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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명절 스트레스 날리는 막장 카타르시스, '사랑과 전쟁'

자극적인 소재로 지상파 유일 '19금'…"4주 후에" 등 명대사, 명연기 10년 장수

2018.09.26(Wed) 17:46:15

[비즈한국] 추석 연휴가 끝났다. 어떤 사람은 ‘벌써’, 어떤 사람은 ‘이제야’라는 부사를 덧붙이며 연휴를 곱씹을 때다. 벌써 끝났다고 아쉬워할 사람은 명절보다는 연휴에 방점을 찍고 그 달콤함을 충분히 누린 사람이겠고, 이제야 끝났다고 한숨을 돌릴 사람은 명절의 고단함을 잘 아는 사람이리라.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은 후자인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달랠 만한 드라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큰소리로 욕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그러는 와중 ‘그래, 난 저 정도로 최악의 상황은 아니잖아’라는 작은 위안을 곁들이며 보는 드라마. 

 

‘부부 사이의 모든 문제를 드라마로 재구성해 보여준다’는 취지의 사랑과 전쟁은 1999년부터 방영, 2009년 479회로 종영할 때까지 매주 금요일 밤을 든든하게 책임졌다. 유명 스타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요, 단막극 형식이라 매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도 이 드라마를 향한 시청자들의 지지는 강했다.

 

사랑과 전쟁 시즌1은 조정위원회에 참석한 이혼 위기의 부부가 조정위원들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형식이었다. 사진 출처=KBS 포토뱅크

 

10년이라는 시간을 방영하고도 모자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시즌2를 선보였을 정도니까. 나 또한 사랑과 전쟁의 열혈 시청자였다. 소재가 채택되면 제공되는 사은품이 탐나 빈약한 상상력을 쥐어짜며 허구의 이야기를 투고하기도 했다. 물론 세상 물정 모르던 20대가 쥐어짠 이야기로 실제 가정에서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사건사고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사랑과 전쟁’​은 이혼 위기에 선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자극적인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외도와 불륜은 일상이었고 혼수 갈등, 주사와 폭력과 학대, 고부 갈등과 장서 갈등, 출생의 비밀, 사기와 협박, 심지어 살인에 이르기까지 세상만사 모든 한심하고 추하고 악한 일들이 1시간 내내 꽉꽉 집약되어 펼쳐졌다. 지상파 방송에서 유일하게 ‘19금’을 달고 방영했을 정도였으니까.

 

그 한심하고 추하고 악한 일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앞서 말한 작은 위안과 함께 “저런 천하에 죽일 XX들이 있나” 욕을 해대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곤 했다. 재미난 사실은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라고 폄하되었지만 그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 심지어 방송 심의를 맞추려 각색을 통해 수위를 낮췄다는(!) 증언도 많다.

 

시즌1에서 아내 역할을 자주 맡았던 이시은.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사진=KBS 포토뱅크

 

드라마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슬픈 사실. 그러니, 이혼을 앞두고 갈등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솔루션 프로그램이길 바랐던 ‘사랑과 전쟁’​​은 역설적으로 이혼 조장 드라마, 비혼 권장 드라마라는 별칭을 얻기에 이른다. 어쩌면, 내가 결혼에 큰 뜻이 없는 것도 이 드라마 때문인지도 모른다(그렇다고 치자). 

 

추석 연휴를 보내며 ‘사랑과 전쟁’​​이 절실히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며느리를 종 부리듯 하는 시어머니, 돈 잘 버는 다른 사위들과 대놓고 차별 대우하는 장인, 대리효도 강요하는 얼치기 효자 남편, 남들은 시부모가 집도 사주고 하는데 우리는 뭐냐고 잔소리 일념인 아내, 보태지나 말지 꼭 한 마디 거들어 쥐어박고 싶은 시누이, 어색함과 미묘한 알력을 오가는 동서들, 꼬장꼬장하게 자기자랑에 여념 없는 큰아버지, 돈 빌려가고는 갚을 생각 없는 얼굴 가죽 두꺼운 고모와 삼촌, 용돈 챙기더니 사촌끼리 쌈박질이나 하는 아이들…. 우리집에는 없는 인물들이라고? 그럴 리가.

 

시즌2에서 민지영과 함께 자주 아내 및 상간녀로 출연한 최영완. 사진=KBS 포토뱅크

 

어느 집이나 곗돈 들고 튄 고모나 갈등 끝에 더 이상 명절에 오지 않는 삼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문제의 캐릭터들이 모두 모이는 명절이니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리 없고,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다. 그럴 땐 조용히 ‘사랑과 전쟁’​​을 틀 것을 권한다. 현실을 반영한 막장 에피소드들이 우리를 위로해 주리라.

 

지금도 TV를 틀면 KBS W, 법률방송, 엣지TV 등에서 앞 다투어 사랑과 전쟁 시즌1과 2를 재방영하고 있다. 시가를 먼저 가느니 처가를 먼저 가느니 하는 갈등 따윈 우스운 에피소드들이 바다처럼 넘실거린다. 심지어 연기들도 어쩜 그렇게 잘하는지. 사랑과 전쟁으로 ‘국민 불륜녀’라는 별명을 얻은 민지영을 비롯해 이시은, 손유경, 최영완, 유지연 등의 배우들은 탄탄한 생활 연기로 자주 출연, 이름은 몰라도 길가다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아는 척할 정도다.

 

어이없고 짜증나고 무서운 시어머니 연기를 전문으로 선보여 뒷목 잡게 만든 서권순. 사진=KBS 포토뱅크

 

서권순, 홍여진, 장미자 같은 중견배우들은 ‘국민 시어머니’로 불릴 정도로 혹독한 시어머니를 연기해, 그 앞에만 서기만 하면 바짝 얼 것만 같고. 그러고 보면 ‘사랑과 전쟁’​​을 거친 유명 배우들이 제법 많다. 윤정희, 이필모, 김희정 등은 물론 가수 장윤정과 박현빈, 걸스데이 유라와 제아 동준, 쥬얼리 예원, NS윤지 등 아이돌 그룹 멤버들도 이 프로그램으로 얼굴을 내비친 적 있다. 저 유명한 장수원의 로봇 연기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도 사랑과 전쟁이 탄생시켰다.

 

사랑과 전쟁 시즌1의 조정위원 셋. 사랑과 전쟁은 신구의 명대사를 낳은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KBS 포토뱅크

 

시즌1의 조정위원들도 기억에 남는다. 신구, 김흥기, 전원주로 시작한 조정위원은 양미경, 고 김흥기를 거쳐 신구, 이호재, 정애리로 이어졌는데, 약방에 감초처럼 부부를 위로하거나 때론 꾸짖고 호통 치는 조정위원의 태도가 은근한 재미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신구가 마무리로 말하는 “4주 후에 뵙겠습니다”는 지금도 종종 패러디되는 전국민 명대사. 1시간 내내 속사포처럼 대사를 채워 넣는 작품 특성 때문인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와 ‘​따뜻한 말 한마디’​의 하명희 작가가 사랑과 전쟁 출신 작가로 필력을 갈고 닦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정위원을 맡은 배우 이호재와 정애리. 개념 없는 부부를 꾸짖으며 호통 치는 이호재의 연기가 은근히 재미났다. 사진=KBS 포토뱅크

 

가정은 행복의 근원이랬다. ‘사랑과 전쟁’​​의 원래 목표대로,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를 조명해 반면교사와 타산지석 삼아 행복한 가정을 위해 노력해 보자. 추석 연휴에 쌓인 갈등이 있다면 더더욱. 시즌2의 마무리 멘트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은 행복하십니까.

 

필자 정수진은?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 ‘무비위크’에서 일했고, 여행이 즐거워 여행잡지 ‘KTX매거진’을 다녔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지금은 프리랜서를 핑계로 종일 드라마를 보느라 어깨에 담이 오는 백수 라이프를 즐기는 중.​ 

정수진 드라마 애호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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