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트럼프RX(TrumpRx.gov)’의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미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값을 지불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발언과 함께 시작된 이 정책은 미국 의약품 유통 구조 전반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영향은 미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가 운영하는 의약품 가격 비교 플랫폼
트럼프RX는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연방 차원의 의약품 가격 정보·구매 연계 플랫폼이다. 다만 자체 판매몰이 아니라, 굿RX(미국 내 처방약 가격 비교 민간 사이트) 기반으로 약값·쿠폰·할인 정보를 제공하고 외부 판매처(지역 약국, 온라인 약국, 제조사 직판 채널 등)로 연결해주는 구조다. 환자가 약 이름을 입력하면 여러 판매처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고, 바이오시밀러가 존재할 경우 대체 옵션도 함께 제시된다.
약을 ‘트럼프RX에서 직접 구매한다’기보다는, 최저가 판매처를 안내받아 그 채널로 이동해 결제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변화는 PBM(처방약급여관리업체)의 영향력 약화다. 기존에는 PBM이 리베이트를 매개로 상당한 중간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였는데, 트럼프RX는 쿠폰·직접 연결 방식을 통해 이 단계를 일부 우회한다. 환자는 더 낮은 가격에 약을 구매하고, 제약사는 중간 단계 비용을 줄이면서 직판 비중을 늘릴 여지가 생긴다. 다만 리베이트 구조와 정산 방식은 품목·계약별로 달라, 수익 이동 규모는 기업마다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름에 ‘트럼프’를 전면에 내세운 점도 이례적이다. 단순한 행정 프로그램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 브랜드를 결합한 정책 플랫폼이라는 상징성이 크다. 동시에 가격 인하에 협조하는 제약사에는 관세 면제 등 인센티브를, 소극적인 기업에는 관세 압박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트럼프RX는 단순한 의료 서비스라기보다, 약가와 유통 구조를 동시에 흔들기 위한 정책 수단에 가깝다.
#바이오시밀러엔 순풍…PBM 벽 낮아지며 ‘직판’ 확대
트럼프RX의 최우선 목표는 저렴한 약가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고가 오리지널 의약품을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시밀러 확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FDA는 바이오시밀러 의 상호교환성 관련 제도와 심사 프레임을 정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약국 단계 자동 대체와 제조사 직판(DTC) 모델 확대도 병행되고 있다. 다만 상호교환성 부여를 위한 임상 요건은 품목별로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교체 임상 없이도 대체 조제가 가능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흐름의 수혜 후보로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거론된다. 이미 미국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 포트폴리오와 유통 기반을 갖춘 데다 가격 경쟁력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PBM 영향력이 낮아질수록 브랜드 파워보다 실제 약가가 처방을 좌우하는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중국 바이오 기업을 배제하려는 바이오시큐어(BIOSECURE) 관련 조항이 미 국방수권법(NDAA)에 포함돼 추진되는 흐름까지 더해지면서, 미국이 ‘신뢰 가능한 공급망’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한국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으로 물량이 이동할 가능성도 커졌다. 바이오시밀러와 CDMO 양 축에서 동시에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관세와 약가 하락의 이중 압박…신약 기업엔 부담
모든 기업에 긍정적인 환경 만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약가 인하에 협조하는 제약사에는 관세 면제 등 혜택을, 그렇지 않은 기업에는 관세 압박 가능성을 시사하며 현지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메이드 인 USA’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됐다. 셀트리온은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생산 거점을 통해 관세 리스크를 낮췄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미국 메릴랜드 록빌 생산 거점 인수 추진을 통해 현지 CDMO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다.
더 큰 변수는 약가 자체다. 트럼프RX는 ‘최혜국 대우(MFN)’ 원칙을 앞세워 미국 약값을 해외 저가 국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이 경우 미국 시장 평균 약가가 낮아지면서 국내 신약 개발 기업들의 기술수출(L/O) 가치가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빅파마 역시 기대 수익이 줄어든 후보물질 도입에 보다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우려는 ‘코리아 패싱’이다. 미국이 한국처럼 약값이 낮은 국가를 참조국으로 삼을 경우, 글로벌 제약사들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한국 내 신약 출시 시점을 늦추거나 우선순위를 낮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RX는 국내 바이오 산업 전반에 동일한 영향을 주기보다는, 기업의 사업 구조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바이오시밀러와 CDMO 중심 기업에는 미국 내 점유율 확대와 현지 생산 수요 증가라는 기회가 열릴 수 있는 반면, 신약 개발 중심 기업들은 약가 하락에 따른 기술 가치 조정과 투자 환경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향후 K-바이오의 성과는 기술력뿐 아니라 미국 시장 대응 전략과 공급망 구축 속도, 유통 구조 적응력, 가격 경쟁력에 따라 성패가 크게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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