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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음식물 반입금지 6개월, 서울 시내버스 안에서 생긴 일

4월 2일 세부 가이드라인 배포…최종판단은 운전기사 몫이지만 "교육 받은 적 없어"

2018.08.10(Fri) 11:31:08

[비즈한국] 40℃ 폭염에 검은 옷은 금물이다. 주위에서 “더워 보인다”는 꾸중 아닌 꾸중을 듣기 마련. 하얀 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버스 안, 누군가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쏟는다면 어떨까. 고의가 아닌 실수인 걸 알지만 속이 부글거린다. 언쟁이 오가면 버스 안 승객은 물론 운전자까지 곤란해지는 상황.

 

버스 내 음식물을 쏟아 승객 간에 분쟁이 발생하자 서울시는 지난 1월부터 조례를 개정해 음식물 반입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서울시는 이 같은 문제로 승객 간 분쟁이 끊이지 않자 지난 1월 4일 ‘시내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 운행기준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버스 내 음식물 반입을 제한했다. 이후 ‘반입 가능한 음식물’ 기준이 모호해 승객과 운전기사 사이에 다툼이 잦자 서울시는 지난 4월 2일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했다. 여전히 판단은 운전기사 재량에 맡겨져 승객과 껄끄러운 상황이 발생하는 한편 승객이 무단으로 버린 쓰레기가 정류장에 쌓이자 불편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가 규정한 버스에 가지고 탈 수 없는 음식물은 ‘가벼운 충격으로 내용물이 밖으로 흐르는 것 또는 포장되어 있지 않아 차 내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테이크아웃 커피’와 같은 일회용 용기에 담긴 음료나 음식물은 반입 금지다. 컵에 담겨 바로 먹을 수 있는 치킨이나 떡볶이도 안 된다. 뚜껑이 없거나 빨대가 꽂힌 캔·플라스틱도 들고 탈 수 없다. 운전자는 규정을 어긴 승객을 하차시킬 수 있다.

 

서울시가 마련한 시내버스 내 반입금지 음식물 세부 가이드라인.

 

음식물이라고 모두 반입이 금지된 건 아니다. 같은 치킨이지만 종이상자 등에 포장돼 음식물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으면 들고 탈 수 있다. 피자도 마찬가지다. 캔 음료도 따지 않은 상태면 상관없다. 뚜껑이 있는 텀블러에 담긴 음식물도 괜찮다. 냄새와도 무관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채소, 어류, 육류 등 식재료는 반입할 수 있다. 용기에 담긴 김치도 괜찮다.

 

서울시 교통정책과 주무관은 “쉽게 말해 부딪히거나 떨어트려서 튀거나 묻는 건 안 된다. 승객 간 분쟁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조례라는 걸 생각하면 된다”며 “버스 내에서 못 먹게 하니까 바뀌면 바뀐 대로 불편하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평소 20여 분 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는 고등학생 이유미 양(17)​은 “아침에 시간이 없어서 버스에서 간단하게 먹곤 했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되니까 좀 불편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조례가 시행된 후 음식물을 들고 타는 승객은 줄어든 듯 보였다. 471번 버스를 타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정류장에서 은평구 진관동 ‘진관공영차고지’까지 1시간여 지켜봤지만 반입 금지 음식물을 들고 타는 승객은 없었다.

 

시내버스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 뒤 먹던 음료를 버리고 타는 승객이 늘면서 정류장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민원이 제기되자 서울시는 정류장 쓰레기통 비치를 검토 중이다. 사진=박현광 기자

 

다만 손에 들고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 때문에 승차를 거부당한 승객이 정류장에 쓰레기를 버리고 버스에 타기도 했다. 승객은 “들고 타면 안 되는 걸 몰랐는데 급하다 보니까 놓고 탔다”며 “정류장에 쓰레기통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버스정류장에 비치된 쓰레기통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시내버스 내 쓰레기통 비치는 70%가량 완료됐다.

 

서울시가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버스 운전기사의 고충은 여전하다. 법적인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승객 승차거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버스 운전자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교육도 이뤄지지 않아 기준은 들쭉날쭉하다. 

 

서울운수에서 14년째 버스를 운전하는 양운성 씨는 “확실히 음식물 들고 타는 승객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효력을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승객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말 잘못했다가 승객이 민원을 넣으면 인사고과에 반영되고 성과급에 영향을 미치니까 껄끄럽다”며 “운전자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도록 ​서울시 차원에서 정류장에 음식물 반입금지 홍보를 하고 차내 안내 TV를 활용해서 광고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70%가량 시내버스가 차내 쓰레기통을 비치했다. 그러나 크기가 작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어 양 씨는 “아직 기준을 명확히 모른다. 따로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 봐서 재량껏 한다”며 “승객분들도 더우면 시원한 걸 마시고 싶을 거라 생각되어 모질게는 못한다”고 덧붙였다.

 

고홍석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일부 승객이 쏟아지기 쉬운 음료 등을 들고 버스에 타서 주변 승객을 내내 불안하게 만들거나 운전자나 다른 승객과 다툼도 종종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제도 시행 초기라 어려움은 있지만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시민들의 협조를 구함으로써 모두 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로 들어오는 경기도 버스는 서울시의 ‘음식물 반입금지’ 조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버스에 음식물을 들고 타도 제지하지 않는다. 지하철과 고속버스의 경우 차내 음식물을 규제하진 않지만 캠페인을 통해 줄여나갈 계획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서울 시내버스처럼 조례 같은 문서화를 통해 음식물 반입을 막진 않을 것”이라며 “캠페인 광고를 만들어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설치된 TV에 띄우는 등 방법으로 음식물 반입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가까운 대만, 싱가포르는 대중교통 내 음식물 반입을 법적으로 금지한다. 싱가포르 관광청 관계자는 “도시철도가 운행하기 시작한 1987년부터 음식물 섭취 금지 법률이 시행됐다. 물을 포함한 음식물을 섭취할 경우 최대 500싱가포르달러를 벌금으로 부과한다. 시내버스에서는 벌금을 부과하진 않지만 단속을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특별한 규제는 없지만 문화적으로 대중교통 내 음식물 섭취를 지양한다. 일본 관광청 관계자는 “별다른 규정은 없다. 우리나라 KTX에 해당하는 신칸센에선 음식물 섭취가 허용되지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음식물을 먹는 시민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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