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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소비자, 생산자 모두 피해자로 만드는 '레몬시장'

판매자, 구매자 간 불신 쌓이면 '좋고 비싼' 물건 사라지고 '나쁘고 싼' 물건만 넘쳐나

2019.02.05(Tue) 14:13:18

[비즈한국] 신뢰는 경제활동의 근간을 이룬다. 신뢰 덕분에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신뢰가 없는 거래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불러온다. 영화 속 범죄조직 간의 거래가 신뢰가 없는 거래의 예다. 상대방이 배신할 경우를 대비해 무력과 보호 수단을 동원한다. 모든 거래가 불신 상황에서 이뤄진다면 경제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범죄조직 간의 거래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소비자와 판매자간의 불신은 골이 제법 깊다. 시기마다 아이템을 달리하여 벌어지는 원가 논란은 소비시장의 불신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준다. 낮은 신뢰는 시장과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중고차시장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소비자와 판매자 간의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불신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의 연구는 불신의 부정적 영향을 잘 보여준다.

 

애커로프는 197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고차시장의 사례를 연구했다. 중고차는 판매자는 차의 이력을 잘 알지만 구매자는 상세한 이력을 알 수 없다. 구매자들이 보기에 모든 중고차들은 겉으로 비슷해 보이므로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을 무조건 깎으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잘 관리한 차를 헐값에 인수하려는 구매자의 조건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판매자가 좋은 매물은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보니 시장에는 저품질의 중고차만 남는다. 구매자에겐 저품질의 중고차를 얼마나 싸게 구입하냐의 차이 밖에 남지 않는다. 애커로프는 이런 중고차 시장을 일컬어 ‘레몬시장’으로 이름 붙였다.

 

‘호황 vs 불황’의 저자인 군터 뒤크는 애커로프의 레몬시장 이론을 응용해 소비자의 불신이 시장 전체를 레몬시장화한다고 이야기한다. 소비자들의 품질에 대한 이해가 낮고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가격을 상품 평가의 단일 요소로 판단하기에 가격을 깎고 인상을 통제하며 유료서비스의 무료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불신상황에서 소비자는 생산자를 자신의 주머니를 노리는 존재로 인식하기에 이들을 최대한 쥐어짜는 방향으로 대처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시장에서 소비자와 판매자(생산자)는 모두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저렴하지 않으면 자신을 착취하는 것이라 여기고, 가격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선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이 선택의 우위에 놓이기에 고급을 증명할 수 있지 않는 한 중품질 상품들은 시장에서 내몰릴 수밖에 없다.

 

현명한 소비를 하겠다는 소비자의 행동이 적당한 가격에 좋은 상품을 만들던 생산자를 시장에서 내몰고, 저품질 상품만 범람하는 결과를 만든다. 저품질 상품이 시장에 범람하면 가격을 바꿀 수 없으나 나름 차별화를 위해 온갖 수식어와 모호한 표현, 사실과 다른 내용 등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것이 단기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불신을 자극해 시장은 더욱 ‘레몬화’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2000년대 이후 소비시장의 흐름을 보면 우리가 이런 악순환에 빠져있지 않다 부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어떤 때는 미디어가, 어떤 때는 소비자가, 혹은 생산자나 판매자가 불신을 부추기는 메시지를 만들고 전파해왔다. 사실인 적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 사실과 거리가 있었고, 때로 마케팅을 위해 불신을 조장한 케이스도 있었다. 그것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소비자들의 가격에 대한 저항과 불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저수익성의 상황은 시장 참여자의 치킨게임이 만들어낸 결과라 볼 수 있다. 앞으로 시장 참여자 모두가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것에 지갑을 열며 돈을 쓰길 원한다. 불신을 부추기는 것은 그와 반대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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