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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배달의민족'과 프랑스 헬스케어 '닥터립'의 공통점

병원 진료 예약 앱 만들어 전 세계 최대 투자 유치…규제도 적극 활용

2019.03.25(Mon) 12:19:50

[비즈한국] 이 칼럼의 취지는 대규모로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의 성공 스토리뿐 아니라 그 과정을 이끈 창업자들의 인간적 면모와 그 배경이 되는 프랑스와 유럽의 사회·문화적 특징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주간 거의 매주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의 스타트업)에 등극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들이 이어져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되었다.

 

지난 주에는 프랑스의 e-Health(전자 의료) 스타트업인 닥터립(DoctoLib)이 시리즈 E(5차) 펀딩을 통해 1억 5000만 유로(193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였다. 의료 관련 스타트업의 단일 라운드 투자로는 최근 10여 년 사이 최대 액수다. 누적 투자액도 2억 5000만 유로(3000억 원)에 달해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기존의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을 압도한다. 기업 가치 평가는 11억 달러가 넘는다. 

 

닥터립 창업자 스타니슬라 니오-샤토. 유럽 최초로 미장원, 스파 등 뷰티 서비스 예약 시스템을 창업하고 여러 유명 예약 전문 스타트업의 창업에 관여한 경험이 있다. 사진=닥터립


닥터립은 현재 프랑스와 독일의 1400개 의료 기관에서 일하는 7만 5000명의 의료진이 사용하며, 월 이용자(환자) 수는 3000만 명에 달한다. 의사들은 월정액 109유로(독일에서는 129유로)에 닥터립을 이용할 수 있으니 대략의 매출 규모가 짐작될 것이다. 

 

2013년에 창업한 이 회사의 주된 비즈니스 모델은 진료 예약을 온라인·클라우드로 전환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형 종합 병원의 유명 의사들을 제외하고는, 보통은 아플 때 그냥 동네 병원에 가서 번호표 받고 기다리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예약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는 종합 병원이건 개인 병원이건 반드시 사전에 예약을 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더구나 공공 의료와 의약 분업이 우리나라보다 정교하고 촘촘해, 대부분 개인 병원 의사들은 달랑 책상과 청진기만 갖다 놓고 환자를 받는다. 간호사도 없고, 수납과 진료 예약도 의사가 직접 한다. 처방약 조제는 물론 주사 치료나 혈액 검사, MRI나 CT 촬영과 같은 검사 과정도 모두 별도 기관을 통하도록 되어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개원하는 데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으나 진료 일정을 관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닥터립은 바로 이러한 수요를 파고 들어 6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1조 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닥터립은 병원의 진료 예약을 온라인으로 해주는 앱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7만 5000명의 의료진이 가입했으며, 월 이용자(환자) 수는 3000만 명에 달한다. 사진=닥터립

 

유럽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필자는 이러한 변화를 직접 체감했다. 10년 전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만 해도 간단한 진료라도 예약하려면 병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아야 했다. 의사들이 직접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었고, 보통은 나이 지긋한 여성 어시스턴트가 예약을 잡아주었다. 어느 경우든 한국식 빨리빨리 의료 시스템에 익숙했던 사람으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4~5년 전부터 점점 많은 의사들이 온라인으로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환자로서는 업무 시간에 관계 없이 언제든 예약이 가능한 데다, 따로 메모할 필요 없이 모바일 앱으로 확인할 수 있고 사전 알림 기능까지 있어 편리하다. 의사는 진료 예약 관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물론 예약 취소로 발생하는 진료 공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보통 3~5명의 의사들이 공유하는 어시스턴트의 고용 비용에 비하면, 월정액 109유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닥터립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스타니슬라 니오-샤토(Stanislas Niox-Chateau)는 어린 시절 촉망받는 테니스 선수였다. 프랑스 전국대회 유소년부에서 여섯 번이나 우승했다. 하지만 17세에 허리 부상으로 프로 테니스 선수의 꿈을 접고 학업에 전념해 2년 후 프랑스 최고의 명문 그랑제콜인 파리고등경영대학(HEC Paris)에 진학한다. 

 

졸업을 앞둔 2010년, 온라인 예약 시스템의 사업 가능성에 눈을 뜬 스타니슬라는 유럽 최초로 미장원, 스파 등 뷰티 서비스 예약 시스템인 발리네아(Balinea)를 창업한다(유럽에서는 미장원도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졸업 후에는 ‘경험 상품 선물’ 서비스인 스마트박스 창업자 피에르 에두아르 스테린(Pierre-Edouard Stérin)과 함께 오티움(Otium) 캐피탈을 설립한다. 이를 통해 식당 예약 앱 라푸세트(LaFourchette), 주말 테마 여행 예약 서비스 위켄데스크(Weekendesk) 등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예약 전문 서비스 스타트업들의 창업에 직접 관여한다. 2013년 스타니슬라는 스스로 닥터립을 창업하기에 이른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 즉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누리고 수백만에 달하는 의료계 종사자들의 일상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를 하고 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실은 예약 서비스 관련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경영에 관여하면서 경험을 축적한 결과, 가장 큰 시장은 진료 예약 서비스에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에만 개업의가 22만 명에 달하고 연간 15억 건에 달하는 진료 예약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미장원이나 여행 예약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시장이다.

 

헬스케어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시장이지만 촘촘한 규제 때문에 스타트업의 진출과 혁신이 쉽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진입 규제와 인허가 및 평가 절차 등에 불만이 팽배하다. 최근 국내에서 발표된 한 보고서에는 “글로벌 100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면 그중 63개는 온전한 형태로 사업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스타니슬라와 공동창업자 이반 슈나이더, 제시 베르날(왼쪽부터). 사실 닥터립은 전자 의료보다는 ‘배달의민족’과 같은 O2O에 가깝다.사진=닥터립

 

사실 유럽도 규제로 따지자면 국내 시장 못지않다. 다만 닥터립의 경우 의료비나 수가와 직접 관련이 없고, 민감한 환자의 의료 기록을 다루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관련 규제에 유연하다. 오히려 규제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8년부터 광범위하게 적용된 유럽 개인정보 보호법(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은 기존의 많은 사업자를 난감하게 만들었지만 닥터립은 발빠르게 치고 나갔다. GDPR에 익숙하지 못한 어시스턴트들이 실수로 환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할까 두려워하던 병원과 의사들에게 닥터립을 사용해 GDPR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라고 설득한 것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2018년 9월부터 부분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한 원격 진료에도 이어진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프랑스는 철저한 의약 분업으로 의사는 문진 정도로 진료와 처방을 하고, 고가의 장비나 전문 기술이 필요한 치료나 검사는 별도 기관을 통한다. 따라서 환자가 굳이 병원을 가지 않고도 스카이프나 페이스타임 등 동영상을 통해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처방전은 온라인으로 약국이나 검사 기관에 전달이 되고 보험 급여도 자동으로 처리된다. 닥터립은 여기에도 발빠르게 대응하여 관련 서비스를 2019년 1월에 출시했다. 규제 환경을 적절히 활용해 경쟁자들의 추적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한편, 숨어 있던 시장을 발굴하고 확장한 것이다. 

 

사실 닥터립은 전자 의료보다는 ‘배달의민족’과 같은 O2O(Online to Offiline: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서비스)에 가깝다. 배달의민족처럼 닥터립도 무슨 대단한 진입 장벽이 있는 딥테크 기반이 아니었다. 다만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에 상식에 기반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해결책을 찾고자 했을 따름이다. 간단한 도구와 해법으로 수백만 명의 일상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바닥을 훑는 집요함과 치밀한 위기 관리·조직 관리 능력을 보여줬던 것 또한 공통점이라 하겠다. 

 

닥터립보다 앞서 2018년에 유니콘에 등극한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의 성공담과 경영 철학을 들어보면 닥터립 창업자 스타니슬라와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다. 분야는 다르지만 사용자 기반을 확대해 네트워크 효과를 키우는 것이 최우선 목표인 플랫폼 기반 사업자인 것, 2위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끊임없이 격차를 벌리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시의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것 또한 유사하다. 

 

결국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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