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시중은행이 참여한 한국은행의 디지털 화폐 테스트 ‘프로젝트 한강’이 이달 마무리된다. 한은은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의 실험을 끝내고 정비를 거쳐 개인 간 송금, 디지털 바우처 등으로 후속 테스트를 이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민간의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 제도화에 속도를 내는 데다, 은행권이 CBDC 추가 테스트에 난색을 보이면서 진행 가능성에 눈길이 쏠린다.

한국은행과 7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부산·IBK기업은행)이 예금 토큰 전자 지갑 시범 사업을 오는 30일 종료한다. 7월 1일부터 예금 토큰을 활용한 결제와 충전이 불가능하며, 남은 토큰 잔액은 연계 계좌로 입금된다. 신한은행 등은 전자지갑 보유자에게 7월 16일부터 앱 내 예금 토큰 메뉴를 삭제하며, 이후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프로젝트 한강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연구·개발의 일환이다. CBDC란 중앙은행이 제조·발행·유통하는 디지털 화폐를 뜻한다. 분산원장 기술로 발행하는 CBDC는 가치가 고정돼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 예금 토큰은 은행 예금을 디지털 형태의 자산으로 토큰화 해 현금처럼 쓰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CBDC를 기반으로 발행한 예금 토큰에 바우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는지 등을 테스트하고, 시민이 디지털 화폐의 효용을 체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은은 장기간에 걸쳐 CBDC 도입 가능성을 검토해 왔다. CBDC 테스트 추진 계획을 처음 밝힌 것은 2020년 4월이다. 사업자를 선정해 2021년 8월~2022년 11월 CBDC의 유통·지급서비스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모의실험을 진행했다. 모의실험이 끝난 후 2023년 11월에는 한은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디지털 화폐의 실거래 테스트를 위한 ‘CBDC 활용성 테스트’ 세부 추진 계획을 마련했다.
프로젝트 한강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인 만큼 신중하게 시행됐다. 혁신금융서비스 대상으로 선정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부산·IBK기업 7개 은행이 참여했고, 지갑은 최대 10만 개(참가 인원 10만 명)로 제한했다. 은행에 예금계좌를 가지고 있는 만 19세 이상 시민이 지갑을 신청할 수 있다.
예금 토큰은 개인·기업 등이 직접 사용하는 범용 화폐가 아닌, 금융기관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관용’ 디지털 화폐로 발행됐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7개 은행이 보유하며, 은행 간 자금 거래나 최종 결제에서 실시간 자산으로 쓰이는 식이다.
프로젝트 참여자는 예금을 토큰으로 전환하고, 이를 정해진 사용처에서 물품이나 서비스 구매에 사용할 수 있다. 사용처는 교보문고, 편의점 세븐일레븐, 이디야커피, 농협하나로마트, 현대홈쇼핑, 배달 플랫폼 땡겨요, 코스모(K팝 굿즈 판매처) 등 온·오프라인에 마련됐다.
한은은 1차 테스트가 끝나면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2차 테스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2차 테스트인 후속 실거래는 개인 간 송금, 디지털 바우처 프로그램 적용 등에 초점을 맞춘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금융사여야 참여 가능하므로 7개 은행에서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테스트 종료 후 2개월가량의 시스템 정비를 하고, 은행권과 협의를 거쳐 2차 테스트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차 테스트 실행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먼저 정부와의 입장 차이가 있다. 새 정부는 스테이블 코인의 민간 발행을 적극 추진하는데, 한은은 CBDC 활용에 힘을 싣기 때문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실물 자산과 가치를 연동하는 가상자산이지만 민간이 발행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폐 발행은 헌법상 중앙은행(한은)만 가능해 민간의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은 불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유통에 긍정적이다. 후보 시절 이를 주요 공약으로 내면서 제도적으로 민간 발행을 허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10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사전 인가제 도입을 통한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한은은 정부와 달리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화폐 역할을 하는 스테이블 코인을 민간이 발행할 경우 통화정책이나 거시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일 열린 ‘2025 BOK 국제 컨퍼런스’에서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에게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비은행권에 허용할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며 “한국은 미국과 달리 자본 규제가 있다. 비은행이 자본 규제를 우회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도 24일 열린 간담회에서 같은 견해를 밝혔다. 유 부총재는 “스테이블 코인을 도입하더라도 규제 수준이 높은 은행을 중심으로 우선 발행을 허용하고, 점진적으로 비은행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은행권과의 협의도 관건이다. 후속 실거래 테스트를 두고 은행권은 비용, 절차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은행연합회가 23일 이 총재와 은행장 간담회에 앞서 배포한 ‘한은 관련 업무 현안 사항’ 보고서에 “후속 테스트 진행에서 한은과 이견이 존재해 조율 중”이라며 “단순히 기존 테스트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것인지 유 부총재는 24일 “1차 파일럿 테스트를 마무리하고 2차 파일럿 테스트를 준비하는 단계”라며 “정부가 스테이블 코인의 도입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아 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상황이다. 은행과 계속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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