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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유럽 최대 클라우드 기업 일군 '엔지니어 집안' 비사

마음에 드는 인터넷 서비스 못 찾아 직접 창업…패밀리 비즈니스로 시작, 세계 공략 박차

2019.04.15(Mon) 16:45:24

[비즈한국] 유럽 최대 데이터센터 및 클라우드 호스팅 사업자인 OVH는 프랑스 내에 15개를 비롯해 런던, 프랑크푸르트, 폴란드 등 유럽 지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과 싱가포르, 호주 시드니 등 전 세계에 27개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30만 대의 서버를 관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연간 40만 대의 서버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설비도 갖추고 있다.

 

비상장 회사로서 정확한 내역은 공개되어 있지 않으나 대략 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 등 비유럽 지역에서의 성장을 통해 수년 내로 10억 달러(1조 1300억 원) 매출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총 6억 5000만 유로(83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OVH는 세계적으로 인터넷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1990년대 말에 사업의 첫발을 내딛었다. 창업자이자 현 CEO(최고경영자)인 옥타브 클라바(Octave Klaba)와 그의 가족은 그로부터 불과 10년 전 무일푼으로 프랑스에 건너온 폴란드 출신 이민자들이다. 흥미로운 이들의 가족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인터넷 클라우드 기업 OVH는 옥타브 클라바 CEO와 그의 가족들이 함께 1999년 설립했다. 왼쪽부터 알리나 클라바, 앙리크 클라바, 옥타브 클라바 CEO, 미로슬로우 클라바 수석부사장. 사진=OVH 홈페이지

 

옥타브 클라바의 할아버지인 마리안 클라바는 1920년에 프랑스 북부의 탄광 지대에서 폴란드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서유럽에서는 공업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하급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농업 등 전통적인 산업이 붕괴해버린 동유럽의 낙후된 국가들로부터 장단기 이민을 많이 받았고, 클라바 가문의 뿌리도 그 중 하나였다. 이민 2세로서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던 마리안 클라바는 폴란드에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타니슬라바 브로다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의 가족 역시 폴란드에서 경영하고 있던 사과농장이 한파로 인해 황폐화되면서 살길을 찾아 어쩔 수 없이 프랑스로 건너온 처지였다.

 

부부는 폴란드로 돌아가 농장을 재건할 꿈을 꾸며 탄광에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고향으로 송금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폴란드로 건너갔으나, 그동안 보낸 돈들을 삼촌이 모두 탕진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됐다. 실망해 프랑스로 돌아오려던 참에, 냉전이 시작돼 동서 유럽 간에 소위 ‘철의 장막’이 내려졌고, 프랑스 국적인 이들 가족은 졸지에 폴란드에 억류되는 신세가 됐다. 옥타브의 아버지 앙리크 클라바는 이런 사정으로 1949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공산화가 되어 버린 조국에서 원치 않는 생활을 시작한 마리안 클라바는 태어난 아들의 국적을 영사관을 통해 프랑스로 신고했는데, 이로 인해 서구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한 반동분자 내지는 간첩으로 의심 받아 항상 비밀경찰의 감시를 당하는 처지가 됐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감시하는 공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저항 정신은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 가문의 내력일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비상했던 앙리크는 나름 공산주의식 엘리트 교육의 혜택을 누렸고, 폴란드의 명문 공대인 ‘뽈리떼끄닉’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알리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1975년에 장남 옥타브를, 몇 년 후 차남 미로슬로우를 낳았다.

 

뛰어난 엔지니어이자 타고난 성실함을 갖춘 앙리크는 신분의 제약을 극복하고 비교적 높은 지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에 차를 사러 나갔던 그는 차 대신에 당시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영국제 암스트래드(Amstrad) 개인용 컴퓨터를 사 왔다. 어린 옥타브와 미로슬로우 형제는 512KB 메모리와 8086 CPU를 장착(‘286 PC’라 불리던 80286 CPU의 전 모델. 40대 이상 독자들로서 컴퓨터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과거 우리나라의 삼보 트라이젬 컴퓨터를 연상하면 되겠다)한 이 컴퓨터를 통해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철의 장막’이 걷히면서, 가족은 고심 끝에 어린 아들들의 장래를 위해 50여 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폴란드에서 일구었던 전 재산을 처분했지만, 프랑스에 들어 올 때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불과 몇 천 프랑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프랑스 국적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가족 모두 프랑스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는 처지였다. 폴란드에서는 550명의 주민과 2000헥타르의 토지를 관리하는 집단 농장의 ‘지도자 동지’였던 앙리크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19세기에 그랬듯 공장의 선반 노동자로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폴란드에서는 꽤나 공부를 잘했던 당시 16세의 옥타브도, 언어의 제약뿐 아니라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동안 겉돌았다고 한다. 이런 아들에게 아버지 앙리크는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작은 오토바이를 사줬다. 또한 옥타브가 친구들과 헤비메탈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는 것도 격려해 주었다. 

 

독특한 교육법이긴 한데 하여간 옥타브는 오토바이와 기타 연주를 통해 얻은 해방감과 자존감을 통해 학교 성적도 회복되었고, 명문 공대에 입학했다. 그래서인지 옥타브 클라바는 지금도 회사 행사 등에서 밴드와 함께 직접 수준급의 기타 솜씨를 뽐내고 SNS를 통해 자신의 기타 컬렉션을 과시하기도 한다.

 

2018 OVH서밋에서 기타를 직접 연주하고 있는 옥타브 클라바 CEO. 사진=OVH 홈페이지

 

옥타브는 1999년 졸업을 앞두고 프랑스의 통신 장비 업체 알카텔(현재 노키아에 합병)에서 잠시 인턴으로 일했다. 불과 5주간의 짧은 기간임에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그의 인생에 있어 남 밑에서 직장생활을 한 유일무이한 경험이 된다.

 

프로그래밍에 자신이 있던 옥타브는 자신이 직접 부품을 사서 조립한 서버를 연결해 웹 사이트를 개설하고, 이를 통해 게시판을 운영하고 코딩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는 등 해커로서 활동하였다. 트래픽이 점점 늘어나면서 자신의 서버로는 감당이 안 돼 호스팅 업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마음에 드는 호스팅 서비스를 찾지 못하자 인터넷이 훨씬 더 발달한 미국 동부의 한 업체를 이용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그의 필요를 채우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참다 못 해 무작정 미국으로 날아가 호스팅 업체를 방문한 옥타브는, 열악한 서버룸 환경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하면 이것보다 훨씬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고 프랑스에 돌아온 그는 가족들을 설득해 현재 화폐가치로 약 5000유로의 자금을 빌려 10개의 서버를 대여하고, OVH를 창업한다.

 

1999년 창업 당시 최초로 만든 서버 랙 앞에 선 옥타브 클라브 CEO. 사진=OVH 홈페이지

 

옥타브는 가족들에게서 돈만 빌린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업에 뛰어들 것을 졸랐고, 결국 OVH는 패밀리 비즈니스로 출발했다. OVH가 처음부터 서버를 비롯한 데이터센터 내의 하드웨어 인프라를 자체적으로 설계해서 사용한 것은, 엄마 포함 가족 구성원 모두가 명문 공대 출신으로서 엔지니어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기술적 차별성이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의 경쟁 데이터센터 및 클라우드 호스팅 업체들을 압도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일례로 2000년대 초반에 OVH는 혁신적인 액체 냉각 방식을 적용하여 데이터센터 운영 관리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소비를 3분의 2 가량 줄일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거의 60세에 가까운 나이였던 아버지 앙리크의 설계와 기술이었다. 

 

지금까지도 모든 OVH의 데이터 센터는 수냉 쿨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사진=OVH 홈페이지

 

2012년에 이미 유럽 내 최대의 데이터 센터 및 클라우드 업체(유럽 내 웹 사이트 6개 중 하나, 프랑스 내에서는 3개 중 하나가 OVH의 데이터센터에서 호스팅 되고 있다)​로 성장한 OVH는 유럽을 벗어나 글로벌 확장을 전략적 목표로 삼기에 이른다. 특히 세계 최대이자 최고의 클라우드 및 데이터센터 시장인 북미 지역 확장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2012년에 프랑스어권 캐나다인 몬트리올로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6개의 신규 데이터 센터 설립을 주도한 옥타브 클라바는, 2019년 1월에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로 이주해 본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설 것임을 선언했다. 4대에 걸친 클라바 가문의 대망이 마침내 인터넷의 본산지인 미국에서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지며 유럽 인터넷 및 클라우드 산업의 자존심도 세워줄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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