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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전, 기술 감추고 밀양송전탑 공사 강행?" 핵심 문건 입수

밀양탑 대책위, 한전 감사 청구…한전 "일괄형은 4000A가 한계" 해명

2018.03.08(Thu) 19:33:35

[비즈한국]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밀양 송전탑 설치 공사가 애당초 필요 없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된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정황이 담긴 핵심 문건을 ‘비즈한국’​이 단독 입수했다.

 

한국전력은 2013년 밀양송전탑 전문가 협의체에서 “새 송전탑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기술이 있다”는 의견에 대해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이라고 일축하며 예정대로 공사를 강행했다. 하지만 ‘비즈한국’이 최근 입수한 ‘한국전력 GIS 표준구매규격서’를 보면, 한전이 상용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기술이 명시돼 있다. 표준구매규격서는 기술이 존재하고 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작성된다. 이 문서는 정부와 공기업 등이 입찰공고를 내는 과정에서 함께 공개된다.

 

2014년 완공된 밀양 126번 송전탑. 사진=연합뉴스

 

# “우회하면 송전탑 필요 없다” VS “기술 상용화 안돼 불가능”

 

밀양송전탑 설치는 2000년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내륙으로 보내기 위해 2008년 8월부터 밀양 5개면 30개 마을에 걸쳐 69기의 송전탑을 세우는 공사를 계획한 것. 당연히 밀양 주민들은 극렬 반발했다.

 

급기야 2013년 5월 밀양송전탑 공사가 강행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행했다. 갈등 조정 및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같은 해 6월 밀양 전문가협의체가 국회 산업통상위 위임으로 40일간 운영됐다.

 

당시 협의체의 주요 쟁점은 신양산변전소에 설치돼 있던 ‘8000A급 3상일괄형 가스절연개폐장치(GIS)’를 교체해 새 송전탑을 건설하지 않고도 신양산변전소의 증설이 가능한지 여부였다. GIS는 변압기를 조정하는 장치로, 변압기가 자동차의 구동장치라면 GIS는 제동장치다. 

 

당시 주민 측과 야당 추천위원들은 "GIS를 교체하면 밀양 송전탑을 세우지 않고도 기존 고리단지에서 연결된 3개의 선로로 신고리 3~4호기의 전력을 우회해 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 측은 국내 한 업체가 이에 필요한 GIS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음을 근거로 제시하고 “8000A급 3상 일괄형 GIS를 설치하면 변전소 신규 증설 없이 용량을 늘릴 수 있다”며 구체적인 제품도 공개했다.  

 

반면 한전은 “관련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며 주민 측 주장을 일축했다. 밀양송전탑 전문가협의체 3차 회의 속기록을 보면, 당시 한전 측은 “국내엔 3상 일괄형 GIS 제작 기술이 없고 실제로도 3상 일괄형 GIS를 생산하지 않는다”며 “세계적으로도 8000A급 3상 일괄형 GIS는 개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전은 또 “변전소를 증설하더라도 부지가 없어 비용이 최대 8년간 575억 원이 더 필요해 밀양송전탑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송전탑 공사는 한전 측 의견에 따라 예정대로 진행됐다. 

 

협의체 당시 한전 측 주장. "8000A급 3상 일괄형 GIS 제작 기술 없음"이라고 명시돼 있다. 사진=밀양대책위원회

 

# 한전이 작성한 규격서에 쟁점 부각된 GIS가 명시 

 

그런데 ‘비즈한국’이 최근 입수한 ‘72.5kV 이상 가스절연개폐장치(GIS)의 한국전력 표준구매규격서’를 보면, 한전 측이 상용화 되지 않았다는 기술이 명시돼 있다. 한전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정격전압 72.5kV 이상인 주파수 60Hz의 3상 교류회로에서 사용하는 모든 GIS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이 규격서는 2013년 협의체는 물론, 다른 밀양송전탑 관련 논의 등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규격서 곳곳에는 ‘8000A급 3상 일괄형 GIS’에 대한 설명이 발견된다. 앞서의 밀양 협의체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특정 기술의 규격이다. ‘GIS 정격 표준치’ 표에서는 362kV, 63kA, 8000A 등이 명시돼 있다. 일괄형이 정확히 기재된 부분도 있다. ‘제품 구조’ 규격을 보면, “3상 분리형 또는 ‘일괄형’을 표준으로 하고, 별도로 지정하지 않는 한 제작자의 표준에 따른다”고 나와 있다. 

 

이러한 규격서는 일종의 구매 시방서다. 기술이 존재하고 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규격을 표준화해 작성하는 문서다. 모든 GIS 구매사업 입찰공고에 함께 공개된다. 구매사업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입찰공고와 표준규격서를 토대로 납품 제품과 견적 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규격서의 존재는 한전이 2013년 협의체에서 “제작 기술이 없고 개발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전에서 작성된 '한국전력 GIS 표준 구매 규격서'. 8000A급 3상 일괄형 GIS 규격이 명시돼 있다. 2013년 협의체 당시 제작 기술이 없다는 한전 측 주장과 배치된다.

 

업계에서도 당시 한전 주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밀양송전탑 설치 공사 이전부터 규격이 표준화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한 중공업 관계자는 “3상 일괄형 GIS의 원천 기술은 국내 특정 업체에만 있는 게 아니다. 30년 전 국내 원자력 발전소 초기 도입 때 미국 ‘웨스팅하우스’ 제품을 들여와 ‘패키지’ 형태로 설치됐다”며 “이후 핵심 기술인 ‘3상 일괄형 GIS’를 웨스팅하우스에 특허 사용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다. (협의체 논의가 있었던) 2013년에 기술 상용화가 안됐다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지금 한전에서 사용되는 규격서가 맞다”면서도 “다만 밀양송전탑 협의체에서 논의된 8000A GIS의 경우, 생산이 가능한 국내 제작사들은 ‘분리형’으로만 생산하고 있다. ‘일괄형’은 4000A까지만 생산한다. 분리형으로 제작할지, 일괄형으로 제작할지는 제작사가 판단할 일이지만 협의체 당시에도 앞서의 방식으로 상용화됐고, 지금도 그렇다. 8000A급 일괄형은 해외에서도 제작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 진실공방 2라운드 접어들까

 

밀양 송전탑 설치 논란은 진실공방으로 번질 전망이다. ‘밀양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가 한전이 밀양송전탑 건설공사 과정에서 허위자료를 제출해 공사를 강행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밀양대책위원회와 주민들은 지난 3월 7일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감사원에 밀양송전탑 공사 관련 공익감사 22건을  청구했다. 사진=밀양대책위원회

 

대책위는 지난 3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협의체 쟁점으로 부각될 당시 몇몇 업체가 8000A급 GIS를 납품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며 “(협의체 당시에는) 한전의 주장을 짧은 기간에 반박할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소수의 전문가만 알고 있는 정보인데다 협의체에는 업체 관계자, 실무자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추가정보 접근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밀양 송전탑 논란 당시 한수원에 GIS를 납품한 기업의 실무자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2011년 1월에 한수원과 영광 1,2 호기에 362kV 8000A 일괄형 GIS 교체 공사를 직접 수의계약 했고, 2011년 10월 말 준공됐다. 지금도 설치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전의 “국내 업체들은 8000A급 GIS는 분리형으로만 제작한다”는 해명과 배치된다.

 

해당 관계자는 또 “협의체 당시 GIS 기술개발과 설계제작, 납품할 수 있었던 업체는 현대중공업, 효성, LS산전, 일진전기 등 4곳이나 있었지만 협의체에 관계자들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협의체 존재를 알았다면 각 업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왔을 것”이라며 “한전이 기존 송전선로를 이용해 우회 송전 방식을 도입하고, 신양산 변전소를 확장형으로 개조하는 방안을 채택했다면 최소 6000억 원에 달하는 신규 송전철탑 설치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3상 일괄형 8000A 급으로 확장하는데 드는 비용은 최대 600억 원이다”라고 덧붙였다.

 

밀양대책위원회와 주민들은 감사원에 밀양송전탑 공사 관련 공익감사 22건을 청구했다. 이계삼 대책위 사무국장은 “감사원의 감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면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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