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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대국' 중국이 '바짝' 몸 낮춘 까닭

한국은 '소국' 취급하더니 미국과 무역분쟁 계속되자 "가난한 나라" 호소

2018.10.01(Mon) 09:45:47

[비즈한국] 최근 미·중 무역분쟁이 벌어진 가운데, 중국 협상 당사자의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푸쯔잉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협상대표 겸 부부장은 미·중 경제 협력이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라며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유한 사람은 계속 부유하란 말이냐”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런 중국 무역 협상 당국자의 말은 2016년 말 한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와 큰 대조를 이룬다.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배치하자, 중국 외교 당국자는 “(한국 같은)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며 한국을 속국 취급한 적 있다.

 

2016년 사드 배치 당시 천하이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의 발언. 사진=KBS 9시 뉴스 화면 캡처


물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은 대부분의 나라가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예전의 중국은 그러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은 덩샤오핑의 유지에 따라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등 국제관계에서는 미국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주변 국가와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

 

왜 중국은 덩샤오핑의 유지를 저버리게 되었을까?

 

이 의문을 푸는 데 최근 발간된 책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은 큰 도움을 준다. 

 

지금 중국은 도광양회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신형 국제관계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고, 그 이전 다보스 포럼에서는 중국이 자유무역을 지키기 위해 책임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중략)

 

많은 관찰자가 중국의 이러한 공격적인 행보에 의구심을 표했다. 왜 세계의 초강대국 미국에 편승하여 경제발전에 매진하는 기존의 전략을 버리고 대결을 추구하는 것인가? 중국의 힘은 여전히 미국에 미치지 못하는데 너무 성급하게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 -책 152쪽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왜 중국은 선진국의 수요에 의지해 경제를 꾸려나가는 개발도상국이라는 것을 왜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해,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를 촉발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해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의 저자 임명묵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벌어진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인의 환영을 받으며 치를 것으로 생각한 올림픽은 도리어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향해 불신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 공산당에게 깨우쳐주었다. 2008년 3월 불거진 티베트 문제를 시작으로 서구 각지에서 반중 시위대가 조직되었다. 시위대는 베이징으로 향하는 성화 봉송대가 만나는 곳마다 등장했고 성화를 끄고 때로는 빼앗으려고 시도했다. (중략)

 

성화봉송을 둘러싼 사태의 기원은 북아프리카의 수단 다이푸르 사태였다. 당시 수단은 남수단과 갈라지기 전이었고, 남쪽의 기독교를 믿는 흑인과 북쪽의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이 수십 년째 갈등하고 있었다. (중략) 이슬람에 기반한 통치를 선언한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는 아랍 민병대 편을 들고 (기독교를 믿는) 푸르족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초지와 석유매장지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중략)

 

UN에 따르면, 학살된 사람은 30만 명이었고 난민으로 떠돌게 된 사람은 최소 250만 명이었다. 2005년 소집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수단에 대한 경제제재안이 올라왔다. 그러나 제재는 실행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책 165~167쪽

 

당시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는 명확했다. 피로 물든 수단의 석유 중 3분의 2 이상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된 2007년에야 평화유지군이 수단에 파견되었으나, 사태는 개선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국이 수단의 독재정권에 석유대금을 계속 지불하는 한, 다이푸르의 학살극이 중단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자신들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이토록 거대한 반감을 유발할 것이라고 생각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은 그저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세계인들은 이 문제를 그런 단순한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임명묵 작가는 다음과 같이 중국이 처한 상황을 묘사한다. 

 

덩샤오핑 시대 이후 30년 동안 중국이 이런 난처한 선택을 강요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중국은 실로 오랜만에 ‘밖으로 나간 자’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와 맞닥뜨렸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책 167~168쪽

 

즉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의 경제권으로 성장했다면, 그리고 아프리카에 진출해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했건만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셈이다. 물론 베이징의 공산당 지도부가 ‘미국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그 우산 밑에서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곧 이어 발생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 ‘대안’을 매력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의 위상이 타격을 입자 상황이 달라졌다. (중략) 개발도상국들은 중국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가질 수 있었다. 중국은 국가주도로 엄청난 경기부양 예산을 집행하여 금융위기를 효과적으로 넘긴 것으로 보았다. (중략) 후진타오 시대가 끝나가며 ‘포스트 덩샤오핑 시대’의 대외 전략이 틀을 갖추어 갔다. 중국은 대중들의 민족주의적 열기를 만족시켜야 했다. 그래야 정권이 유지될 수 있다. 또한 자국의 자원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공급망을 세계 각지로 뻗어야 했다. 그래야 거대한 산업을 돌리고 엄청난 자원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책 178~179쪽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의 통상마찰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경기의 부진, 그리고 중국 내부 민족주의 열기가 만들어낸 조합물이 중국의 대외 팽창정책이었던 셈이다. 2012년 일본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 그리고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지속된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는 이런 흐름 속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의 통상마찰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미국으로선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한데, 중국이 자꾸 미국의 리더십에 도전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못마땅하지 않겠는가. 뒤늦게 “중국은 가난한 나라”라고 몸을 낮춰본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이 보인 태도를 감안할 때 국제사회가 중국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어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통상보복에 ‘나홀로’ 대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도 무역마찰이 불러올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갈수록 판세는 중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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