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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만 믿었다" 환자들 울리는 '먹튀 치과'는 현재진행형

피해자들 만나보니 고통 장기화…'제2의 투명치과'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구조

2020.04.08(Wed) 14:25:03

[비즈한국] 딸에게 조금이나마 저렴한 가격에 교정을 시켜주려다 헛된 고생을 시킨 것 같아 미안하다는 A 씨. 부모님이 지원해준 돈이기에 치과 먹튀 사태 이후에도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오다 이제는 자포자기 상태라는 B 씨. 교정 모델에 당첨돼 40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완납했지만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아 교정 장치를 떼지도 못한 채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는 C 씨. 비즈한국이 인터뷰한 ‘파행 진료’ 치과 피해자들은 “언제까지 환자가 불안해하며 치료를 받아야 하느냐”고 입을 모았다.

 

지난 3월 27일 비즈한국은 투명치과 대표원장이 이름과 장소를 바꿔 운영해오던 병원이 최근 소리소문없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와 환자들 사이에서 또다시 먹튀 의혹에 휩싸였다고 보고했다(관련기사 [단독] 100억 원대 치료비 먹튀 논란 투명치과, 또 '야반도주'?). 투명치과는 1만 명이 넘는 환자들로부터 고액의 선금을 받고 정상 진료를 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킨 병원이다. 보도 당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치과 먹튀 사건 없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습니다”는 청원이 올라왔고, 8일 기준 동의자 수는 3100명을 기록했다.

 

지난 3월 27일 비즈한국은 투명치과 대표원장이 이름과 장소를 바꿔 운영하던 병원이 최근 소리 소문 없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와 환자들 사이에서 또다시 먹튀 의혹에 휩싸였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서울 압구정 가로수길에 있던 투명치과의원. 사진=박정훈 기자


치과 먹튀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D 치과 원장이 사실상의 폐업 안내 문자를 남기고 잠적했다. 제보자 C 씨에 따르면 해당 병원 원장은 3월 말미에 예약이 잡혀 있던 소수 환자에게 “코로나 사태로 3주간 휴업한다”, “손해가 커져 운영이 어렵다”는 등의 문자를 보낸 후 연락이 끊겼다. 지금까지 병원 측의 별다른 공지는 없었고, 굳게 닫힌 병원 문에는 휴업 안내문만이 붙어 있다고 한다. 현재 C 씨 포함 수백 명에 이르는 환자가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비즈한국은 먹튀 논란이 불거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불필요하게’ 겪어야만 했던 이야기를 전한다. 치과에서 선납금을 받고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살펴봤다.

 

#3년 흘렀지만 고통은 여전…교정장치 한 채로 다른 병원 문 두드려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A 씨는 “딸을 투명치과에 보낸 장본인”이라며 먹먹한 감정을 표했다. A 씨는 300만 원에 교정을 할 수 있다는 투명치과의 이벤트에 이끌려 2017년 4월 치료비를 일시불 완납했지만 치료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A 씨는 “딸이 학교 끝나고 배를 쫄쫄 굶고 치과에 가서 5시간씩 기다려 겨우 ​치료를 ​받고 왔다. 두 번 정도 치료 받고는 아예 진료도 못 받았다”고 말했다. 교정을 위해 발치한 어금니 사이가 메워질 정도로 시간은 흘렀지만 교정에 진전이 없었고, 결국 A 씨 딸은 경기도 안양시의 한 치과에서 교정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3년이 흘렀지만 A 씨는 여전히 투명치과 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A 씨를 비롯한 피해자 66명은 현재 투명치과 원장을 상대로 집단 형사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고민이 많다.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가 투명장치교정과 달리 일반 교정장치에 대해서는 불기소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불기소 처분을 받은 피해자들은 곧바로 항고했으나 서울고등검찰청은 기각결정을 내렸고 피해자들은 3월 16일 법원에 재정신청을 넣었다.

 

A 씨는 “치과는 이벤트에 신청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외모를 중요시하면 투명장치, 그렇지 않으면 클리피씨를 선택하라’고 했다. 일반 교정장치의 경우도 똑같이 환자를 많이 받으면 적정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예상했을 것이기에 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용될 가능성은 적지만 피해를 본 게 분해 끝까지 힘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치과는 환자 유인책으로 이벤트를 내세우고 돈을 선납해야만 이벤트 가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환자를 설득한다. 문제는 수용 범위를 초과해 환자를 대량 모집한다는 점이다. 사진=투명치과 페이스북 캡처


B 씨의 경우는 투명치과가 지난해 7월 청담동 건물로 장소를 옮기고 상호를 바꿔 운영하던 E 치과를 마지막 희망으로 여겨온 대표적 사례다. 투명치과에서 클리피씨 교정을 진행 중이었지만 사태 이후 다른 치과에서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돈을 다시 지불하기도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투명치과 선납금 300만 원은 부모님이 지원해줬다. 그러나 B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치과를 다니기로 했다. B 씨는 “공지 없이 치과를 매물로 내놓았다는 건 정황상 이사라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며 “E 치과 역시 한 번 치료를 받으려면 5~6시간씩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정말 반포기 상태”라고 토로했다.

 

투명치과 사태 이후에도 ‘제2의 투명치과’는 나타났고 해당 병원 피해자들은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평소 턱관절이 좋지 않았던 C 씨는 ‘교정 모델을 모집한다’는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D 치과를 찾았다. 교정 모델은 교정 전후 사진만 찍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다만 치과에서는 교정·임플란트·​미백 비용 390만 원을 상담 당일 완납해야만 해당 가격에 치료할 수 있다고 했고, C 씨는 이를 따랐다. 그러나 3월 말 치과 원장은 잠적했고, C 씨는 교정 장치도 제거하지 못한 채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

 

#비행기에 억지로 탑승객 태우는 꼴…자율 징계권 강화돼야

 

병원에서 환자들을 울리는 먹튀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우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 행위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는 데 있다. 동네 병원 중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는 치과에서 환자를 모집하려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것. 의료전문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치료비를 낮추려면 치과 재료의 가격이 낮아야 한다. 그래서 대량으로 환자를 모집하고, 또 그만큼 많은 치과 재료를 주문해 단가를 낮추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것이 발단”이라고 지적했다.

 

치과는 환자 유인책으로 이벤트를 내세우고 돈을 선납해야만 이벤트 가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환자를 설득한다. 문제는 수용 범위를 초과해 환자를 대량 모집한다는 점이다. 적정 인원만을 탑승시켜야 하는 비행기에 억지로 승객을 집어넣은 셈인데 그러다 보니 치료의 질은 떨어진다. 궁지에 몰리는 병원은 영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데 이어 진료 정상화를 하겠다는 식으로 질질 끌다 돌연 폐업에 이르게 된다.

 

사기·​횡령·​배임·​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일반 형사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아도 의사 면허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임준선 기자


그러나 이처럼 진료비를 선납 받고 성실히 진료하지 않았다는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의사면허는 취소되지 않는다. 현행 의료법은 일부 형법이나 의료 법령 관련 법률 위반에 대해서만 면허 취소를 가능토록 했다. 사기·​횡령·​배임·​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일반 형사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아도 의사 면허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설령 면허 취소가 된다 해도 면허 재교부 금지 기간인 1~3년이 지나면 면허가 재교부될 수 있다. 깨지지 않는 철밥통 같은 의료인 면허의 맹점을 파고들어 언제든지 다시 문을 열고 똑같은 행위를 반복할 수 있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쉽지 않다. 현재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에는 치과의사가 동료 치과의사의 부도덕한 진료 행위를 직접 평가하는 ‘자율징계권’이 없다. 자율징계권 도입을 위해 치협과 보건복지부가 2019년 4월부터 실시한 전문가 평가제 시범사업은 아직 울산과 광주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구강정책과 관계자는 “과당경쟁이 있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사업이 진행되면 좋겠지만 정부가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 또 1년간 성과가 미미해 자율징계권 부여 방안도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고 설명했다. 김형성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정책위원은 “치협에서도 신고접수를 통해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협회 차원의 자율 징계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소비자 스스로가 주의를 기울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김경례 한국소비자원 의료팀장은 “병원이 문을 닫거나 원장이 잠적하면 진료기록이나 차트, 영수증을 구하기 힘들어 피해를 구제받기도 쉽지 않다”며 “이벤트에 쉽게 현혹되지 않고 선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료 중 폐업으로부터 환자가 지속적인 진료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인 진료보증제도를 실시하는 치과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그러나 먹튀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의료인이 환자를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을 믿고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치료를 받고 싶었던 게 잘못이냐”는 환자들의 공허한 메아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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