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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영리병원 생기면 공공의료 붕괴"

21일 청와대 앞 삭발 투쟁 예고…"수익 경쟁으로 의료비 폭등할 것, 녹지병원 철회해야"

2019.01.18(Fri) 17:41:48

[비즈한국] “어떤 손가락을 봉합해 드릴까요?” 손가락 두 개가 잘린 환자에게 의사가 묻는다. 의료보험 가입이 안 돼 있어 한 손가락만 봉합할 수 있기 때문. 미국 의료보험 체계를 비판한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환자의 생명이나 권리보다는 영리 목적에만 치중하는 미국의 영리병원 중심 의료체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실제 미국의 영리병원들은 민간보험회사와 제휴를 맺어 그 보험회사의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만 진료해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그렇다”고 답한다. 나 위원장은 우리나라에 영리병원이 개원되면 미국과 같은 현상이 삽시간에 현실화할 것으로 본다. 이윤 배당을 목적으로 영리법인이 설립한 영리병원이 수익 경쟁을 불러와 의료비가 폭등하고, 결국 다른 민간병원들도 영리병원으로 전향하려고 하면서 한국의 공공의료체계가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싸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의 반발은 여전히 상당하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곧 청와대 앞에서 삭발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임준선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영리병원인 제주의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둘러싼 논쟁은 오래됐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돼 2017년 7월 병원이 준공됐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지난해 4월 공론화조사위원회가 설립됐고, 공론화위원회는 6개월의 숙의 기간을 거친 끝에 ‘개설불허’ 권고를 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5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내국인 진료 금지를 조건으로 ​녹지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권고안은 존중하지만 경제성장이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현재 녹지병원은 ​3월 4일 이전에 개원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의료기관 개설 허가 후 3개월 안에 업무 개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개설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녹지병원을 둘러싼 반발은 여전히 극심하다. 보건의료노조는 2019년을 ‘영리병원 저지 투쟁의 해’로 설정하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16일에는 99개 의료·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한 ‘제주 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했다. 다음 주 월요일(21일) 청와대 앞에서 삭발 투쟁을 예고한 나순자 위원장을 18일 서울시 영등포구에 있는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Q. 제주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는?

A.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비가 폭등할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제도가 잘돼 있기로 유명하다. ‘건강보험당연지정제’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어디를 가든 적정한 가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영리병원은 건강보험당연지정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병원이) 마음대로 가격을 정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영리병원은 재벌이나 돈 있는 기관이 투자하는 주식회사다. 비영리병원은 법적으로 병원 외부의 사람에게 이윤을 배분하는 게 금지돼 있지만, 영리병원은 그렇지 않다.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더 배당하기 위해 영리병원은 이윤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돈벌이를 위해 진료비를 높이고 과잉 진료를 할 것이다.

 

Q. 의료 양극화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

A. 그렇다. 영리병원이 생겨나면 미국처럼 국민건강보험을 민간보험이 대체하게 된다. 영리병원의 의료비가 높으니 민간보험회사가 환자들을 겨냥해 상품을 내놓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영리병원 얘기가 나오는 것도, 대기업 보험회사가 이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민간의료보험으로 갈아타게 되고 건강보험 체계는 위축된다. 그렇게 되면 부자들은 민간의료보험으로 이동해 비싼 병원에 갈 것이고, 건강보험 재정이 줄어드니 의료 양극화가 굉장히 심각해진다. 결국 건강보험에 의존해야 하는 서민들은 시설이 낙후된 병원에 가게 된다. 영리병원이 실력 있는 의사들을 데려가면 환자 쏠림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Q. 제주에 영리병원이 하나 설립된다고 우리나라 공공의료 체계가 아예 무너질까.

A. 제주 녹지병원이 시작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리병원 설립이 도미노처럼 추진될 거다. 이미 인천, 황해 등 경제자유구역 8곳에서는 영리병원 개설이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이 지역의 다른 병원들도 영리병원과 경쟁해야 하니 영리병원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할 거다. ‘생존’을 위해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려 드는 것이다. 실제로 병원협회가 협회 소속 병원들에 ‘영리병원 허용되면 할 거냐’고 물어봤더니, 80% 이상이 ‘영리병원 하겠다’고 답했다.

 

나 위원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이 문을 열면 그 여파로 한국의 공공의료 체계가 붕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임준선 기자


Q. 제주 녹지병원에서는 인력운영계획을 발표하면서 134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만약 병원 개원이 철회되면 채용이 결정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A. 이미 134명 중 70명 정도가 사직했다. 이 사람들은 다른 병원에 가도 된다. 이에 반해 영리병원 설립은 전 국민에 영향을 끼친다. 미국에 영리병원 하나가 허용된 이후부터 영리병원이 전체 20% 비중으로 늘어나 의료 체계를 망가뜨리는 데 20년밖에 안 걸렸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속도가 빠르니 10년도 안 걸릴 것이다.

 

Q. 의료산업 활성화를 위해 영리병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도 여러 규제 탓에 해외보다 의료 분야의 경쟁력 밀린다는 말이 나오지 않나.

A. 기본적으로 의료를 상품으로 보면 안 된다. 굳이 영리병원으로 의료산업을 키워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정부가 공공의료에 지원을 확대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의료에서 질 높은 의료기기를 들이면, 국민이 ‘공공의료기관이 저런데 민간기관은 왜 그렇지 않냐’고 반발할 테고, 그러면 민간기관도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려 노력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가 낙후됐다고 인식되는 게 당연하다. 정부가 투자를 안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공공병원 수는 전체 병원 중 5.8%, 병상 수는 9.6%밖에 안 된다.

 

Q.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A. 현 정권에서 별다른 말이 없어서 아쉽다. 이번 영리병원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우선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공론화조사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했지 않나. 제주도민 70%가 반대했다. 또 녹지국제병원 투자자인 녹지그룹은 의료기관 운영 경험이 없다. 제주도 조례의 ‘영리병원 개설 허가 조건’을 보면 영리병원을 하려고 하는 회사는 유사사업에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녹지그룹은 부동산회사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서야 한다고 본다. 다음 주 청와대 앞에서 삭발 투쟁을 통해 의견을 표출할 것이다.​ 녹지병원 허가가 철회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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