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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참기름 소믈리에'가 연남동에 방앗간 차린 까닭

전국 참기름 장인 찾아 레시피 계량화한 이희준 씨…연남방앗간은 '사랑방'

2018.09.05(Wed) 18:06:27

[비즈한국] “조선영조실록에 보면 ‘영조가 참기름을 먹고 나면 조선 팔도에 참기름이 남지 않았다’는 한 줄이 나와요. 조선 왕 중 영조가 유독 참기름을 사랑했다고 해요. 근데 영조가 먹던 참기름 제조 공법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요. 당시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기술을 배워가서 남겨둔 문헌을 발굴하고 그 맛을 찾아가는 단계입니다.”

 

이희준 연남방앗간 디렉터는 자신을 참기름 소믈리에라고 소개했다. 조선의 왕 영조가 먹었던 참기름 맛을 재현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 등지 문헌을 찾아다니는 중이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희준 씨(30)는 자신을 3년 차 ‘참기름 소믈리에’라고 소개했다. 소믈리에라고 하면 보통 와인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포도주는 신맛부터 단맛까지 미세한 맛의 차이에 따라 종류가 수백, 수천 가지다. 소믈리에는 훈련된 미각과 해박한 지식으로 손님이 원하는 포도주를 파악해 추천한다. 반면 흰 쌀밥 위에 온갖 재료를 올리고 고추장 넣고 쓱쓱,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 방울 똑. ‘고소한 맛’이 일품이긴 해도 참기름이 그 이상의 맛을 낼 수 있을까?

 

“깨 원산지, 생산자의 착유 방법, 구력 등에 따라 맛과 풍미가 달라져요. 참기름마다 잘 어울리는 음식도 다 다르죠. 해외에선 이미 참기름이 ‘스페셜 오일’로 귀한 대접을 받아요. 한국 사람들은 너무 흔하게 먹으니까 모르죠. 참기름 장인이 점점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참기름 소믈리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주도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깨로 만든 참기름은 소금을 넣지 않았지만 짭조름하다. 안동 깨로 착유한 참기름은 내륙 바람 영향으로 더 부드러운 맛을 내기 때문에 나물과 국수에 잘 어울린다. 통영에서 생산된 참기름은 생선에 발라 먹으면 일품이다. 참기름 장인은 전국에 300여 명. 고령에 전수자가 없어 그들의 ‘노하우’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전국 300명의 참기름 장인은 고령에 전수자가 없어 대가 끊어질 상황이다. 이희준 씨는 그들을 설득해 그들만의 제조 방법을 기록하는 작업을 마쳤다. 사진=박은숙 기자

 

“커피 로스팅과 같아요. 깨가 볶아진 정도를 눈으로 파악하는 분도 있고, 맛봐서 파악하는 분도 있고, 코로 파악하는 분도 있죠. 자부심이 대단하세요. 하지만 대부분 2G폰을 써서 직접 문안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울 만큼 고령이죠. 참기름 만드는 과정이 너무 고되고 배울 사람이 없으니 대부분 자기 대에서 끝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제가 설득해서 레시피 계량화 작업을 해둔 상태예요.”

 

우리나라는 열대성 작물인 참깨가 잘 자라는 환경이 아니다. 참깨 자급률은 고작 6% 수준. 그나마 최대 참깨 생산지가 몰려 있는 안동 등 경북지역 참기름이 싸면서 품질이 좋다. 철학이 있는 장인들이 질 좋은 국내산 참깨로 만든 참기름을 진열해두면, 고객에게 듣는 말이 “이거 중국산이죠?”라고.

 

“제가 장인이라고 하는 분들은 경력이 최소 20년 이상, 작업할 때 위생모와 위생 마개를 착용해서 청결을 유지해요. 가짜 소리를 들으면 무척 자존심 상해하시죠.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아예 중국산 참깨로 착유하고 중국산이라고 표기해서 파는 분들도 많아요.”

 

결국 이 씨는 올해 4월​ 연남동에 방앗간을 차렸다. 이름은 ‘연남방앗간’. 직접 참기름을 짜기보단 ‘참기름 편집숍’으로 전국 장인의 참기름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판매 수익은 참기름 장인과 나눈다. 

 

이희준 씨가 연남동에 방앗간을 차린 또 다른 이유는 마을의 중심, 사랑방 역할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민과 주민을 서로 이어주고 싶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 씨가 방앗간을 차린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마을 주민을 이어주는 동네 ‘사랑방’이 되고 싶었다. 사라져가는 소상공인 문화에 애정을 가졌던 이 씨는 2013년부터 서울시 미래문화유산 해설사로 활동하며 ‘전통시장 도슨트’ 역할을 했다. 프랑스 공영방송 ‘​arte tv’​, 캐나다 방송 ‘채널 5’ 등 해외 방송이나 해외 VIP 손님이 방문했을 때 전국의 전통시장을 소개했다. 

 

덕분에 방앗간을 차리기 전, 전국 1400여 전통시장 중 1011곳을 최소 10번 방문한 이 씨는 흥미로운 결과에 도달했다. 방앗간이 시장의 중심 역할을 할 확률은 65%, 시장이 사라질 때 방앗간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75%. 이 씨는 방앗간이 동네 사랑방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연남방앗간은 사라져 가는 지역 공간과 ‘동네 문화’를 재해석하는 ‘어반플레이’의 ‘아는 동네’ 프로젝트예요. 앞으로 목욕탕, 세탁소, 철물점 등을 주변에 만들 계획입니다. 하나의 타운을 만들어 지역의 주민을 이어주고 싶어요.”

 

연남방앗간은 ‘편집숍’과 더불어 카페로 운영된다. 자체 개발한 ‘참깨라떼’는 한 달 평균 1만 잔이 팔릴 만큼 인기다. 하지만 수익을 목표로 하는 일반 카페와는 분명 다르다. 1970년대 지어진 2층짜리 양옥집을 개조해 만든 카페 내부에 마련된 테이블은 단 4개, 의자는 15개 안팎이다. 카페에 있는 네 개의 방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지하실에선 주기적으로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연남방앗간은 카페 형태로 운영된다. 하루 평균 500명이 찾는데, 이희준 씨는 카페보다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알려지고 싶다고. 사진=박은숙 기자

 

“하나의 방은 작품으로 채워진 전시실이에요. 이 공간(인터뷰가 이뤄지던 방)은 누군가가 큐레이션한 책방이에요. 원하는 분께 책방을 통째로 빌려주죠. 테이블과 의자는 일부러 줄이고 있어요. 손님이 처음엔 서서 음료를 마시는 것을 불편해하는데, 취지를 들으면 오히려 재미있어 해요. 카페보다는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알려지고 싶습니다.”

 

연남방앗간을 찾는 방문객은 한 달 평균 1만 3000명. 하루 500명꼴이다. 수익을 따로 공개하진 않았지만, 참깨라떼가 한 잔에 65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매출이다. 특히 연남방앗간을 찾는 외국인 손님은 두말하지 않고 일단 참기름을 사고 본다고.

 

“팔도의 숨겨진 음식 브랜드를 소개하고 싶어요.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식문화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부산에, 광주에 가지 않아도 그 지역 식문화를 맛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거죠. 맛본 음식이 마음에 들면, 그 지역에 여행 가서 더 제대로 즐길 수 있게요. 결국 지역의 소상공인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거죠.”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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