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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샤이닝 니키', 한중 콘텐츠 교역 난제 남겼다

중화 사상 담긴 수준급 콘텐츠 계속 나올 것…외면할 수 없는 중국 시장도 고민거리

2020.12.09(Wed) 15:28:38

[비즈한국] ‘여성향 게임 명가’라는 명성에 맞지 않는 행보로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기고 떠나는 중국게임 ‘샤이닝 니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넘어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중국과의 콘텐츠 교역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샤이닝 니키’ 개발사 페이퍼게임즈는 게임 속 한복 아이템이 중국의 것이라는 일부 중국인들의 주장에 동조하며 우리나라 유저들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논란이 거세지자 미련도 없이 아주 쉽게 한국 시장을 떠나버렸다. 

 

#비즈니스보다 자존심 내세운 진짜 속내

 

페이퍼게임즈가 국내 출시 40여 일 만에 ‘샤이닝 니키’ 서비스를 무책임하게 중단함에 따라 게임 이용자들은 큰 정신적 피해를 받았고, 페이퍼게임즈코리아에 소속된 인력들은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유례없는 서비스 중단 조치에 대해 이 업체는 한국 유저들의 중국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어 분노스럽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패션 코디 RPG인 ‘샤이닝 니키’는 3D 그래픽의 예쁜 의상들을 모으고 코디하는 재미와 아련한 배경음악에 빠져드는 게임이다. 매력적인 외모의 캐릭터들 하나 하나가 사연이 절절하고 판타지 순정만화를 보듯 몰입된다. 내가 코디한 옷을 입은 니키를 카페나 길거리에 소환해 주변 환경과 같이 촬영할 수 있는 증강현실(AR) 기능은 지켜보는 남성들조차 흥미를 느낀다.

 

‘샤이닝 니키’가 동북공정 논란 끝에 결국 12월 9일 한국을 떠난다. 사진=페이퍼게임즈 제공

 

특히 탄탄한 세계관이 인상적이다. 디자인 천국인 미라클 대륙의 문명이 애플 왕국에 의해 멸망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 코디의 힘으로 대륙을 구한다는 내용이며, 기술 문명에 대한 성찰도 있다. 세계관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슬픈 역사, 자국 전통문화의 자부심, 또 기술 대국으로의 자부심이 은근히 투영된 듯한 스토리와 연출은 패션 게임이라는 장르로 포장된 다른 속내가 숨어있는 듯하다. 

 

심지어 ‘패왕별희’가 연상되는 장면도 나온다. 이 게임에는 전통 연극 배우인 ‘진의’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패왕별희’의 주인공이 어린시절 경극단에 들어가 아동학대가 난무하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 대배우로 성장하는 내용이 진의의 사연과 겹친다. 패왕별희는 청일전쟁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자국 문화유산들을 스스로 불태워 버린 중국의 역사적 비극을 그렸는데, 애플 왕국에 패한 후 멸망한 미라클 대륙의 문명이라는 ‘샤이닝 니키’의 설정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또, 경극 대배우 ‘청데이(장국영 분)’가 현대극을 비하하는 장면이 있는데, ‘샤이닝 니키’에서도 전통 디자이너 ‘강서희’가 현대적 감각의 디자이너를 비난하는 대사가 나온다.

 

물론 ‘샤이닝 니키’가 ‘패왕별희’ 같은 명작들의 스토리를 참고했다거나, 실제 역사적 사례를 반영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는 없다. 실제로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해도, 전쟁의 아픔과 말살된 문화유산에 대한 아쉬움이 콘텐츠에 자연스레 투영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샤이닝 니키’의 진의. 꽃미남 대배우지만 학대가 난무하는 훈련을 거쳐 대배우로 성장하는 캐릭터로 ‘​패왕별희’의 등장 인물과 부분적으로 겹친다. 사진=’샤이닝 니키’ 스크린샷 캡처

 

이밖에도 ‘샤이닝 니키’에는 자국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적잖다. 실제로 페이퍼게임즈는 “중국 기업으로서 중국 전통 복식 문화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고 함께 즐기며 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불거진 동북공정 논란에서 “우리는 중국 회사로서 조국의 입장과 같다”는 공식 입장을 밝힘으로써 좀 더 노골적인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이런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샤이닝 니키’는 패션을 소재로 전 세계 게임 시장을 대상으로 한 ‘중국 문화 굴기’ 목적의 게임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복잡 다단해진 중국과의 콘텐츠 교역, 어떻게 풀어야 할까

 

장쩌민 전 국가 주석이 중국을 통치하던 때만 해도 아픈 역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담아낸 예술 작품들이 다수 탄생했다. 천카이커 감독의 ‘패왕별희’가 대표적이다.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도 역시 문화대혁명의 부조리를 묘사했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 동안에는 이런 작품들이 크게 줄었다. 심지어 장이머우 감독의 최근 작품들은 중국의 암흑기를 조명한 과거의 명작들과 비교하면 크게 세속화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당국의 엄격한 검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 10대 ‘링링허우’ 세대는 경제적 풍요로 사회에 별 불만이 없어 편향적인 교육에 날을 세울 동기가 딱히 없는 만큼 공산당에 자발적인 충성심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환경에서 어떤 상업적 콘텐츠 제작자가 ‘패왕별희’나 ‘인생’과 같은 용기를 내려할까. 중국의 소비자들과 기업들 다수가 당에 진심으로 충성하고 있고, 중국의 부정적인 역사에 대한 비판 의식을 굳이 가질 이유가 없다.

 

문화대혁명의 혼란상을 담은 장이머우 감독의 ‘원세컨드’. 중국 정부의 검열로 개봉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진=‘​원세컨드’​ 영화 속 한 장면

 

중국 정부 역시 중화사상을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의도적으로 주입해왔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부 입맛에 맞는 콘텐츠만 창작되도록 하는 또 다른 문화대혁명을 진행 중이다. 이는 매우 고도화됐으며, 비단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국은 기성세대가 가진 트라우마와 젊은 세대의 과도한 자부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국력은 막강한 상황이다. 그 결과 지나치게 자국 중심 사고로 만들어진 질 좋은 콘텐츠, 즉 ‘샤이닝 니키’ 같은 중국 제품들은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

 

‘중국산’의 위상은 이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현재 글로벌 모바일 게임 순위 1~2위를 다투는 게임이 바로 중국의 ‘원신’이다. 텐센트가 ‘리그오브레전드’ 개발사의 모회사이듯 글로벌 콘텐츠 산업 전반에 중국 자본이 강세다. 무조건 중국산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힘든 이유다. 게다가 중국과의 대립각 분위기가 형성되면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피해가 훨씬 더 큰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과는 양상이 다소 다르다.

 

최근 우리나라 게임 기업 컴투스가 제작한 게임 ‘서머너즈워’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후 4년 만에 중국 외자 판호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컴투스가 판호를 받았다 해서 모든 한국 게임들의 중국 시장 진출을 낙관하긴 이르다. 국제 여론을 의식한 일시적 액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판호를 받은 컴투스의 ‘서머너즈워’. 하지만 이번 사례 하나로 중국 게임 시장 문호가 완전 열렸다고 전망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사진=컴투스 제공

 

자국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용납하지 않는 검열, 글로벌 시대 상식에 못 미치는 선민사상, 그리고 중국 콘텐츠는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자국 문호는 닫는 불공정 행보 등으로 악화되는 국제 여론을 중국 정부도 모를 리 없다. 더욱이 중국은 5G, 블록체인, AI 등 첨단기술 시대의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만큼 더욱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거대한 시장이고, 또 우리나라에선 중국산 콘텐츠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시장을 겨냥한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굴욕적으로 눈치 보는 모양새는 피하면서 자기 검열을 수반한 매력적인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와 마주하게 됐다.

 

‘샤이닝 니키’는 이처럼 복잡다단한 중국과의 콘텐츠 교역에 대한 난제를 한가득 시사하고 떠났다. 결국 약속했던 환불도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한 채 말이다.​ 

강현주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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