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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인생이 너무 평온하고 지루할 때, 명품 복수극 '부활'을 보라

잔인하지만 동시에 희망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TV 속 김윤석 연기도 '볼거리'

2020.04.03(Fri) 15:01:50

[비즈한국] 만 40년을 채우지 못했으니 인생이 어쩌고 저쩌고 말할 계제는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나름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잘 먹으며 피둥피둥 살찌며 지냈고, 아슬아슬했지만 때 되면 학교 졸업하고 때 되면 회사에 들어가 성실하게 세금 납부하며 살았다. 당연히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되거나 쓰라린 원한으로 원수에게 복수하고자 피눈물을 흘린 적도 없다. 하지만 대중문화에서 볼 수 있는 복수물은 무척 좋아한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해보지 않았기에 선뜻 좋아하는 걸 수도 있다.

 

‘부활’은 자신의 친부가 살해당했고, 20년 만에 만난 쌍둥이 동생마저 살해당한 한 남자의 처절한 와신상담(臥薪嘗膽)기다. 어릴 적 기억을 잃은 채 누군가에 의해 낯선 집에 맡겨져 자란 서하은(엄태웅). 20년 뒤 형사가 된 그는 우연히 자살로 위장한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자신의 진짜 이름은 유강혁이며, 친부였던 형사 유건하(안내상) 또한 모종의 사건을 조사하다 살해당했고 지금 조사하는 살인사건이 그와 연결돼 있을 알게 된다.

 

엄태웅은 ‘부활’에서 쌍둥이 형제를 1인 2역으로 연기하며 ‘엄포스’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이후 ‘부활’의 박찬홍 PD와 김지우 작가가 만난 ‘마왕’에도 출연하고, ‘적도의 남자’ 등을 찍는 등 복수물과 관계가 깊다. 사진=KBS 홈페이지

 

쌍둥이 동생 유신혁(엄태웅, 1인 2역)을 20년 만에 만나지만, 신혁을 서하은으로 착각한 무리가 신혁을 죽이는 비극까지 일어난다. 아버지와 동생을 죽인 무리는 동일한 무리로 추측된다. 이쯤 되면 형사 아니라 제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복수를 꿈꿀 것이다. 그렇게 서하은이자 유강혁은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유신혁이 되어 아버지와 동생의 복수를 시작한다. 

 

존재를 숨기고 원한의 상대에게 복수를 가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스릴이 넘치고 재밌다. ‘부활’이 모티프를 따온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짜릿한지. 적들에 의해 비리 형사라는 누명을 쓰고 도망 다니는 서하은 형사 대신 무릉건설 부사장이 되어 권력과 재력을 적절히 동원해 전방위로 적들을 압박하는 ‘부활’도 짜릿한 맛은 있었다. 과연 서하은은 언제 자신의 존재를 들킬까, 서하은일 때 함께 자란 여동생이자 사랑하는 여인 서은하(한지민)는 언제 하은의 존재를 알게 될까, 아버지의 옛 친구들이자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적인 국회의원 이태준(김갑수)과 J&C그룹 회장 정상국(기주봉)은 진짜 이 모든 일의 배후인가 등등.

 

20년 만에 만난 쌍둥이 동생 신혁이 자신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한 것을 알고 난 뒤 복수를 각오하는 서하은(엄태웅). 서하은이란 이름으로 살다 유강혁이란 원래 이름을 되찾는가 싶더니, 다시 유신혁이란 이름으로 존재를 가려야 하는 하은은 모든 복수를 꿈꾸고 은하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사진=KBS 홈페이지

 

그러나 단지 통쾌한 복수만을 말하는 드라마였다면 ‘부활’이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에게 기억되는 명작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 ‘부활’에서 복수를 행하는 서하은은 천성이 착하고 강직한 인물이다. 뚜렷한 증거가 없고 아버지의 살해사건은 공소시효마저 만료되었기에 ‘신이 있다면 나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라 되뇌며 법의 심판이 아닌 개인적인 복수를 시작했지만 그 돌이킬 수 없는 과정에서 하은은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무릉건설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자주 얼굴을 마주하는 은하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힐 수 없음이 괴롭고,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괴로움에 빠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롭다.

 

20년을 한 집에서 남매처럼 자라온 서하은와 서은하(한지민). 성인이 된 둘은 서로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지만 하은의 복수 때문에 이어지지 못한다. 엄태웅과 한지민은 이 작품으로 그해 KBS 연기대상에서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한다. 사진=KBS 홈페이지

 

이를테면 하은은 신혁의 약혼녀이자 이태준 의원의 딸인 신문기자 이강주(소이현)를 들쑤셔 저도 모르게 아버지의 죄악을 알아내게 만다.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하는 이태준 의원의 사생아 박희수(이동규)를 차장내 이태준 의원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사기꾼의 역할을 맡긴 것도, J&C그룹 정상국 회장을 파멸시키기 위해 사이가 좋지 않은 아내의 욕심을 자극해 배신을 때리게 만드는 것도 하은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버지와 동생의 목숨을 빼앗고, 자신과 가족을 잃은 채 20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만든 무리에 대한 잔인한 복수라지만, 죄 없는 사람이 죄 지은 자의 가족이란 이유로 이용한다는 점이 하은을 계속 괴롭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미 시작된 복수는 멈출 수 없고.

 

하은의 복수 상대인국회의원 이태준(김갑수)과 새아버지 강인철(이정길). 절친한 친구 건하(안내상)가 자신들의 비리 증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자 과감하게 살해를 의뢰하는 태준은 후회하는 정상국(기주봉)과 달리 앞날만 모색하다 결국 투신자살하기에 이른다. 사랑하던 여인이 친구의 아내가 되자 질투와 탐욕으로 친구와 친구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강인철 또한 결국 파멸의 나락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사진=KBS 홈페이지

 

하은의 존재를 알고 난 뒤 이태준 의원이 하은에게 던지는 질문이 의미심장하다. “넌 나와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네가 한 일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냐?” 여기에 대해 하은은 “당신이 정당이라는 말을 논할 자격이 있습니까? 난 내가 받은 고통을 똑같이 갚아주려는 것뿐입니다”라고 답한다. 함무라비 법전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 복수의 끝은 어떨까? 과연 통쾌하기만 할까? 그렇다 해도 아버지와 동생은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자신의 20년도 돌려받지 못할 텐데 말이다.

 

서하은을 돕는 조력자였던 천공명 사장(김윤석). 하은의 복수를 이해하고 돕지만 순간순간 그를 끝까지 가지 못하도록 말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타짜’ 이후로만 김윤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나름 풋풋한 김윤석의 모습이 놀랍기 그지없다. 사진=KBS 홈페이지

 

게다가 아버지와 동생을 죽인 인물로는 이태준, 정상국 외에 어머니 김이화(선우은숙)의 현 남편이자 이부동생(異父同生) 강신영(이연희)의 아버지인 강인철(이정길)도 의심된다! 진실이 밝혀진 후 어머니와 동생이 받게 될 타격은 얼마나 클 것인가. ‘부활’은 인간에게 인간만큼 무서운 존재도 없지만 동시에 인간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는 말도 있지만, 그 말이 아니더라도 ‘파멸을 부르는 건 인간의 욕심만이 아니다. 복수심도 결국 파멸을 부른다’던 서하은의 조력자 천공명 사장(김윤석)의 말도 되짚어볼 만하다.

 

박희수(이동규)의 칼에 찔려 죽나 싶지만 ‘부활’은 서하은이 살아 있음을 분명히 한다. 다만 자신의 복수가 불러온 일들 때문인지 사라진 채로, 아직 은하나 어머니 앞에 나타나지 않은 일종의 열린 결말 형태다. 사진=KBS 홈페이지

 

‘부활’이 방영했던 2005년 당시, 처음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가?’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시청자 모드가 되었지만 이내 취업을 하고 밤샘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부활’을 끝까지 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가, 이번에 끝을 보면서 김윤석이 이 드라마에 나왔던 사실이 놀라웠고, 김갑수・기주봉・이정길・강신일・이대연・김규철 중년 연기자들의 연기에 새삼 감흥했고, 주진모(1958년생)나 이진욱이 소소한 비중으로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며 눈을 비비며 놀라워했다. 인생이 너무 평온하고 ‘강제 집콕’은 너무 지루하다고? 그럼 ‘부활’을 봐라. 섶에 누워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남자의 고군분투를 보다 보면 평온하고 지루한 내 인생에 감사하게 될 테니.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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