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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탐식다반사] '초원편의점'의 황태포는 솜사탕 같았다

전주 필수 코스 '가맥집' 중 최고…무쇠판에 두들기길 35년

2018.11.28(Wed) 14:12:21

[비즈한국] 전주가 국민여행지로 떠오른 지 오래다. 전 국민을 주말 여행길에 오르게 한 주5일 근무제는 고속버스로 두 시간 반 거리인 전주를 인기 여행지로 자리매김 시켰고, 20여 년 전 시작된 전주국제영화제로 처음 전주를 찾았던 이들의 단골 여행지가 되기도 했다. 이제 KTX로 1시간 40분 만에 간다.

 

이만한 여행 인프라를 가진 곳도 없기에, 꾸준히 독보적이다. 전동성당 같은 근대 건축 유산이 어우러진 한옥마을의 고즈넉한 풍경, 그에 대비되는 요란한 상업적 엔터테인먼트는 전주의 필수 코스다. 천변을 따라 걷는 한벽루 산책길도 사시사철 여유 일품이고, 여름철 덕진공원의 연꽃은 장관이다. 

 

솜사탕처럼 살살 녹는 초원편의점의 황태포. 사진=이해림 제공


먹거리도 얼마나 많은가. 풍년제과 쇼핑백 들고 상경하는 건 기본. 왱이집, 삼백집 같은 콩나물 국밥, 조점례남문피순대, 풍남피순대 등 시커먼 피순대 전문점, 전주비빔밥으로 이름을 날리는 한국집, 가족회관에, 전국을 훑어도 보기 드문 걸쭉한 칼국수를 파는 베테랑까지 먹을 것 지천이다. 다 챙겨 먹자면 주말만으로 부족할 지경이다.

 

전주의 가장 매력적인 여행 콘텐츠를 꼽자면, 단연 ‘가맥집’이다. ‘가게 맥주’를 줄인 말, 또는 ‘길에 자리를 펴고 마시는 맥주’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전주에선 가맥집을 꼭 가야 하고, 소주 아닌 맥주를 마셔야 한다. 근처에 하이트맥주 공장이 있어 맥주는 맑고 시원하다. 

 

가맥집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전일갑오’다. 전주 사람들이 1989년 아니면 1990년 문을 연 것으로 기억하는 가맥집이다. 연탄불에 굽는 황태포에 말캉한 갑오징어, 뚱뚱한 달걀말이로 누구에게나 알려진 이름이다. 영화제 기간이나 주말엔 미어터지다 못해 줄까지 설 정도다. 허름하지만 헐겁고 쾌활한 그 분위기도 좋다. 전주를 매해 들락거리던 시절, 첫 행선지로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직행했던 곳이 전일갑오다.

 

이제는 초원편의점만 간다. 전일갑오보다 앞서는 역사와 조금 덜한 명성을 가진 초원편의점은 똑같이 허름하고 헐겁지만, 쾌활함 대신 침착함을 공기에 채우고 있다. 여행객들보다는 전주 사람들이 퇴근길에 들르는 곳이다. 관광지인 한옥마을과 남문시장으로부터 100미터쯤 떨어진 꼭짓점에 위치해 있어 관광객들 발길이 덜하다. 1984년 문을 열었는데, 한 해 앞서 개업한 최초의 가맥집 영광수퍼가 20여 년 전 폐업했으니 초원편의점이 현존 전주 최고(最古) 가맥집인 셈이다.

 

낮 시간대 초원편의점. 무쇠판에 황태를 올리고 때리는 소리가 배경음악이 된다. 사진=이해림 제공

 

들어서면 황태부터 주문한다. 망치로 두드려 부슬부슬하게 부풀어 오른 황태는 솜사탕처럼 입에서 녹는다. 가게 바깥에서 뜨거운 연탄불 위에서 굽는데, 아무 양념도 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버터 맛이 느껴진다. 대관령에 대놓고 받는 집이 있다고 한다.

 

황태 부스러기를 온몸에 묻혀가며 한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웠다면 다음 차례는 명태. 묵호항에서 받는다. 전주 사람들은 황태를 지나치고 명태부터 주문한다. 쫀득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확 치받는 것이 마력 있다. 맑고 투명한 감칠맛이 무척 좋다.

 

두 건어물은 전주의 가맥집을 모두의 중독으로 만든 바로 그 소스와 함께 나온다. 간장, 물엿, 청양고추 다진 것 등이 들어간 오묘한 소스다. 그 위에 마요네즈까지 듬뿍 짜 올린다. 처음부터 이 소스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가맥집이 개발하지도 않았다. 어느 손님이 배합해 찍어 먹은 레시피가 고정된 것이라고 한다. 10여 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그런 사연으로 초원편의점이 원조라는 설이 있는데, 이제는 집집마다 각자의 비율로 소스를 섞는다. 

 

초원편의점을 유독 돈독히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무쇠다. 낮 시간, 어두컴컴한 실내에선 어머니 아니면 아들 사장님이 두툼한 무쇠판을 놓고 망치 끝으로 황태를 쿵쿵 쪼아가며 때린다. 언제 가도 때리고 있다. 그렇게 35년을 때렸다. 남문시장에서 맞춘 무쇠판은 도중에 한 번 깨져 새로 맞췄다. 

 

무쇠를 쪼갤 정도의 시간, 무쇠가 동강 날 정도의 수공. 보풀거리는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질감의 비결이 결국 사람이요, 정성이고 시간이다. 세상이라는 게 참 뻔하지. 

 

필자 이해림은? 푸드 라이터, 푸드 콘텐츠 디렉터.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싣고 있으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탐식생활: 알수록 더 맛있는 맛의 지식>을 썼고, 이후로도 몇 권의 책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콘텐츠, 브랜딩, 이벤트 등 전방위에서 무엇이든 맛 좋게 기획하고 있으며, 강연도 부지런히 한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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