

 

지겹다. 덧없다. 너도 옳고, 너도 옳다. 그저 다를 뿐이다. 차이는 우열이 아니다. 입맛 따라 청어가 좋으면 청어대로, 기분따라 꽁치가 좋을 때는 꽁치대로 골라 먹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하나만 고를 수 없을 때는? 그냥 둘 다 드세요. 그래봐야 과메기, 그거 얼마나 한다고.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칼럼,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2018년 1월 8일부터 ‘비즈한국’에 연재하는 ‘탐식다반사’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식당부터 술집과 카페, 제철 식재료까지 폭넓게 음식 이야기를 해나가며 독자의 식욕을 돋울 셈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다.  

이해림 푸드 라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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