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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소액결제 시스템 만든 천재의 기이한 삶

렌타빌리웹 창업자, 광장공포증으로 은둔하면서도 자선활동은 활발

2019.04.01(Mon) 14:50:28

[비즈한국] 오늘은 프랑스 스타트업과 핀테크 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현재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은퇴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방금 뛰쳐 나온 듯한 외모의 이 사내는 프랑스 최초의 핀테크 회사 중 하나인 렌타빌리웹(RentabiliWeb)의 창업자다. 한때 성직자가 되려다가 포기하고 기업 전문 변호사가 되어 이름을 날렸다. 또 사르코지 대통령의 디지털 정책을 자문했고,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놀라운 경력의 소유자이자 보기 드문 천재다. 장-밥티스트 데크르와 베르니에(Jean-Baptiste Descroix-Vernier). 프랑스에서는 보통 JBDV로 약칭한다. 

 

소액결제 솔루션의 효시인 렌타빌리웹의 창업자 장-밥티스트 데크르와 베르니에. 독특한 외모와 은둔생활, 그에 대비되는 활발한 자선활동 등으로 주목을 끌었다. 사진=데크르와 베르니에 재단

 

장-밥티스트는 1970년 리용 변두리의 서민 아파트에서 양봉업자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16살에 고교졸업 시험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그는 법대에 진학한다. 그러나 신학에 더 관심이 많아 같은 대학의 신학 과목들을 청강하며 성경 주해에 탐닉했다. 성직자가 될 꿈을 꾸다가 18세에 포기하고 이후 법학 공부에 매진한다. 일단 민법으로 법학 학사를 마친 그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의 법관 양성 과정에서 온갖 학위를 다 취득한다. 상법과 세법에 관한 석사 학위, 기업 법률 자문 학위, 상법전문대학원에서 기업 경영 학위 등을 따낸 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93년에 개업했다. 

 

장-밥티스트는 기업 공개와 파산 및 기업 회생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며 곧 워싱턴 DC와 방콕 등에 법률사무소를 내는 등 국제적으로 활동을 확장한다. 그러다 1999년에 법률사무소를 팔아버리고는 멀티미디어 회사 엘리오(Hélios)에 이사로 취임해, 또다른 디지털 미디어 회사와 합쳐 뉴테크인터랙티브(NewTech Interactive) 설립을 이끈다. 그러는 한편 자본 시장 전문 월간지도 창간했다가 1년 후에 매각한다.

 

장-밥티스트는 2000년에 1년여 간 잠적한다. 이 기간에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태국과 버마 등지에서 승려로 지냈던 것이 아닌가 가까운 친인척들이 조심스레 짐작할 따름이다. 

 

2001년 말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장-밥티스트는 렌타빌리웹을 창업한다. 이 회사는 인터넷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SMS와 전화 등을 이용한 소액결제 솔루션을 제공했는데, 유럽의 온라인 콘텐츠 유료화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개발은 주로 러시아에서 데려온, 스스로 ‘닌자’라고 부르는 일군의 개발자들이 맡았다. 

 

렌타빌리웹은 소액결제 솔루션의 효시 가운데 하나로, 유럽의 온라인 콘텐츠 유료화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렌타빌리웹은 2006년에 기업공개(IPO)를 했는데, 이때 투자자들이 프랑스 정·재계의 거물이라 화제를 모았다. 그 중에는 세계 최대의 럭셔리 그룹인 LVMH 회장이자 유럽 최고 갑부인 베르나르 아르노, 그리고 LVMH와 쌍벽을 이루는 PPR(2013년에 Kering으로 사명 변경)의 2세 회장이자 배우 셀마 헤이엑의 남편인 프랑수아 앙리 피노도 있었다. 재계의 라이벌이자 견원지간으로 알려진 아르노와 피노가 한 회사에(실은 한 인물에) 투자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화제였다. 

 

이외에 미테랑과 자크 시라크 정부에서 연이어 경제부 장관을 지낸 알랭 마들랭, 비방디 그룹 회장 장마리 메시에, 디자이너 입생 로랑과 함께 생로랑 그룹을 창업한 그의 (동성) 남편이던 피에르 베제 등도 있었다. 도무지 인터넷 소액결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듯한 거물급 인사들이 장-밥티스트에게 반해 그의 회사에 투자한 것이다.

 

장-밥티스트가 승승장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11년 5월 사르코지 대통령의 요청으로 대통령 직속 국가디지털위원회 부의장으로 취임했으나, 한 달 만에 사임해야 했다. 야당 대선 후보 프랑수와 올랑드와 논쟁하던 중에 올랑드의 디지털 자문역이던 한국계 입양아 플뢰르 펠르랭을 비하하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펠르랭에게 “올랑드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가정부 역할(femme de ménage)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

 

장-밥티스트는 “올랑드는 디지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나 펠르랭에게 문제의 발언은 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미 야당의 표적이 된 그로서는 성격상 더 이상 직위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장-밥티스트는 광장공포증이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IPO 당시 투자자들 앞에 퀼트 치마에 레게머리를 하고 나타났던 그는 이후 대외 행사는 모두 이미지 컨설턴트에게 맡기고 있다. 회사도 출근하지 않고 스카이프를 통해 원격으로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방식으로 경영했다. 암스테르담 운하의 수상 가옥에서 고양이 두 마리, 로트바일러 개와 함께 생활하면서 한창 병이 심할 때는 1년에 한두 번밖에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장-밥티스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어주는 등 여러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데크르와 베르니에 재단

 

장-밥티스트는 각종 기부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IPO 직후인 2007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아프리카 빈국과 프랑스 빈민들을 위한 구호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또 ‘국경 없는 수리기술자회’라는 단체에 100만 유로 이상을 지원해 아프리카에 70여 개의 우물을 파게 했다. 40만 명의 식수원을 확보한 이 일로 그는 2016년 토고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추장(Togbui) 작위를 받았다. 그 외에 알츠하이머 연구에 자금을 대기도 하고 동물보호센터, 노숙자쉼터 등에도 기부한다.​

 

독신인 그는 재산을 물려줄 가족이 없으므로 전 재산을 구호 활동에 쓸 예정이라고 한다. 2015년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월급이 세후 3900유로 정도(약 450만 원)이며 “이 정도면 월세 내고 옷 사 입고 담배 사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렌타빌리웹은 2013년 7억 5000만 유로(9600억 원) 상당의 결제를 처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2015년 사명을 달레니스(Dalenys)로 바꾸었고, 이듬해 장-밥티스트는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직을 맡았다. 2017년 10월 달레니스가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Natixis)에 인수되면서 장-밥티스트는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회사를 경영할 때에도 종종 “내 사업의 최대 주주는 하느님”이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은 프랑스 중부의 작은 농장에서 낮에는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거나 낚시를 하고 밤에는 신학 공부를 하며 성직자가 되고자 했던 어린 시절 꿈을 되새기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유일한 친구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가끔씩 다녀갈 뿐, 장-밥티스트는 은둔자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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