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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의림지 둘레길 따라, 배론성지 실개천 따라 '제천 역사 산책'

가장 오래된 농업용 저수지로 지금도 이용…신유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 피신한 배론성지

2023.05.30(Tue) 15:41:58

[비즈한국] 한국사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공 호수가 있다. 삼한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용 저수지로 손꼽히는데, 여전히 관개 농업에 이용되는 것은 의림지가 유일하다. 지금은 호수 주변으로 아름다운 둘레길까지 조성되어,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도 즐겁다. 

 

삼한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용 저수지로 손꼽히는데, 여전히 관개 농업에 이용되는 것은 의림지가 유일하다. 사진=구완회 제공

 

#2000년 동안 농업용수 공급, 의림지

 

제천 용두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을 막아 조성한 의림지는 무려 2000 년쯤 전에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다. 삼국시대보다 앞서는 ‘삼한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왔는데, 2009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제방 안쪽에서 시추한 시료를 분석한 결과 약 2000년 전부터 저수지 형태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자료가 많지 않은 우리 고대사에 중요한 사료가 추가된 셈이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의림지는 예로부터 유서 깊은 명승지로 손꼽혔다. 제천의 옛이름인 내토, 대제, 내제 등은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림지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서울, 경기 지방을 일컫는 기호와 충청권을 가리키는 호서, 전라도 지방을 뜻하는 호남 등도 의림지를 중심으로 방향을 덧붙인 이름들이다. 

 

의림지 주변에는 수령 수백 년이 넘는 소나무와 수양버들이 숲을 이루는 가운데 조선 순조 때 세웠다는 영호정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호수 주변에는 수령 수백 년이 넘는 소나무와 수양버들이 숲을 이루는 가운데 조선 순조 때 세웠다는 영호정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다. 덕분에 의림지는 ‘제천 10경’ 중 당당하게 제1경을 차지했다. 원래는 농업용 도로였던 둑방길에 ‘삼한의 초록길’이란 이름을 붙이고 걷기 좋은 산책길로 만들었다. 한쪽에는 인공폭포가 조성되어 있고, 그 위쪽에로 10m 넘는 높이에서 시원한 물이 떨어지는 용추폭포도 자리잡았다. 용추폭포에는 아찔한 바닥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유리 전망대도 있어서 짜릿한 스릴을 즐길 수도 있다. 

 

원래는 농업용 도로였던 둑방길에 ‘삼한의 초록길’이란 이름을 붙이고 걷기 좋은 산책길로 만들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의림지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이웃한 의림지역사박물관을 추천한다. 이곳에선 고대 인공 저수지인 의림지의 역사와 구조뿐 아니라 관개방법, 주변 생태 등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거대한 제방을 닮은 독특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개 동영상을 시작으로 ‘시간의 함’, ‘역사의 함’, ‘문화의 함’, ‘생명의 함’ 등 주제별로 전시실이 이어진다. 

 

#배론성지에서 살펴보는 격동의 근대사

 

의림지에서 차로 20분쯤 걸리는 배론성지는 천주교 성지이자, 격동의 우리 근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원래 19세기 전후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교인들이 숨어들어온 마을이었다. ‘배론’이란 마을 지형이 배의 밑창을 닮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 입구가 좁고 경사가 있어서 밖에서는 마을 안쪽이 잘 보이지 않고,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원주, 충주 등 주변의 도시로 연결되는 산길이 많은 것도 은신처로 좋은 조건이었다. 

 

배론성지의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최양업 신부는 김대건의 뒤를 이어 조선에서 두 번째로 신부 서품을 받은 이로, 선교를 위해 서울로 가던 중 이곳에서 병사했단다. 사진=구완회 제공

 

정조가 죽은 이듬해(1801년), 천주교 신자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이곳으로 피신한 황사영이 토굴에 들어가서 로마교황청에 보내는 백서(비단에 쓴 글)를 썼다. 황사영은 무려 11만 자가 넘는 백서를 통해 조선에서의 천주교 백해 상황을 알리고 교황청의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이 백서는 미처 조선을 떠나기도 전에 발각되었고, ‘외세를 끌어들이려고 한 대역죄’로 황사영을 비롯한 관련자들은 처형당하고 말았다. 현재 백서의 원본은 로마교황청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배론성지에는 복원된 황사영 토굴을 비롯해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소,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성요셉신학당 등을 볼 수 있다. 최양업 신부는 김대건의 뒤를 이어 조선에서 두 번째로 신부 서품을 받은 이로, 선교를 위해 서울로 가던 중 이곳에서 병사했단다. 초가집으로 복원된 성요셉신학당 옆에는 천주교 원주교구의 피정시설인 성모마리아 기도학교가 보인다. 배론성지를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도 한가롭게 걸을 만하다. 

 

황사영 토굴 가는 길. 천주교 신자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이곳으로 피신한 황사영이 토굴에 들어가서 로마교황청에 보내는 백서(비단에 쓴 글)를 썼다. 사진=구완회 제공

 

배론성지 무명순교자묘.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정보>

 

의림지

△위치: 충북 제천시 모산동 241

△문의: 041-651-7101

△운영시간: 상시, 연중무휴(의림지역사박물관은 09:00~18:00, 월요일·1월 1일·명절 휴관)

 

배론성지

△위치: 충북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문의: 041-651-4527

△운영시간: 상시,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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