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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거래상 분쟁에서 무조건 소송이 답은 아닌 이유

계약조건 불리하거나 대기업 상대는 낮은 승산…정부 신고제도 활용도 방법

2020.03.30(Mon) 10:39:21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아두면 모 있는즈니스 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거래상 분쟁이 발생하면 법적 조치를 생각하게 된다. 구체적인 수단으로는 △형사고소 △​민사소송 △​행정상 민원제기 등이 있다. 과연 어느 방안이 효율적일까.

 

우선 분쟁이 거래에서 발생했다면 형사고소를 해결수단으로 추천하기 어렵다. 사기·횡령·​배임 등 재산죄는 구성요건 중 하나인 고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형사처벌을 끌어 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의 경우는 사안마다 다르다. 일단 민사소송은 사적 분쟁의 기본적인 구제수단이 되므로 소 제기 여부를 먼저 검토하게 된다. 그러나 △계약조건이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정해진 경우 △​상대방이 대기업일 때는 민사소송으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해지사유가 불합리·불공정하다고 하더라도, 그 조건이 계약서에 명시된 이상 민사소송에서 이를 무시하고 해지의 무효와 위법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권리남용이나 신의칙 위반 등을 이유로 해당 조항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법원은 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을 무효로 돌리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해지사유가 불합리·불공정하다고 하더라도, 그 조건이 계약서에 명시된 이상 민사소송에서 이를 무시하고 해지의 무효와 위법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이는 우리나라 법 제도가 판례의 법원성을 부정하는 성문법주의를 따르고 있어서 적극적인 해석을 주저하는 면이 있어서 그렇다. 학설상으로도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나 ‘권리남용의 남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계약조항과 달리 해석하는 데 비판적인 것.

 

천신만고 끝에 재판에서 상대방의 귀책을 인정받더라도 정작 손해배상금은 얼마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 입은 손해 이상으로 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실손해 배상’의 원칙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법리인 탓이다. 법원은 이러한 도그마를 전제로 손해액을 산정하는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고, 과실상계 등을 이유로 손해액의 일정 부분을 감액한다.

 

상대방이 대기업인 경우 소 제기 자체를 권하기가 어렵다. 대기업은 법무부서가 따로 존재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상시 문서화하고 있어서 관련 증거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증인에 영향력을 행사해 유리한 증언을 얻을 수 있고 자력도 충분하다. 때문에 항소와 상고 등을 통해 소송절차를 연장하더라도 부담이 따르지 않는다. 소송은 돈과 시간의 싸움이다.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소송은 가시밭길이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집행신청과 독촉사건 등을 제외한 민사 본안사건은 2008년 131만 건에서 2017년에는 109만 건으로 10년 만에 22만 건이 줄었다. 세상일이 복잡해지고, 당사자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졌음에도 사건 수가 감소한 결과는 절차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됐다고 풀이할 수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이 2019년 9월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 피해 관련 계약 취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소장을 접수하기 전 성명서를 읽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임준선 기자


행정상 민원제기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관(官)에 대한 기대가 높아서인지 정부 부처에 민원을 제기하는 여러 제도를 뒀다. 가령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공정거래법령 위반행위에 대한 신고제도를 운용한다. 이와 유사한 제도로 중소벤처기업부의 불공정거래 신고제도·​특허청의 산업재산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 신고제도·​국민권익위원회의 공익신고 제도 등이 있다.

 

위와 같은 제도에 따르면 정부 부처는 고권적인 지위에서 상대방을 조사하고 처분을 내리게 된다. 증거 수집의 부담이 덜하고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정부 부처 조사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신고인의 입장에서 효율적인 셈이다. 

 

다만 정부 부처의 조사제도는 답답할 때가 있다. 선례가 많지 않아 처분의 기준을 확인하기 어렵고, 정부 부처 특유의 폐쇄성으로 사안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데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신고서 제출 이후 연락 한 번 없다가 몇 달 후 사건 종결 공문 한 장만 받고 끝나는 사례가 적잖다.

 

그런데 공정위 절차의 경우 다수 사건을 통해 처분의 기준이 정립되어 있고 언론 노출이 잦은 편이어서 이용의 문턱이 낮은 면이 있다. 특히 이번 정권 초기 공정위가 갑을관계 시정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면서 국민 기대감도 대폭 늘어났다. 2017년 하반기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32% 증가한 4만 1894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행정상 민원제기는 증거 수집의 부담이 덜하고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정부 부처 조사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신고인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제도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당장의 거래에서 상대방의 위법성을 확인받는 점이 중요하다.


학계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판적이다. 민원이 과도하게 집중돼 사건처리가 지연되고 있으며, 사적 분쟁에 개입하느라 더 중요한 ‘직권인지 사건(주로 경쟁 제한성을 판단하는 사건)’이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경쟁 제한성 판단이라는 현학적인 주제보다는 당장의 거래에서 상대방의 위법성을 확인받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신고사건에 대한 처분결과는 정부부처에 대한 신뢰와도 직결된다.

 

직권인지 사건이 신고사건보다 더 중요하다는 표현에도 문제가 있다. 공정위 심사지침은 주로 신고사건으로 취급되는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에 대해 경제적 약자를 착취하는 행위로서 거래상대방의 자생적 발전기반을 저해하고 공정한 거래기반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규정한다. 때문에 신고사건이 직권인지 사건보다 경미하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물론 사업자도 객관적인 근거 없이 적당히 사실을 꾸며 신고해서는 안 된다. 정부 부처의 집행기관으로서의 특성을 고려해 정책적 목적과 선례 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공정위 신고 건수가 폭증한 것은 다른 정부 부처에 비해 관련 자료가 공개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절차가 투명하게 운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고 건으로 인해 공정위 업무가 증가한 것은 일종의 훈장과 같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신고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있다는 식으로 풀이하는 점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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