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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죄수의 딜레마 '리니언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까닭

먼저 신고했어도 지위 박탈 가능, 후순위가 감시…면죄부 비판도 있지만 효과 커

2019.02.13(Wed) 11:23:50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아두면 모 있는 즈니스 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공정거래법은 담합 사실을 신고하거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경우 제재 조치를 감면하는 ‘자진신고 감면제도’를 두고 있다. 이는 ‘리니언시’(leniency)라고도 불리는데, 1순위 자진신고자는 시정 명령, 과징금 납부 명령, 검찰 고발을 완전히 면제받고, 2순위 자진신고자는 시정조치, 검찰 고발 면제 및 과징금의 50%를 감경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 사실을 먼저 시인한 업체에 제재 조치를 감면해주는 ‘자진신고 감면제도’인 리니언시(leniency)를 활용한다.

 

사업자들이 담합을 모두 부인한다면 담합 입증은 상대적으로 곤란해진다. 그러나 그 중 어느 사업자가 자진신고를 한다면 그 사업자는 제재 조치를 모두 면제받는 반면, 나머지 사업자들은 중한 제재조치를 면하기 어렵다면 어떨까. 이 상황에선 다른 사업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먼저 자진신고를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이런 측면에서 리니언시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이론에서 유래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사건을 수행하다 보면 모든 사업자들이 담합을 부인하여 불퇴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사업자가 몰래 자진신고를 함으로써 김이 새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진신고 감면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여러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주로 요구되는 것은 접수순서와 성실한 조사 협조 등이다. 자진신고에 따른 제재 감면은 일반적으로 접수 순서에 따라 2순위까지만 인정되고, 담합 사업자가 두 곳일 경우 1순위만 인정된다. 결국 담합에 연루된 사업자는 자진신고 여부를 신속히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사안에 따라서는 공정위로부터 현장조사를 받고 있는 즉석에서 자진신고를 할 정도로 분초를 다투는 일이 된다.

 

자진신고가 접수된 이후에는 관련된 증거를 제출하고, 담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진신고 사실에 대한 보안 유지다. 공정위는 증거 확보가 어려워지고, 사업자 간 신뢰 관계가 유지된다는 이유로 자진신고 누설 시 자진신고자 지위를 박탈하고 있다. 법원도 성실협조의무 위반을 이유로 자진신고 사실을 누설한 D 건설사의 지위를 박탈한 공정위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6두45783 판결).

 

공정위 조사에서 담합 사실을 인정한 내용을 발설할 경우 제재 조치 감면 혜택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사진=박은숙 기자

 

건설업계에서 떠도는 소문으로 이런 사례가 있다. 사업자들끼리 리니언시를 하지 않기로 ‘담합’한 것. 다만 어느 사업자가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읍소하자, 그 사업자에게만 특별히 자진신고를 허락했다. 허락을 받은 사업자는 자진신고를 했는데 뜻밖에도 공정위로부터 3순위 통지를 받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자진신고를 하지 않기로 하는 담합에서도 누군가 몰래 자진신고를 한 것이다.

 

자진신고 이후에는 아무래도 단가결정에서 이전과 다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때 다른 사업자로부터 자진신고 여부를 추궁 당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에, 업무 담당자들 중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업 파트너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는 것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선순위 자진신고자가 그 지위를 박탈당하면 후순위 자진신고자의 순위가 상승되므로, 자진신고자들은 다른 사업자의 자진신고 지위를 박탈시켜야 실익이 생긴다. 이 때문에 자진신고자들은 다른 자진신고자의 누설을 입증할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기도 한다. 자진신고가 언급된 대화를 녹취한 후 이를 증거로 선순위 자진신고자의 지위 박탈을 주장하는 경우 등이 그러한 사례다. 결국 자진신고를 한 이상 순위가 최종 확정될 때까지 보안 유지에 각별히 신경 쓴다. 그래서 자진신고자는 종종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으로 비유된다.

 

자진신고 감면제도는 담합 주도자에게 면죄부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사업자들이 앞다투어 자진신고를 하거나 선순위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상호 감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 제도에는 사업자들 간에 불신을 싹트게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담합을 적발·방지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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