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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가상화폐, 꼭 필요한가?

화폐 기능 대체 못하고 투기 수요만 있는 '허구상품'으로 전락

2018.09.06(Thu) 11:24:34

[비즈한국] 가상화폐(암호화폐) ‘투자’ 광풍이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가 거래를 주도하고 있으니 다분히 아시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 현상은 무엇을 암시하며, 과연 모종의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는 지금 필요하지도 않고, 그것은 이름과 달리 화폐도 아니다. 

 

해킹 위험이 없고 금융기관에 과도한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되는 화폐를 개발할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지금의 가상화폐(암호화폐)는 투기 수요만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경제 성장의 핵심 추동 원인은 노동생산성이며, 성장의 목적은 구성원의 행복이다. 현재까지 가상화폐는 이 둘 중 어떤 것에도 양(陽)으로 관여하지 않았고, 앞으로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 국가에 본원통화는 하나인데, 화폐 자체는 실물경제 성장과 관련이 없다. 화폐의 장기중립성(Long-run Neutrality)은 어느 정도 증명된 사실이다. 통화공급 효과는 물가에 영향을 주어 곧 상쇄되고, 결국 총수요와 총공급에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견인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만약 통화공급량이 성장을 조금이라도 부추긴다면 국가는 거리낌없이 화폐를 찍어내면 될 것 아닌가. 물론 어떤 중앙은행도 실제로 돈을 찍어대지 않는다. 그들은 재할인율이나 지급준비율 조정, 공개시장조작 등을 통해 시장의 통화량을 조절할 뿐이다. 

 

화폐의 역할은 거래의 매개고, 국가의 역할은 통화량 조절이다. 현실에서 국가 발행 화폐가 통용되면 화폐의 역할은 끝난 셈인데, 약간의 기술을 갖춘 개인들에게 모종의 돈을 찍어내게 할 필요가 있는가?

 

현행 가상화폐는 불필요를 넘어 사회의 정의를 심각하게 잠식하고, 그로 인해 구성원의 복지를 해치고 있다. 거품이 약간 꺼졌다지만 발행 이후부터 이 가상화폐의 가격이 전체적으로 올라갔으므로, 개발자와 초기 채굴자에게 막대한 부를 안겼다. 도대체 그들이 사회 구성원의 복지를 위해 무엇을 했기에 가격 상승의 과실을 누려야 하는가? 결국 가상화폐는 아무런 부를 창출하지도 않으면서, 신흥 기득권자의 부를 늘려주는 역진적인 재분배기능을 하고 있다.

 

물론 가상화폐가 현행 화폐를 대체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태환성을 가진 법정 화폐(Legal Tender) 역시 사회적인 약속의 징표일 뿐이다. 모든 제도는 개선할 필요가 있고, 무엇이든 합의만 되면 화폐가 될 수 있다. 가상화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듯, 장부를 분산저장하기에 해킹의 가능성이 없고, 금융기관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넘기지 않아도 되는 화폐를 개발할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현재의 원화나 달러, 그리고 이에 기반한 전자거래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가? 

 

여전히 교환의 매개로 가치의 척도로, 그리고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현재의 경화(硬貨, hard currency)가 가상화폐보다 탁월하다. 경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십 년 동안 안정성 검증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 비결은 화폐를 철저하게 물가와 연동해서 함부로 발행하지 않는 것, 그리고 국가의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러자면 해당 국가의 정치와 경제 요인이 모두 안정되어야 한다. 

 

사실 국가는 이런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왜 활용하지 않는가? 국가를 안정시키면 화폐가 안정될 것이고, 국가가 실패하면 그 화폐도 죽는다. 필자는 ‘무정부주의자’에 가깝지만, 국가가 실패에 가까워졌을 때라면 탈출하는 대신 오히려 그 화폐를 지키기 위해 기를 쓰겠다. 어떤 화폐가 실패하면, 실물 자산 없이 몇 푼의 예금만 가진 노동자와 저소득층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는다. 1990년대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할 때, 루블화와 더불어 노동자와 중산층이 괴멸하고 자산 괴물들만 탄생한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1월 27일 서울역광장에서 ‘마이닝맥스 가상화폐(이더리움) 채굴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집회를 열어 가상화폐 채굴기 위탁업체 ‘맥스팩토리’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최근 중미 무역전쟁이 벌어지자 위안화가 요동치고 있다. 중국인들이 안전자산으로 금을 보유하는 경향을 가진 것은 유명하지만, 위안화의 가치 하락과 함께 비트코인의 가치가 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가상화폐는 전통적인 화폐의 가치저장 기능을 물려받고 싶은 모양인데, 그것은 화폐 본연의 기능이 아니다. 

 

가치는 실물과 생산성 형태에 맡겨 두고, 화폐는 가치의 척도로서 거래를 매개하며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이 가장 좋다. 회전속도가 빠를수록 시장에 필요한 현금은 줄어들 텐데, 한국은 총 유동성이 국민소득의 몇 배에 달하지만 시장에 풀린 현금은 국민소득의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원화는 화폐의 모든 기능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에 대한 수요는 투기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소위 가상화폐를 화폐 아닌 상품으로 인정하고, 거기에 다른 상품 거래와 똑같이 세금을 부과하면 될 뿐이다. 이 상품은 특히 효용과 관계 없는 ‘허구상품’이면서 오직 투기적인 수요로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으므로, 자원의 선용을 위해서는 징벌적 추가세를 더 매기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화폐가 없다고 블록체인 기술이 죽을 리가 있는가. 아무리 따져봐도 이 가상화폐는 경제적인 필요는 없으면서 부작용만 커 보인다. 꼭 그런 화폐가 필요하다면 그때 쓰면 될 일이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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