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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여전히 장국영이 그리운 당신에게 '해피투게더'

만우절 거짓말 같았던 그의 삶과 죽음의 궤적…OTT 리마스터링·극장 재개봉 잇달아

2021.04.01(Thu) 10:27:12

[비즈한국] 또 4월 1일이다. 2003년 4월 1일 이전까지는 4월 1일은 만우절이었다. 가벼운 거짓말을 해도 장난으로 넘기는 서양의 풍습인 만우절 덕에 학교의 교실마다 어떻게 선생님을 놀래킬까 분주하던 날이었다.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이 죽었다. 그날 공기 속을 떠돌던 말을 기억한다. 장국영이 죽었대! 뭐? 에이, 만우절 장난이겠지. 아니라고? 진짜야? 아니야, 거짓말이겠지! 유명인이나 스타의 죽음은 항상 놀랍고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도 장국영처럼 많은 이에게 상흔을 남긴 이는 드물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립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사진=영화 화면 캡처

 

해마다 장국영의 기일이 다가오면 방송사에선 앞다퉈 장국영의 영화를 편성한다. 당장 편성표만 봐도 OCN에서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을, OCN Movies에선 ‘아비정전’ ‘해피투게더’를, Mplex에선 ‘천녀유혼’과 ‘영웅본색2’를, 월드 클래식 무비에선 ‘종횡사해’와 ‘천녀유혼2’를 4월 1일 기점으로 촘촘하게 편성해 놓았다. OTT가 대세인 지금은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장국영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지난 3월 17일, 왓챠에선 SVOD 독점 공개 ‘#헐왓챠에’ 코너에 왕가위 리마스터링 작품들을 대거 업로드했다. 장국영이 출연한 ‘아비정전’ ‘동사서독 리덕스’를 비롯해 왕가위 감독 작품을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시청할 수 있고 그 외에도 장국영의 초기 작품인 ‘H2O’부터 ‘위니종정’ ‘금수전정’ ‘상해탄’ ‘연지구’ ‘성월동화’ 등을 볼 수 있다. 극장에서 재개봉 중인 작품들도 여럿이다. CGV에선 재개봉 특별관인 ‘별★관’을 운영 중인데, 오는 4월 7일부터 2주간 장국영 기획전으로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영웅본색’ 1과 2편, ‘성월동화’를 상영한다. 

 

사진=영화 화면 캡처

 

시상식도 아니고, 장국영이 남긴 작품들 중 무엇이 최고인지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저마다 최고로 꼽는, 혹은 가장 사랑하는 장국영 영화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겐 ‘영웅본색’이 최고일 수도 있고, ‘천녀유혼’이, ‘패왕별희’가, ‘아비정전’이, ‘동사서독’이, ‘금지옥엽’이나 ‘색정남녀’가, ‘해피투게더’가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아비정전’이 상당히 눈에 밟히지만 역시 하나를 고른다면 ‘해피투게더’다. 

 

양조위와 더불어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로 꼽혔던 장국영. 사실 꼽아보면 그가 왕가위 감독과 함께한 작품 수는 많지는 않다. ‘아비정전’과 ‘동사서독’ 그리고 ‘해피투게더’. 더 넓히면 왕가위가 각본을 쓴 ‘H2O’와 기획을 맡은 ‘동성서취’(‘동사서독’ 촬영이 하염없이 길어지는 가운데 촬영한 작품), ‘해피투게더’의 또 다른 이야기이자 일종의 다큐 영화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와 ‘동사서독’을 재편집한 ‘동사서독 리덕스’도 있다. 이 몇 편 안 되는 작품에서 장국영의 뚜렷한 대표작이 나왔다. 심지어 ‘해피투게더’에서 장국영의 분량은 주연이라고 보기엔 꽤나 짧다. 촬영 기간이 길고 즉흥적인 작업 방식을 즐기던 왕가위 감독의 특징 덕분이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촬영 일정이 예정을 훨씬 넘자 장국영은 계획된 콘서트를 위해 홍콩으로 귀국했고, 콘서트가 끝나고 추가 촬영을 했다. 그러나 짧은 분량에도 장국영의 존재감은 강렬하게 남았다.

 

 

홍콩의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는 연인 사이.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던 중 다툼 끝에 이별했지만, 이후 아휘가 호객꾼으로 일하는 탱고바에 보영이 찾아와 마음을 흔든다. 그러던 중 누군가에게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아휘의 아파트를 찾은 보영. “우리 다시 시작하자.” 

 

보영과 아휘는 사귀었다가 다투고, 헤어졌다가 다시 결합한다. 오랫동안 사귄 연인들이 이별과 결합을 반복하는 모습을 이들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런 반복을 거듭하면서 어떤 관계들은 단단하고 굳건해지기도 하지만, 어떤 관계들은 거듭 파행한다. 집착하게 되고, 애증으로 굳어진다. 보영과 아휘의 관계가 그렇다. 자유분방을 넘어 제멋대로인 보영은 서글프도록 사랑스럽지만, 충직한 연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에 비해 조용하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아휘의 헌신은 보영에게 종종 구속처럼 느껴질 터다. 아니, 정확히는 아휘의 헌신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 먼저 이별을 고하는 것일 터다.

 

사진=영화 화면 캡처

 

‘해피투게더’에서 보영이 된 장국영은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고, 탱고를 춘다. 부서질 듯 유약한 눈빛과 피투성이 양손을 한 채 아휘를 찾아와 안길 때, 그를 거부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잘 밤에 담배가 떨어졌다며 사달라는 주문도, 감기에 걸려 끙끙 앓고 있는 아휘에게 “나 밥해 줘야지” 하는 철딱서니 없는 주문도,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긴 하지만 마다할 수 없다.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함과 치명적이고도 허무한 아름다움, 나른하게 사람을 간질이는 묘한 분위기·​·​·​. 보영은 장국영이기에 가능했던, 장국영이라 돋보였던 캐릭터였다. 

 

여기에 귀에 꽂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OST를 골라내는 데 능한 왕가위 감독의 장기와 햇볕 아래 찬란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풍광이 어우러지며 보영과 아휘의 관계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구름 사이로 잠깐 내비치는 봄햇살이란 뜻의 원제 ‘춘광사설(春光乍洩)’처럼 애틋한 관계를 영화 속 장국영과 양조위는 보여준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해피투게더’가 촌스럽지 않고 먹먹하게 다가오는 건 그 덕분일 것이다. 

 

사진=영화 화면 캡처

 

영화에서 보영의 마지막 장면은 떠난 아휘의 이불을 끌어안고 가슴이 메어지도록 오열하는 모습이다. 왕가위 영화에서 장국영은 유독 고향이 아닌 머나먼 곳에 버려지는 쓸쓸한 캐릭터를 맡곤 했다. 장국영이 거짓말처럼 떠난 이후 ‘해피투게더’의 장국영이 못내 걸렸던지 왕가위 감독은 ‘동사서독’을 재편집하여 장국영의 모습으로 엔딩을 장식하는 ‘동사서독 리덕스’를 내놓았다. 나 역시 장국영의 실질적인 마지막 장면은 ‘해피투게더’의 그 장면인데, 지금은 그가 어딘가에서 웃고 있길 바랄 뿐이다. 

 

어떤 영화에서든 자신의 매력을 깊게 남긴 장국영. 이 찬란한 봄날에, 여전히 그가 그립다. 언제든 그의 영화로 그의 여운을 느낄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좀 더 장국영을 훑고 싶다면 그가 남긴 앨범, 그가 출연한 영화의 OST를 들어 보기를. 영화 전문기자 주성철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이나 장국영의 죽음을 모티프로 한 김경욱의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도 슬쩍 권해본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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