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현장] 애플의 원 모어 띵 '비전 프로'에 비친 컴퓨팅의 미래

전방 투명하게 비치는 고글 형태 AR+VR…가격 3499달러·콘텐츠 수급이 관건

2023.06.06(Tue) 10:09:28

[비즈한국] 오랜만에 애플 이벤트에 ‘원 모어 띵(One more Thing)이 등장했습니다. 애플의 첫 공간 컴퓨터 비전 프로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소문이 돌았고, 최근 구체화되었던 가상현실, 증강현실 헤드셋이 애플의 개발자 콘퍼런스 WWDC23을 통해서 공개됐습니다. 애플은 단순히 바라보는 컴퓨팅이 아니라 들어가서 보는 환경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합니다. 디지털 콘텐츠들이 실제 물리적 공간에 함께 녹여지는 증강현실(AR)의 경험이 헤드셋으로 구현되는 것이지요.

 

비전 프로라는 이름은 다소 의외입니다. 보통 애플의 작명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컴퓨팅의 시각적인 변화와 관련이 깊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기 위해 ‘비전’이라는 다소 단순하고 명료한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팀 쿡 CEO의 설명도 맥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고,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을 가져온 것처럼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을 꺼내놓는다고 설명합니다.

 

사진=최호섭 제공


먼저 기기를 살펴볼까요? 비전 프로는 앞이 투명하게 비치는 고글 형태의 기기입니다. 이 기기를 쓰면 우리가 머물러 있는 공간이 눈앞에 비치고 그 위에 가상 콘텐츠를 보여줍니다. 원하는 곳에 앱 화면, 창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화면을 띄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자리에 앱이 떠 있는 것처럼 물리적 존재감을 느끼도록 디자인했습니다. 그림자와 주변 조명을 제어하고, 크기와 거리감을 적당히 느끼도록 화면이 그려진다는 것이 발표에서 애플의 설명입니다. 실제와 가상이 조화롭게 배치되는 데에 크게 신경을 쓴 듯합니다.

 

기기 안에는 눈을 추적하는 센서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어디를 향하는지 파악하고, 페이스ID처럼 홍채를 인식해 개인을 식별하는 ‘옵틱ID’도 달려 있습니다.

 

현실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가 관건입니다. 비전 프로의 디스플레이는 양쪽을 합쳐 2300만 개의 화소를 심었습니다. 한쪽이 약 1150만 개 픽셀인 셈인데, 이는 4k를 넘어 5k에 가깝습니다. 픽셀의 크기가 도드라지지 않도록 아주 작은 마이크로 OLED를 썼습니다. 아이폰의 픽셀 한 개 자리에 무려 64개 픽셀을 넣을 만큼 밀집도가 높습니다. 해상도가 높고, 픽셀이 작으면 그동안 우리가 VR 기기에서 눈앞을 흐릿하게 만들었던 망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헤드셋인 메타 퀘스트가 2k 해상도인 것을 떠올리면 4배 이상의 해상도를 내는 셈입니다.

 

애플도 디스플레이에 대해 큰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어느 곳을 바라봐도 선명한 시각 효과가 비치고 작은 글씨도 선명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디스플레이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시야각인데, 현장에서도 기기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아직 만져보거나 써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키노트에서 설명하는 경험으로는 거의 시야가 가득 차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애플은 각 애플리케이션이나 콘텐츠의 창을 엄청나게 크게 늘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극장 같은 시야를 보여주면서도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 주변 시야를 실제 극장처럼 어둡게 가리거나, 자연환경처럼 아예 가상의  공간으로 비춰 보여주는 상황을 설명했는데, 이는 눈의 주변부까지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해상도가 높다는 것은 곧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많다는 이야기로 통합니다. 그래서 기기의 성능이 받쳐주지 못하면 화면이 머리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밀려 보인다거나 그려내야 하는 화면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때문에 헤드셋에서 뭔가를 작동할 때는 그래픽 수준을 낮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애플은 비전 프로에 두 가지 고성능 칩을 넣어서 이 문제를 풀어냅니다.

 

첫 번째 칩은 M2입니다. 이 프로세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현존하는 가장 빠른 개인용 프로세서에 들어갈 뿐 아니라 열과 전력 소비도 매우 뛰어납니다. 이를 통해서 쾌적하게 고해상도 콘텐츠를 그려냅니다. 또한 기기 안의 센서가 눈의 위치를 읽어서 시선이 향하는 곳의 콘텐츠를 더 빠르게 렌더링해서 지연 속도를 최소화합니다.

 

여기에 기기의 움직임과 센서를 비롯한 실시간 처리만 맡는 R1이라는 전용 칩도 더해집니다. 이 칩은 12개 카메라와 5개 센서, 6개 마이크의 정보를 바탕으로 헤드셋의 위치를 지연 없이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화면을 적절하게 비춰줍니다. 이를 통해 미세한 지연에서 일어나는 멀미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최호섭 제공

 

비전 프로의 디스플레이는 투명해서 주변 환경을 그대로 비춰 볼 수도 있지만 필요에 따라서 VR 기기처럼 가릴 수도 있습니다. 애플은 이를 잘 이용했습니다. 바로 눈이 비치도록 한 것인데, 기기를 쓴 채로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아예 시선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센서는 아주 예민해서 기기를 쓰고 눈 앞을 가려 VR 콘텐츠를 보고 있다가 옆에 누가 다가오면 사람이 있는 부분만 살짝 장막을 걷어내 누가 왔는지도 보여줍니다. 애플은 전체적으로 이 기기를 일상의 컴퓨팅 환경을 대신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VR이나 AR 관련 헤드셋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면 비전 프로는 실제 컴퓨터 앞에 앉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해상도로는 PC의 모니터를 보는 것처럼 선명한 화면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눈의 피로가 높고, 사실상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야마다 최소 4k 이상의 해상도가 필요하다는 요구 사항들이 있었지만, 가격 측면, 그리고 주변을 함께 볼 수 있는 홀로그래피 디스플레이의 기술적 어려움, 그리고 제 색을 그려내는 것까지 전체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고, 애플은 이 문제를 해소하면서 제품의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 콘텐츠 소비가 아니라 가상 공간에서 온전한 경험의 컴퓨팅을 하는 것이지요.

 

당장 콘텐츠가 걱정입니다. 내년에나 출시할 제품을 벌써 WWDC에서 공개한 것 역시 개발자들에게 기기의 기본 개념을 보여주고, 앱 생태계를 채우는 데에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상당 부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맥의 앱 화면을 비전 프로 안으로 가져오거나, iOS와 아이패드OS의 앱을 띄우기도 합니다. 이는 운영체제의 연결성, 그리고 애플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증강현실 앱을 위한 AR킷으로 이미 앱들에 채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니티 엔진과 협업을 통해서 기존 앱을 그대로 비전 프로 안으로 옮길 수 있도록 프레임워크에 대한 대비도 이뤄졌습니다.

 

아마도 실제로 기기가 출시될 때쯤이면 기대 이상의 앱들이 많이 쏟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기존에 우리가 쓰던 앱들도 자연스럽게 가상 공간 안에 뿌릴 수 있을 겁니다. 기기는 내년부터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외의 국가는 출시 시기를 빠르게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격은 3499달러로 언뜻 보면 비싸 보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2도 3500달러로 출시됐고, 메타 퀘스트 프로는 초기에 1499달러였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훨씬 나은 컴퓨팅 성능과 디스플레이를 갖고 있는 비전 프로의 가격이 납득 못할 것은 아닙니다. 더 넓게 보면 산업 현장에서 증강현실을 활용하는 솔루션으로서는 획기적으로 저렴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관건은 일반 이용자들이 얼마나 접근할 수 있을 것이냐인데, 이 역시 디스플레이에 대한 평가가 전제조건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기기를 떠나 비전 프로에 주목할 부분은 애플이 또 다른 컴퓨팅 환경을 만들어 냈다는 점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AR, VR, MR 등의 헤드셋처럼 보이지만 애플은 목적과 방향을 생산성과 컴퓨팅으로 잡았고, 이를 비전OS로 풀어냈습니다. 콘텐츠의 소비와 생산은 기기의 성격을 완전히 다르게 갈라냅니다.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는 물리적인 한계를 풀어낼 수 있었고, 애플은 명확하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다소 주춤하던 메타버스, 가상현실 등의 주제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모습은 ‘애플답다’는 인상을 줍니다. 적어도 이번 키노트는 우리가 그동안 ‘알 것 같던 기대감’을 가장 현실에 가깝게 보여주었습니다.

미국 쿠퍼티노=최호섭 IT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가장 보통의 투자] 해외여행 전 똑똑한 환전 전략 짜는 법
· [알쓸비법] 기업도 노동자도 알아야 할 '해고의 조건'
· [AI 백브리핑②] AI가 만든 콘텐츠의 '주인'은 누구일까
· 애플페이 맞서는 삼성페이가 1020에 공들이는 까닭
· [멋진신세계] 귀 건강 생각한다면…내 귀에 캔디 말고 '디어버즈'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